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부산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세 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큰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재난 상황에서 실시간 지상파 방송 역할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또다시 재난주관 방송사 KBS에 대한 비판이 부산 시민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 국제신문과 부산일보 등 지역 언론뿐 아니라 국무총리까지 KBS를 특정하며 재난 방송 문제를 지적했다.

KBS는 24일 타 방송사와 차별화한 특보, 기상 전문 기자의 예방 방송, 자막 및 스크롤 속보 등을 내보낸 편성 기록을 공개한 부산 지역 집중 호우 재난 방송 관련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가장 시급했던 시간에 특보가 아니라 정규방송을 계속 내보낸 것이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우 당시 즉각적 특보 체제로의 전환이 재난방송의 핵심이었을까? KBS 입장문은 자사 편성에 대한 해명이었고, 시민들 반발은 재난방송이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 KBS 시청자청원사이트 갈무리.
▲ KBS 시청자청원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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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재난 상황 발생시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보도 전문 채널, 종편 등에는 기상청 및 방통위로부터 제공받는 정보에서 시작해 보도본부, 보도국장, 담당팀장 등 일련의 보고 체계를 거쳐 재난방송을 실시해야 하는 매뉴얼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매뉴얼의 문제는 재난 관련 정보 전달, 즉 속보성, 정확성, 예측성 등에만 방송 기능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계속 지적돼 온 한계이지만 재난 방송은 재난 상황의 중계가 아니다. 재난 방송의 가장 중요한 시청자는 바로 재난 상황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당사자들이다.

이들에게 촌각을 다투는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는 상황 중계가 아니다. 대피소 위치, 지역 재난상황실 등 사고 발생 시 신속히 연락할 수 있는 기관, 폭우와 같은 자연 재난의 경우 예상 경로 정보가 더 급하다. 이런 정보를 반드시 실시간 본방송을 통해서만 전달할 필요는 없다. 화재나 푹우 등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메신저 서비스, 소셜 미디어, 지상파 라디오 등)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시간이 소요되는 본방송보다 이 채널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거나 제보를 받는 것이 더 유용하다.

▲ 폭우가 쏟아지기 전 대응요령, 행동요령을 설명한 KBS 부산의 7월23일 낮 시간 뉴스특보
▲ 폭우가 쏟아지기 전 대응요령, 행동요령을 설명한 KBS 부산의 7월23일 낮 시간 뉴스특보

재난방송이 재난 중계가 아니라 재난 현장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재난 이후 더 중요하다. 재난 피해를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복구 지원책은 적절한지, 임시 주거와 시설은 안전한지 등의 후속 보도가 필요하다. 나아가 재난에 대한 수습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지자체 대응이 늦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재난 대비에 소홀하게 만들었던 법률이나 제도 문제점은 없는지 등 심층 취재가 이어져야 한다.

방송의 공적 책무는 화려한 선언이나 청사진 제시가 아니다. 방송사 스스로 자신의 공적 책무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 시청자 시민에게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무엇인지 묻고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부산 수해가 알려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재난방송이든 교육방송이든 지상파 방송사 공공성은 시민 분노와 불만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이지 법과 제도로 부여하는 과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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