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신청자들이 출국했다가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끊기면서 체류자격이 박탈될 처지에 놓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법무부는 언론이 취재에 들어가자 일부 해결에 나섰지만 일회성 지원에 그쳐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난민 신청자들은 현지에서 생계 곤란도 함께 겪고 있다. 이주인권단체는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예멘 국적의 난민 신청자 메흐디씨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한국에서 일자리를 잃은 뒤 말레이시아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가 돌아오는 길이 끊겼다. 제주도로 오는 항공편이 코로나19 사태로 모두 중단되면서다. 메흐디씨는 이에 인천공항을 거쳐 제주로 가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대한항공 직원은 탑승구에서 이들의 티켓을 보고는 어딘가에 전화를 한 뒤 “탑승할 수 없다”며 막았다. 메흐디씨가 제주공항 외 비행편으로 입국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는 법무부가 제주에서 난민 신청한 이들에게 체류 범위를 제주도로 한정하고 있는 탓이다. 법무부는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를 통해 입국한 뒤 무사증 입국한 난민 신청자들이 국내에서 제주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메흐디씨의 비자 만료일은 오는 8월4일. 이때까지 한국에 오지 못하면 체류 자격 연장이 거절돼, 사실상 난민 신청 자격도 빼앗긴다.

예멘 난민 신청자 소니씨(가명)도 같은 처지다. 소니씨는 지난 2월 식도염을 치료하고 어머니를 만나러 인도 뉴델리를 찾았다. 6월에 돌아오려 했지만 항공로가 차단됐다. 싱가폴을 경유해 제주도로 오는 티켓을 사려 했지만 ‘싱가포르 시민만 가능하다’며 거절됐다. 여행비는 바닥 나, 한국 지인과 인도 델리의 유학생들에게 돈을 빌려 하루하루 버티는 상황. 그도 오는 4일이 체류 기한이다. 터키를 방문한 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 아라스씨(가명)의 경우 제주도 출도 제한을 적용받지 않지만 한국행 비행편이 모두 막혀 속수무책이다.

▲예멘 국적의 난민신청자들이 지난 2018년 6월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멘 국적의 난민신청자들이 지난 2018년 6월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니씨는 “인도에서 미등록 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출입국을 방문해 연장하는데, 인도 출입국에서도 빨리 출국하라고 추궁하며 수없이 질문한다”며 “돈도 없고 일도 없다. 고향에도, 제주에도 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주인권단체를 통해 청와대 신문고로 법무부와 인천공항출입국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법무부는 “중국 상해와 시안을 통해 제주도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해당 비행편은 중국인 승객만 탑승을 허용해 탈 수 없었다. 법무부는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메흐디씨와 소니씨는 가까스로 체류 자격 만료 직전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언론이 지난 29일 취재에 들어가자 법무부가 재검토에 나서면서다. 법무부는 이주인권단체에 이들의 제주도행을 보증할 대리인과 2주 간의 자가 격리처를 제시하면 체류 범위 제한을 잠시 풀겠다고 밝히면서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거쳐 제주도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앞으로 유사 사례에 기존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난민과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재 항공편이 없어 들어오지 못하는 사례는 2명 밖에 없는 줄로 안다”며 “법무부는 방역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터키에서 발이 묶인 아라스씨 사례에 대해서는 “공식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메흐디씨와 소니씨 외에 이주인권단체나 언론에서 미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아라스씨의 체류 자격 연장 대리신청을 불허해 단체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활동가는 미디어오늘에 “법무부가 해외로 출국했다가 항공편이 닫혀 비자 만료 기간 전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난민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전수연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들은 코로나19 시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이들이다. 이들은 다수가 생계 위기를 겪고 지위도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해결책 마련이 절실한데 법무부가 난민을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 난민과함께공동행동과 이주공동행동은 지난해 7월8일 오전 서울 효자동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난민 건설업 취업 제한 법무부 내부지침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난민과함께공동행동과 이주공동행동은 지난해 7월8일 오전 서울 효자동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난민 건설업 취업 제한 법무부 내부지침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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