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늘 전문가를 찾아다닌다. 바이러스라는 전문 영역과 일상사의 변화 속에서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코로나 시대, 사회와 세계의 전환기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이들은 그런데 대부분 남성이다.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대는 전문가들은 왜 모두 남성일까.

독일 언론을 바라보는 이들은 최근 이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독일에서도 수많은 바이러스 및 전염학 전문가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대부분 남성이었다. 특히 베를린 샤리테병원의 바이러스연구소장인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박사는 영웅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독일에도 질병관리본부 격인 로버트코흐연구소가 있다. 마찬가지로 남성인 이곳 연구소장도 코로나 확산이 한창일 때 매일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언론의 마이크는 드로스텐에 더욱 집중됐다. 북독일방송(NDR)은 2월 말부터 드로스텐과 함께 매일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독일 언론이 그의 말을 실었다. ‘도배’ 수준이었다. 그 또한 코로나 정책에 주요 의견을 제시하는 인물로 알려졌고, 베를린 샤리테 병원이라는 대표성과 접근성, 여기에 스스로도 언론 노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너무 매일 나오길래 ‘저 사람은 도대체 연구는 언제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혼란한 시국에 영웅적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동시에 그의 발언이나 연구결과에 비난이 일고, 살해 협박까지 받는 등 정쟁도 심해졌다. 이렇게 드로스텐이 바빠진 나머지 찾게 된 다른 전문가들도 대부분 남성이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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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마리자 재단(MaLisa Stiftung)이 4월 16일부터 30일까지 코로나 관련 보도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관련 방송에 출연한 여성 전문가의 비율은 22%다. 언론사의 온라인 보도에서는 7%에 불과하다. 

여성 전문가가 노출된 분야로는 교육학과 사회학이 많았고, 바이러스 및 감염학 분야는 27%로 다른 분야보다 적은 편이었다. 이 중 학과장 등 리더의 위치에 있는 경우는 5%에 그쳤다. 2018년 기준 독일 의사 중 47%, 바이러스·감염·미생물학 분야 전문가 중 45%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들의 언론 노출도는 적은 편이다. 

슈피겔이 보도한 ‘언론이 자주 찾는 바이러스 전문가’ 조사에서도 드로스텐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상위 10명 중 여성은 2명이었다. 이 두 명은 브라운슈바이크 공대의 멜라니 브링크만 바이러스학 교수와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의 마릴린 아도 감염학 교수다.
 
브링크만 교수는 여성 전문가들의 노출이 적은 이유에 대해 전체 여성 비율보다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여성 비율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바이러스학 분야 교수나 학과장 등 높은 직책에 여성이 많이 없다. 또 여성 전문가의 경우 앞에 나서기를 꺼리거나 종종 ‘나보다 더 적절한 인터뷰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처음에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대의 멜라니 브링크만 바이러스학 교수 ⓒZDF
▲브라운슈바이크 공대의 멜라니 브링크만 바이러스학 교수 ⓒZDF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의 마릴린 아도 감염학 교수다. ⓒARD/tagesschau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의 마릴린 아도 감염학 교수다. ⓒARD/tagesschau

코로나19 이후 유치원 및 학교 폐쇄에 따른 양육 문제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브링크만 교수는 ”만약 자녀가 없었다면 나 또한 언론 출연 요청에 더 많이 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인터뷰 요청이 계속 많이 오는데 시간이 부족해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도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아도 교수는 ”여성 전문가들의 언론 노출은 독일 여성 리더 비율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코로나 이전에도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지만 리더 직책에 있는 많은 여성들은 대부분 싱글”이라며 10대 자녀가 두 명이 있는 자신도 “가정과 연구자, 의사로서의 일을 모두 해내기 위해서 인터뷰 요청의 90%는 거절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 언론계에서 여성 리더 비율 확대를 목표로 하는 단체인 ‘프로크보테’(ProQuote)는 지난 5월14일 코로나 여성 전문가 리스트를 공개하며 이렇게 밝혔다. “코로나 위기에서 대부분 남성이 이야기한다. 미디어에서는 남성 전문가들이 발언권을 가진다. 이제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에 대해 설명 해주고 정리해줄 더 많은 여성 바이러스 학자들, 전염학자들, 의학자들을 보기 원한다. 우리는 더 많은 여성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기 원한다.”

에디스 하이트캠퍼 프로크보테 대표는 “많은 미디어가 인터뷰할 여성을 찾을 수 없다거나, 이 분야에 여성 전문가들이 많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진실은, 학술 분야의 고위직을 대부분 남성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성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이 그러한 여성 전문가들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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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보테는 뮌헨공대의 바이러스학과장, 괴팅엔대학 방역학과장 등 높은 직책에 있는 여성 전문가는 물론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53명을 추렸다. 또 해시태그를 이용해 또 다른 여성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주길 호소했다.

기자들은 언론에 한 번 나온 전문가를 계속 찾는 관성이 있다. 그런 전문가들은 대게 언론 친화적이고, 언론이 필요로 하는 사안을 잘 파악하고, 기자들이 원하는 답을 준다. 독일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성 전문가 안에서도 위에 언급한 두 교수에게만 인터뷰 요청이 몰린다고 한다. 프로크보테의 리스트는 좀 더 많은 여성 전문가들에게 발언권을 주려는 목적이다. 

지금 독일에서는 평소보다 더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일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유치원,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일하던 여성들의 자녀 양육 업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바이러스학자와 감염학자, 의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동안 독일 사회가 스스로를 가리킬 때 들을 수 없었던 ‘가부장제’라는 단어도 다시 보인다. 사회가 돌보는 보육·교육 시스템이 중단되니 시스템에 가려져 있었던 가부장제 특성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사회가 후퇴한다. 줄어들고 있는 여성의 발언권에 독일 사회가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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