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국회 입법노동자들 모임인 ‘국회페미’가 지난달 31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이후 국회 여성 보좌진 35명에게 자체 설문조사한 결과 2차 가해와 ‘펜스룰’을 경험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국회페미에 따르면 다수 응답자가 “이래서 여비서는 뽑으면 안 된다”, “성폭력이 아니라 불륜이다”, “정치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등 사건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여성 비서 탓으로 돌리는 2차 가해와 펜스룰을 경험했다고 했다. 면접에서 “박원순, 안희정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며 소위 ‘사상검증’을 한다는 제보도 있었다고 국회페미는 전했다. 보좌진·당원 단체 채팅방에서 피해자 신상을 캐내는 시도를 목격한 사례도 다수가 있었다. 

이에 국회페미는 8월 한 달 간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 이는 국회페미가 진행해 온 ‘일터로서 성평등한 국회 만들기’ 캠페인으로 지난 6월 여성에게 사무실 허드렛일을 강요하는 전근대적 관행을 지적한 ‘커피는 여자가 타야 제맛입니까?’, 지난달에는 극심한 유리천장 실태를 고발한 ‘여자는 보좌관 하면 안 되나요?’ 캠페인을 실시했다. 

국회페미는 박원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뒤 정부·여당이 보인 태도를 비판했다. 이들은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서울·부산 시장 자리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으로 공석이 돼 시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도 당·정·청이 문제 근본을 성찰하기는커녕 면피 수준의 대응조차 제대로 안 했다”며 “피해호소인이라는 말로 진상을 모함했고 조직 전체 문제가 아닌 ‘여성의 일’ 정도로 축소해 여성 의원들에게 책임아 해결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 국회페미는 8월 한달간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 캠페인 포스터를 국회 곳곳에 걸고 성별구분없이 투명한 인사를 요구한다. 사진=국회페미 포스터
▲ 국회페미는 8월 한달간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 캠페인 포스터를 국회 곳곳에 걸고 성별구분없이 투명한 인사를 요구한다. 사진=국회페미 포스터

국회페미 활동가는 “민주당 여성 의원 일동으로 뒤늦게 성명을 발표하고 젠더특위를 발동해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특위는 2년 전 안희정 성폭력 사건 때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민주당은 당 지도부 심기보다 피해자 인권과 국민의 대표로서 책무를 우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회페미는 보좌진 설문조사를 토대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해결책은 ‘투명한 인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근본 원인으로 응답자들은 공통으로 인맥으로 이뤄지는 성차별적이고 불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꼽았다”며 “남성 보좌관이 친한 남성 비서를 데려와 빨리 승진시켜주고 ‘인사 권력’을 대물림하기 때문에 여성 보좌진은 불합리한 상황이 닥쳐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국회페미에 따르면 한 응답자는 “서울시 등 지자체 인사 시스템이 국회와 다르긴 하지만 비서실은 대부분이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인사권을 남성권력이 쥐고 있는 상황은 비슷하다”며 “정치권에선 남성과 남성이 서로를 끌어주고 보호하는 잘못된 문화가 있기 때문에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한 여성 보좌진은 “채용 시 상대적으로 여성 지원자 경력과 자질이 더 뛰어난 경우에도 보좌관이 남자를 뽑으라고 해서 이력서를 추린 적 있다”고 했고, “우리 의원실은 관례적으로 여성은 인턴과 9급만 뽑아 허드렛일을 시키고 4급부터 8급까지는 남성만 뽑는다”는 응답도 있었다고 전했다. 

국회페미 활동가는 “국회가 성별에 기반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채용하고 직무를 맡아 평가하는 구조였다면 훨씬 더 많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해 보좌관까지 올랐을 것”이라며 “여성의 역량과 발언권을 제한해 의도적으로 약자 위치에 가두는 조직문화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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