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지역이 콘텐츠다: 지역방송 콘텐츠의 공공성
지역이 콘텐츠다: 지역방송 콘텐츠의 공공성
[지역방송 위기] (01)

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주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말하거나 그보다 큰 행정구역으로서의 거주 지역을 말하곤 한다. 대화를 하고 있는 맥락이 행정구역을 넘나들 경우엔 자연스럽게 시골 혹은 지방에서 올라왔다거나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전자는 우리 모두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지만 후자는 지역은 지방, 서울은 중앙이라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지역에 살고 있지만 서울은 중앙으로, 지역은 지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지역’과 ‘지방’의 차이다.

지방(地方)의 사전적 의미는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의 기구나 조직, 중앙 이하 각급 행정구역의 통칭’을 의미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지방은 통치방편의 하나로 전국을 인구와 토지로 나눈 군현(郡縣)제에 기반하고 있으며 중앙에서 지방장관을 파견하여 통치·지배하는 개념으로 지금의 시군제와 유사한 형태다. 그러나 지역(地域)은 일정하게 구획된 특정 범위의 토지나 전체 사회를 정치나 경제, 문화 등으로 나눈 일정한 지리적 공간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공간의 경계가 희미해진 최근에는 문화나 정서적 공감, 사회적 관계 등으로 구획된 정서적 유대공간으로 표현해도 좋겠다. 결론적으로 지방은 중앙과의 상대적 개념이자 통치해야 할 어떤 곳이라는 수동적인 곳이지만 지역은 그 자체로서 고유성과 가치를 보유하는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다. 현재와 같이 각 지자체 단체장이 고유의 행정권한을 통해 중앙과 분리된 예산을 집행하고 운용하는 것은 지역단위의 행정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므로 지방이라는 개념보다 지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라는 개념은 지역자치로, 지방분권도 지역분권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방송도 지역의 가치와 고유성을 수행하기 위해 중앙과의 분리가 필수적이고, 그것은 구조적이고 행위적인 면, 모두에 걸쳐 해당된다. 그러나 중앙과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KBS, 소유가 분리되지 않은 MBC, 사주의 이해관계가 제일인 민영, 거기다 대부분의 지역방송이 중앙사의 전파료와 결합판매 의존도가 높아 구조적으로 ‘지역’방송의 본질과 벗어나 있다. 지역방송은 행위의 측면에서도 프로그램 편성의 중앙 의존도가 높아 지역민에게 지역 콘텐츠를 전달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마저도 OTT와 1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지역 단위의 콘텐츠 수요가 실종되고 있어 지역방송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자치와 지역민의 정서적 유대관계에 입각한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방송은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능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역방송이 가지고 있는 인적·물적 인프라는 지금까지 중앙이 수행하지 못하는 지역의 각종 재난, 선거, 문화와 역사, 경제 성장의 첨병에서 지역민의 목소리를 꾸준히 제공해왔다. 이와 같은 행위는 누구나 ‘보고싶어 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보아야 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만 역으로 시장가치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지역콘텐츠는 상업적인 재미가 아니라 공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시장에서 대량 생산되지 않고 과소 생산되며, 이로 인해 상업적인 수익을 보전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전제된다.

▲ 텔레비전. 사진=gettyimagesbank
▲ 텔레비전. 사진=gettyimagesbank

‘그래도 잘 만들면 된다’라는 말은 지역 콘텐츠의 경제적 특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무심한 조언이다. 콘텐츠 산업은 고(高)위험 사업군에 속한다. ‘시장수요 예측 불가능성’의 개념은 콘텐츠가 일반적인 경제재와 매우 다른 원리에 의해 제작되고 유통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작시장에서 시장의 수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해당 수요가 존재하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물건을 만든다는 의미고,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기에 고위험 사업군인 것이다. 10개를 만들고 혹시 1개가 대박나서 나머지 망한 9개의 손실을 메꿀 수 있는 구조가 되려면 9개의 실패물을 만들어내도 망하지 않는 막대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9개가 아니라 10개, 100개의 손실이 날 때까지 버텨야 할 때도 있다. 넷플릭스나 CJ E&M의 버티기 비결이기도 하다. 거기다 유통의 측면에서 콘텐츠는 비배재성, 비경합성의 성격을 띤다. 끊임없이 복제되는 특성은 특별히 돈을 내지 않아도 광고나 불법복제를 통해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내가 안본다고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 풀려있는 수없이 많은 복제물은 애초에 콘텐츠의 시장가치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 김희경 성균관대 사회과학대학 학술교수
▲ 김희경 성균관대 사회과학대학 학술교수

지역방송은 콘텐츠 본연의 경제적 특성과 중앙과의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지방방송’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왔다. ‘지역의 여러 얘기를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라는 무심한 조언은 결국 지역방송의 구조적 요건과 공적 콘텐츠의 과소 생산 메커니즘에 대한 상대적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애초에 시장 실패가 예견된 지역 콘텐츠에 대해서는 공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모든 매체가 글로벌 미디어기업이 돼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겠다고 앞 다투어 경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역콘텐츠의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한 세심한 설계와 계획이 요구된다. 그 계획과 설계는 지역자치의 큰 그림과 매체 역할론을 전제로 지역단위 콘텐츠에 대한 착실한 공적 자금의 투자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산업논리만 내세우는 기재부의 공공 콘텐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별도 기금의 조성, 독립성이 보장된 지자체의 공적 자금 투입, 유료방송 인수합병을 통해 지역 유료가입자를 확대하고 있는 통신기업의 공적 기금 조성 등이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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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7-20 13:33:56
지역방송뿐만 아니라, 언론 자체가 위기다. 요즘은 진보/보수언론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모두 법 위에서 이슈만 따르고 대주주(재벌/대기업/건설회사/기득권)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이익9 : 나머지1) 최전방에 서 있다. 대주주만 따른다면, 누가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는가(언론 자유도 세계 42위, 신뢰도 최하위). 한겨레/경향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국민주라고 하지만 이슈만 따라 다닌다. 얼마 전 한겨레 배당(아주 조금) 소식이 들렸다. 지금 돌이켜 보니, 매우 슬픈 일이다. 배당을 줬다는 것은 이익만 따라다녔다는 말 아닌가. 한겨레는 대답해보라. 그대들이 기업과 뭐가 다른가. 기업이라면 언론인 척, 취약계층을 위하는 척하지 마라. 이중성에 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