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있던 1980년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이었던 김충립 목사(한반도프로세스포럼 회장)가 ‘전두환 회고록’을 쓴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고발했다. 

김 목사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 5·18 당시 북한군이 침투한 사실을 부인했는데 민 전 비서관이 전씨 뜻에 반하게 ‘5·18 북한군 침투설’이란 허위사실을 ‘전두환 회고록’에 넣고 언론 인터뷰에서도 ‘북한군 침투설’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주장으로 ‘광주에 대한 5공세력의 사과’라는 역사적 과제까지 막았다는 게 김 목사의 지적이다. 

또한 전씨가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에 사과할 수 있게 김 목사가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민 전 비서관이 이를 막았다는 게 김 목사 주장이다. 그는 민 전 비서관이 국기문란, 대국민 사기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민 전 비서관이 이를 반박하면서 ‘김 목사를 모른다’, ‘보안대장 직책도 의심스럽다’고 하자 김 목사는 ‘허위사실’이자 ‘명예훼손’이라고 했다.  

▲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 사진=연합뉴스
▲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 사진=연합뉴스

 

북한군 침투설 부인한 전두환 

신동아 2016년 6월호를 보면 전씨는 ‘북한군 600명 침투설’에 대해 “난 오늘 처음 듣는데”라며 부인했다. 전씨 배우자 이순자씨 역시 “그건 증거가 없다”며 “그래서 각하(전씨)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7년 4월 나온 ‘전두환 회고록’에는 지만원씨의 북한군 침투설을 적었다. 

북한군 침투설은 법원 등에서 이미 허위로 판명났다. 김 목사는 자신이 5·18 당시 특전사령부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하는 보안반장이었기 때문에 김 목사 자체가 ‘북한군 침투설’이 없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5·18 허위·왜곡 정보를 바로잡고, 희생자·유족들에게 사과하는 건 사회·역사적 중요한 과제라는 게 김 목사의 생각이다. 만약 전씨가 사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면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고 5·18 허위·왜곡 정보로 광주시민들이 상처를 입는 일이 영원히 반복될지 모른다는 게 김 목사 생각이다.  

이날 인터뷰에는 신동아 기자들과 전씨뿐 아니라 이순자 여사, 정호용 전 의원, 고명승 전 3군사령관, 운덕 스님(대종사), 김 목사 등이 참석했다. 신동아 인터뷰를 보면 운덕 스님은 “5·18로 인해 전라도 분들과 얽혀 있는데 그걸 제대로 풀려면 전 대통령께서 확 풀면 쉽게 풀린다”고 했고 김 목사는 “5·18에 대해 총체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유감을 표하면 5·18 단체 인사들이 5공 인사들과 화해할 수 있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전씨에게 전했다. 

▲ 5.18 광주민주화 운동 자료사진. 사진=5.18 기념재단
▲ 5.18 광주민주화 운동 자료사진. 사진=5.18 기념재단

 

‘5·18 사과’ 뜻 밝힌 전두환 부부

이순자 여사는 신동아에 “광주 망월동에 사람을 보내 5·18 희생자 이름을 다 적어왔고, 육군본부에 가서 희생된 장병 이름도 모두 찾아와 영가천도 기도를 드렸다”며 “각하(전씨)께서 광주에 가서 돌을 맞아서 모든 게, 5·18 가족들과 오해가 말끔히 풀리고 정말 분이 다 풀린다면 뭘 못하겠느냐”고 사과할 의향을 내비쳤다. 

이 여사는 신동아 기자에게 자신들 뜻이 담긴 ‘동서화합 호소문’이란 문건을 건냈다. 전씨가 최초 발포명령자는 아니지만 이후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과하겠다는 내용이다. 신동아는 다음 부분을 인용했다. 

“아시다시피 저(전씨)는 광주사태가 난 후 3개월 만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유로 학살자라는 누명을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5·18 재판 과정을 통해 그 누명은 벗었습니다. 저는 당시 정보사령관 겸 안기부장직(‘중앙정보부장 서리’의 오기)에 있으면서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에게 지휘조언은 해줄 수 있었지만 작전에는 관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나는 한때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모두 왕생극(락)하기를 기원해왔습니다. 나는 늘 광주사태 때 희생된 시민뿐 아니라 사태를 진압하러 광주에 출동했다 희생된 계엄군 모두가 희생자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부디 광주사태 36주년을 맞은 이때에, 북한에서 원자탄을 만들어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때에, 대종사님의 (동서화합) 노력이 열매를 맺어 서로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고 국가 발전을 위해 힘을 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 목사에 따르면 이날 인터뷰는 2013년부터 전씨 사과와 함께 5공-광주의 화해를 추진하려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김 목사는 2013년부터 광주를 다니며 전씨가 사과하면 이를 받아달라고 설득했다. 앞서 당시 대통령과 전씨의 화해가 있었고, 전씨의 광주 방문에 당시 청와대에서도 알고 있었고 이를 지원하는 입장이었다고 김 목사는 주장했다. 

김 목사는 “2013년 처음에 5·18 단체들이 펄쩍 뛰며 ‘어떻게 전두환의 사과를 받느냐’고 했지만 2014년 말부터 마음 문을 열었다”며 “하지만 그때 전씨 쪽에서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지속된 노력으로 사과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2016년 4월26일 김 목사가 광주에 다녀왔다 다음날인 4월27일 인터뷰에서 전씨의 사과 의향을 담았다. 

