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를 두고 민주당 핵심 정치인들과 서울시가 ‘피해 호소인’. ‘피해 호소 직원’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자 16일자 대부분 주요 일간지들은 “진상규명 의지 부족”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전날인 15일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직접 사과를 하면서도 ‘피해 호소인’ 단어를 고수하면서 진상규명 의지와 성인지적 감수성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4면 “민주당 ‘피해 호소인’…일방적 주장으로 치부하고픈 속내 드러내” 기사에서 “여성계는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피해 호소 주장이 있다면 객관적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며 “이 때문에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피해자 입장을 일방적 주장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해찬 대표 외에도 당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같은 날 ‘피해 고소인’이라고 표현했다. 14일 김부겸 전 의원 캠프는 보도자료에서 ‘고소인’이라고 했다. 같은 날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성명서도 ‘피해 호소 여성’으로 명명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피해자’와 ‘피해 호소인’을 혼용했다. 경향신문은 “사건의 시비가 가려지기 전까지 ‘고소인’이나 ‘피해 호소인’이 법률적으로 타당한 용어지만, 여기엔 피해자의 입장이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내포됐다고 볼 수 있다”며 “민주당이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건 아직까지 피해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의혹 수준이라고 말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4면
▲경향신문 4면

‘피해 호소인’ 생소한 용어 쓴 의도 지적 봇물

서울신문도 4면 “‘피해자’ 대체한 ‘피해 호소인’… 용어 프레임 논란” 기사에서 “‘피해 호소인’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가 언론 전면에 등장했다”며 “표현 뒤 숨은 의도에 대한 지적이 거세지면서 ‘용어 프레임’ 대결로 비화하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서울신문은 서울 소재 로스쿨의 한 교수 말을 빌려 “국내에선 형사소송법 등에서도 절차 초기부터 ‘피해자’로 주로 써 왔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4면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 고집하는 민주당의 속내” 기사에서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가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민주당과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고소인을 지칭하며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이란 생경한 용어를 고집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이를 두고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란 용어가 쓰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미투사건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형사 절차상 주의해야 하는 것은 가해자를 확정판결 전에 유죄로 추정하는 것이지, 피해자라는 호칭에 주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 “그동안 피해자라는 용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지 않다가 2020년 7월부터 갑자기 피해 호소인이라 불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뭔가 이상한 일”이라는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의 말을 빌려 ‘피해 호소인’ 단어의 속내를 꼬집었다.

▲한겨레 4면
▲한겨레 4면
▲서울신문 4면
▲서울신문 4면

 

보수성향 신문들도 “피해자 중심주의” 강조

보수성향 신문들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34면 김창균 논설주간이 쓴 “박원순 가해자에게 ‘피해 호소’ 방패 씌워준 동지들” 칼럼에서, 박원순 시장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했던 생전의 모습을 거론하고 여권 관계자들의 피해자 중심주의 이중잣대를 비난했다.

김 주간은 ‘피해자’라는 단어 대신 쓰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엔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을 무죄로 추정한다는 뜻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2018년 5월 21일, 3선 도전을 앞둔 박 시장은 ‘박원순 캠프와 함께하는 성추행 예방교육’을 열었다. 이때 박 시장이 처음 꺼낸 말도 ‘피해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였다. 성범죄를 가르는 ‘피해자 중심’ 원칙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시장과 그 진영 사람들이 떠받들던 ‘피해자 중심’ 원칙은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이자, 자신들을 진보로 포장하는 패션 아이템이었을 뿐”이라며 “입장이 바뀌자 피해자를 밟아서라도 진영을 지킨다는 ‘우리 편 중심’으로 돌변했다”고 비난했다. 또 “피해자라는 표현을 애써 피하려는 그들의 꼼수는 위안부 존재를 끝내 인정 않으려는 일본과 꼭 닮았다”며 “피해를 인정 않는다면서 뭘 위로하고 무슨 2차 가해를 걱정해주나. 말장난이자 우롱일 뿐”이라고 빗댔다.

동아일보도 3면 “‘피해자’ 아닌 ‘피해호소 직원’ 이라는 서울시”기사에서 “진상규명의 주체가 되어야 할 서울시와 여당이 피해자라는 표현 대신 이 같은 생소한 용어를 쓴 것에 대해 ‘박 전 시장의 책임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1면 “피해자 다시 때리는 ‘피해 호소인’이란 말” 머리기사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피해자를 이례적으로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렀다. 당 젠더폭력대책TF위원장인 남인순 최고위원도 ‘피해 호소인께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이 머리기사에 “중앙일보는 ‘피해자’로 표기합니다” 알림을 붙였다. 이 신문은 알림에서 “중앙일보는 16일부터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A씨를 ‘피해자’로 표기한다”며 “ 호칭은 곧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A씨의 피해 사실이 ‘일방의 주장’으로 여겨져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훼손돼선 안 된다고 보고 이같이 정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34면
▲조선일보 34면

 

회의적인 서울시 진상규명 의지, 박원순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 과제는?

