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라오스댐’) 붕괴 사고를 다루는 한국 언론이 무책임하다는 실망감이 라오스 교민 사회에 깊게 퍼져 있다. 71명 사망자를 냈고 SK건설 등 한국 기업과 정부에 책임이 있는 참사인데 피상적 취재에 그칠 뿐더러 진실 규명보다 기계적 중립에 치우쳤다는 지적이다.

최근 화제가 된 건 아시아투데이의 베트남 특파원 칼럼 삭제다. 시공사 SK건설을 거론하면서 SK건설과 한국 정부의 보상 책임이 미흡하다고 비판한 기사다. 일부 교민 커뮤니티는 기사가 보도되자마자 갈무리해 서로 돌려 봤다. 당시는 라오스 정부가 SK건설 등 책임 기업의 보상안을 발표한 직후였다. 교민들은 보상안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한국 언론을 본 적 없었다.

기사는 12일 보도된 “라오스 국민 목숨값 629억원” 제목의 6문단짜리 1100여자 칼럼이다. 지난 8일께 손사이 시판돈 라오스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밝힌 보상안을 다뤘다. 라오스 정부는 댐 프로젝트 사업자 ‘PNPC’가 보상·복구비로 8280억여킵(약 1094억원)에 합의했고 이 가운데 4750억여킵(약 629억원)은 희생자와 재산 피해 보상으로, 3530억여킵(약 467억원)은 인프라 복구에 쓴다고 밝혔다. 2018년 7월23일 참사가 일어난 지 2년 만에 보상이 이뤄진 것.

▲라오스 교민들 사이에서 파급력있게 퍼졌던 아시아투데이 한 기자의 칼럼. 왼쪽이 수정 전, 오른쪽이 수정 후다. SK건설 상호와 '목숨값' 등의 표현이 삭제됐다.
▲라오스 교민들 사이에서 파급력있게 퍼졌던 아시아투데이 한 기자의 칼럼. 왼쪽이 수정 전, 오른쪽이 수정 후다. SK건설 상호와 '목숨값' 등의 표현이 삭제됐다.

 

PNPC는 SK건설이 2012년 한국서부발전, 태국전력회사, 라오스 현지 기업 등과 꾸린 합작회사로 이번 라오스댐 수력발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시공사도 SK건설이다. 한국 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이 프로젝트에 공적개발원조(ODA)로 955억원을 지원했다. SK건설과 한국 정부 책임이 거론되는 이유다.

기사는 SK건설 등이 피해자 보상으로 내는 629억원에 대해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이재민으로 떠도는 라오스 국민들에겐 고작 629억원이 돌아갔다. 강대국에 내는 벌금은 무겁고 약소국 국민의 목숨값은 참으로 가볍다”고 썼다. 지난 6월10일 SK건설이 평택 미군 기지 공사와 관련한 부정행위로 미국과 합의한 벌금 814억원과 보상금을 비교했다.

기사 파급력이 큰 만큼 기사 수정 과정을 확인한 교민도 적지 않았다. 기사가 뜬지 몇 시간 만에 제목이 수정됐다. ‘라오스 국민 목숨값’이 사라지고 “벌금 814억원과 보상금 629억원”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

SK건설 상호도 다 빠졌다. 원 기사엔 SK건설이 5번 언급됐다. 모두 ‘국내 모 건설사’나 ‘한국기업’, ‘국내 건설사 측’, ‘해당 건설사’로 수정됐다. ‘목숨값’이란 단어도 ‘보상금’으로 교체됐다.