2013년 당시 김 목사를 접촉한 오재일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 목사가 2013년 초부터 광주를 찾아왔고 ‘전두환을 망월동에 데리고 오겠다’, ‘빨리 정리를 하자’며 (전씨 측을) 접촉했다”며 “결국 전씨가 (사과를) 거절했지만 (김 목사가 노력한)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말했다. 

▲ 2016년 5월13일자 MBN 보도화면 갈무리. 김충립 목사 주장(위쪽)과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 주장.
▲ 2016년 5월13일자 MBN 보도화면 갈무리. 김충립 목사 주장(위쪽)과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 주장.

 

김 목사는 신동아 인터뷰 이후 MBN과 인터뷰에서 신동아 인터뷰 취지와 전씨의 광주방문 등을 말했다. 하지만 민 전 비서관이 MBN에 김 목사와 친분이 없다며 신동아 인터뷰 취지와 김 목사 주장을 부인했다. 민 전 비서관은 김 목사 주장을 “사기”라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올해 초 김 목사는 민 전 비서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결론났다. 김 목사는 언론보도 등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첨부해 서울중앙지검에 항고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전씨는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주장을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라며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김 목사는 고령의 전씨가 다소 판단력이 흐려진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아 인터뷰에도 전씨가 과거 사건을 여러번 되물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김 목사는 민 전 비서관이 전씨의 이런 면을 악용해 허위사실을 섞어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주장을 한다고 비판했다.

민정기, 김목사 주장 부인 “회고록 전두환 뜻”

전씨 광주방문(사과)을 막았다는 비판에 민 전 비서관은 지난달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사실 신동아와 (사과 취지로) 인터뷰한 게 아니고 천태종 대종사에서 있던 분(전운덕 스님)이 인사온다고 했는데 거기 (김 목사가) 끼어들어 와서 제멋대로 한 거지 인터뷰가 아니다”라며 “(5공과 광주를) 화해할만한 사정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6년 6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전씨가 직접 ‘북한군 침투설’을 부인했는데 전두환 회고록에 ‘북한군 침투설’을 넣은 것 관련 민 전 비서관은 “다른 대통령 회고록도 보면 대필한 작가들이 다 있지만 대통령 회고록이 맞다”며 전씨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회고록에 쓴 것처럼 탈북자들이 주장한 징후들이 있고 당시 지휘관들 보고가 있었다고 나와 있다”며 ‘북한군 침투설’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 목사는 민 전 비서관이 5·18 당시 보안사 등 이를 잘 알만한 군대 내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부분을 쓸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 전 비서관은 “내가 군대를 안 갔다고 떠드는데 군대 갔다 왔고, 설사 군대를 안갔다 하더라도 방송에 대고 떠들 일이냐”며 “명예훼손”이라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김충립 목사. 사진=장슬기 기자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김충립 목사. 사진=장슬기 기자

 

김충립 목사 “5·18 발포명령자, 전두환은 아냐”

김충립 목사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총 책임자인 전두환씨가 사과를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중재·성사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자신이 나섰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이를 지원해야 지난 40년의 아픈 역사를 매듭지을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1980년 5월 당시 특전사 보안대장이었기 때문에 5·18 진상규명에도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일단 미디어오늘은 김 목사 증언에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중요한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는 ‘5·18 사전기획설’이다. 

지난 2018년 6월 광주일보 보도를 보면 그는 1980년 5월18일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대령)을 맡았던 전두환 정권 2인자 장세동씨가 5·18 이전에 이미 광주에 갔다고 주장했다.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은 광주일보에 “40년이 다 된 일이라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면서도 “보안대장(김 목사)이 말했으면 사실이겠지”라며 이를 확인해줬다. 

지난해 3월 MBC 스트레이트를 보면 제작진이 장세동씨를 직접 찾아 5월18일 이전에 광주를 찾은 사실에 대해 묻자 장씨는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당시 특전사 보안대장이었던 김 목사의 주장이라고 하자 결국 장씨는 제작진에게 5월18일 이전 광주 방문을 인정했다. 김 목사는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세상이 처음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김 목사는 1980년 당시 전씨가 대통령되는 것을 반대했다. 5공세력 눈 밖에 나서 군복을 벗고 30여년간 미국에서 지냈다. 목사로 살던 그는 2013년부터 양측을 만나 화해를 추진했다. 정부 최고위관계자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것도 요청했다. 김 목사는 “(전씨가 사과없이 사망하면) 6·25보다 더 나쁜 역사를 가지고 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씨가 발포명령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미 5월17일에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왜 발포를 명령하겠나. (전씨) 인터뷰에서도 발포명령했냐고 묻자 ‘바보같은 소리’냐고 하지 않았나. 일부 강경세력들이 (발포명령을) 했다고 보는 게 맞다.”

‘발포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김 목사도 “그건 그렇다”며 “난 전두환이 대통령되는 걸 반대했던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사과와 화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씨가) 원래 자기가 다 결정하지 않고 참모들이 알아서 하게끔 하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 아들 노재헌씨가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에 김 목사는 “전두환이 한 잘못의 대부분은 노태우가 도모했는데 자기만 광주에 가서 사과하는 건 비신사적인 행동”이라며 “전두환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전두환 정권 2인자로 불린 장세동씨를 향해 “모든 걸 다 알면서 침묵하고 있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 목사는 “자신이 모시던 각하(전씨)가 민 전 비서관(이 쓴 회고록) 때문에 소송을 당하는 등 고생하는데 이대로 가만있으면 어떡하냐”며 “잘잘못을 가리고 입을 열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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