이렇게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한 신문들의 논조는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의 진상규명 과제 정리와 회의적인 진상규명 상황 지적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은 “박 시장 ‘성추행, 방조·무마, 수사 유출’ 의혹 철저 규명해야” 사설에서 “진상규명에서 밝혀야 할 의혹은 크게 3가지”라며 박 시장에 의한 성추행 전말, 피해자의 문제제기 후 서울시의 방조·무마 의혹, 피소 사실 유출된 경위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경향신문은 “진상규명에 대해 벌써부터 회의적인 시선이 나온다. 당장 서울시의 조사 의지에 의구심이 든다”며 “서울시는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 직원’이라는 표현으로 피해사실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또 “서울시의 민관합동조사단이 진상규명에 필요한 통신내역 및 컴퓨터·휴대전화 파일 접근권이 없는 것은 크나큰 문제”라며 “경찰이 박 시장의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과 통신조회를 하고 있지만, 이는 사망 경위를 밝히는 데로 제한돼 있다. 이러니 직권조사 권한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와, 경찰의 추가 수사, 국회의 국정조사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아직도 ‘피해호소 직원’이라는 서울시 조사 믿을 수 있나” 사설에서 “서울시는 어제 입장문에서도 피해자를 ‘피해호소 직원’이라고 표현했다. 여전히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며 “이런 태도는 조사 의지에 대한 우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도 “서울시, ‘박원순 성추행’ 진상규명 의지 있나” 사설에서 “서울시는 시종일관 피해자를 ‘피해 호소 직원’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피해자 주장에 대한 불신감과 진상 규명에 대한 시의 소극적인 태도를 드러낸 셈”이라며 “민관합동조사단 구성과 운영에 시가 관여할 경우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 낼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은 박 시장의 사망 경위와 연관된 부분만 수사하고, 고소 상황 유출 의혹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는 경찰이 고소 상황 유출에 개입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키울 뿐이다. 적극적 수사로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겨레는 “서울시,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철저히 조사해야‘ 사설에서 “서울시는 피해 방조·묵인 의혹의 당사자라는 점을 명심하고, 조사 결과뿐 아니라 과정의 공정성에 한 점의 의문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조사단 구성에서부터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주문했다.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 사설

 

피해자와 연대 강조 기사 눈길... 공감 않는 기성 정치인에 2030 분노

한편 일부 언론의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와의 연대 흐름, 2030 세대의 인식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서울신문 4면
▲서울신문 4면

 

서울신문은 4면 “거대한 권력의 가해자에 분노… 세상 바꾸려 입 연 피해자 응원”기사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직 비서에 대해 여성들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피해자와 연대합니다’ 해시태그를 달고 한국여성의전화 등에 문자 후원 인증을 하거나, 성폭력 피해를 당한 김지은씨의 저서 구매 인증 사진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은 피해자와 연대하는 여성들이 “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등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반복되는 것에 크게 분노했다”며 “특히 사건 발생 이후에도 공고히 유지되는 가해자들의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9면 “2030, 기성 정치권 성인지 감수성에 환멸 ‘아직도 심각성 몰라’” 기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갈등이 세대를 가르고 있다”며 “기성 정치인들이 피해자를 지켜줘야 한단 목소리를 일축하고 추모에 집중하는 사이, 2030세대 정치인들이 앞장서 피해자와 연대하고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겨레는 대학가와 청년 단체들의 진상규명 요구 대자보 등의 소식을 전하며 “청년들은 성별과 상관없이 ‘기성세대가 젠더 이슈를 아직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어 대학생 김가람(24)씨의 “기성 정치인들은 박 시장의 장례 형식만을 얘기할 뿐 피해자 보호대책 등에 대해선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 “성폭력 사안은 형사절차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또 이아무개(32)씨의 “청년 세대에선 젠더 이슈가 커다란 화두인 반면 기성세대는 그렇지 않다. 보궐선거도 있는데 보궐선거에서 투표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로 청년 세대의 분노를 전했다.

▲한겨레 9면
▲한겨레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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