그러다 수정 몇 시간 후 기사가 아예 삭제됐다. 기사를 돌려본 교민 A씨는 이에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얘기해보려고 캡처했다.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이슈가 안 됐던 게 SK건설의 라오스댐 붕괴사고”라며 “사실관계에 문제가 없는데 표절 등의 논란이 아닌 이상 칼럼·사설을 내렸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2018년 7월28일 라오스 댐 사고 보도 영상 갈무리
▲뉴욕타임스 2018년 7월28일 라오스 댐 사고 보도 영상 갈무리

 

“71명 사망, 7000명 이재민… 취재·보도 너무 안한다”

아시아투데이는 이와 관련 “삭제가 아니라 중요한 내용적 오류가 있어 보류한 상태”라며 “내용이 보완되면 다시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투데이 관계자는 “기사는 라오스댐 붕괴사고가 ‘인재’라고 했는데, SK건설은 과학적 근거가 결여됐다며 이의를 제기해 인재(人災)라고 단언할 수 없다”며 “벌금과 보상금을 비교한 것도 큰 오류라고 봤다”고 해명했다.

교민들이 이 해명이 부족하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SK건설에 불리한 문구가 수정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지나친 기계적 중립이다. ‘사실상 인재’란 말은 외신을 포함한 한국 언론이 이미 여러 차례 썼다. 2019년 5월28일 발표된 라오스 국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를 인용하면서 쓴 표현이기도 하다.

라오스 국가조사위는 독립 전문가 위원회(IEP)에 조사를 맡겼다. IEP는 “댐 붕괴가 시작됐을 때도 댐 수위가 댐 높이보다 낮았다”면서 “불가항력에 의한 붕괴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냈다. 즉 자연재해가 아니라 설계·시공 등 공사 과정의 문제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에 ‘사실상 인재’라고 여러 차례 보도했다.

한국 언론만 보면 사고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관계 당국과 SK건설 입장을 대등하게 싣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SK건설은 당시 “IEP 결과는 사고 전후 실시한 정밀 지반조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등 공학적 근거가 결여됐다”고 반박했다. 한 교민 B씨는 “언론은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보다 양측 입장 전달에만 치중했다”고 평가했다.

▲2019년 5월28일 라오스 국가 조사위원회 사고 조사 결과 발표 당시 헤드라인
▲2019년 5월28일 라오스 국가 조사위원회 사고 조사 결과 발표 당시 헤드라인
▲라오스 댐 사고 보도 관련 BBC 홈페이지 갈무리
▲라오스 댐 사고 보도 관련 BBC 홈페이지 갈무리

 

보고서 전문이 공개되지 않아 검증이 어려운 문제도 있다. 그러나 외신은 SK건설 입장을 교차 확인한다. 붕괴 4일 전 이미 댐 중앙부에 침하 현상이 있었다는 사실 등도 함께 반영한다. 미국 ‘Radio Free Asia’는 위스콘신대 이안 베어드(Ian Baird) 지리학 교수가 IEP 조사 내용을 언급하면서 “당연히 회사는 책임을 지기 싫으니 조사 결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을 보도했다. 이 매체는 SK건설이 어떤 논리로 과학적 근거가 결여됐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전했다.

이번 보상안 발표 보도에 교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SK건설 보상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없었고 피상적인 정보만 전달했다는 비판이다. 교민 B씨는 “‘한국 기업’ 때문에 대참사를 입은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2년 넘게 고통 속에 지내는 상황을 보고 있지만 한국 언론 보도는 지극히 드물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보도량도 적다. IEP 보고서가 발표된 때 종합지 지면 기사는 11건에 그쳤다. 내용도 라오스 정부 발표를 짧게 전하거나 SK건설 측 반박을 앞에 배치하는 식이다. 참사가 발생한 2018년 7월24일부터 지난 27일까지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9개와 경제지 4개 등 13개 언론사 보도량을 조사한 결과 지면 기사는 140여개였다. 한 해 70개로, 매체당 5.3개다. 13곳 중 이번 7월 보상안 소식을 지면에 보도한 매체는 없다.

라오스댐 사고로 13개 마을이 파괴됐고 71명이 사망했다. 이재민만 최소 7000여명으로 파악된다. 2019년 7월 라오스의 NGO(International River, Inclusive Development International 등)가 낸 보고서에는 “(재난민) 수용소 생활 조건이 너무 끔찍해 일부는 자신이 살던 동네로 돌아갔다”거나 “적절한 음식, 물 및 기본 필수품이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장기간 생활해 큰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는 보고가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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