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고정 필진인 한 예비역 육군장성의 백선엽 전 장군 비판 칼럼이 실리지 않아 그 배경이 주목된다.

예비역 육군준장 출신인 한설 순천향대 초빙교수는 지난 12일 오전 경향신문 오피니언팀에 ‘백선엽의 육군장을 취소하라’는 제목의 칼럼 초안(13일 게재용)을 보냈으나 칼럼에 담긴 주장의 근거와 관련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채 결국 싣지 않기로 했다. 한 교수는 이후부터 경향신문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했다.

한설 교수는 지난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오늘(13일자) 경향신문에 칼럼을 올리는 날”이라며 “앞으로 경향신문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백선엽에 관한 내용으로 편집진과 의견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소한 의견차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의견차이는 경향신문이 내가 생각했던 진보와 합리를 더 이상 지니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고 썼다.

무슨 내용이길래 칼럼이 실리지 못한 것일까. 한 교수는 실리지 못한 경향신문 제출 원고 전문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한 교수는 그 글에서 고 백선엽의 간도특설대 등 친일 이력을 넘어 한국전쟁 이후의 행적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백 전 장군을 두고 “사단장과 군단장으로 근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공로가 다른 장군들보다 뛰어났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그가 지휘했던 제1사단은 전쟁초기에 무력하게 괴멸 당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 전투를 대표적 전공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전황에서 볼 때 특별했다고 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많이들 잊어버렸지만 안강·기계와 영천 전투가 더 치열했고 심각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반의 뇌리에 다부동 전투가 깊게 각인된 것은 그가 국방부전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평생 맡으면서 전사기록에 관여했기 때문인 듯하다”며 “백선엽 혼자서 한국전쟁의 공을 독차지하고 가로챘다는 참전군인들의 볼멘소리는 그런 연유”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전사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전공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며 “백선엽이 죽어야 제대로 된 한국전쟁 전사가 쓰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군인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15일 오전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고인의 영정이 장군 3묘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전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고인의 영정이 장군 3묘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교수는 “(백선엽이) 한국전쟁기 참모총장 중에서 가장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라며 “1970년대에는 대표적인 부정축재자로 이름을 날렸다. 체면과 염치도 없었다.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이 백선엽을 국가의 보배라고 말하는 것이 역겹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 때는 명예원수로 추대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며 “가짜 영웅만들기 위한 조작도 서슴치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한 교수는 “심일 소령을 일본의 육탄 3용사처럼 영웅으로 만들고자 했다”며 “사실과 다르다는 주변의 지적은 간단히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그가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 함경도 도의원으로 악랄한 친일파로 만주에서 산판을 하던 심일의 부친과 당시 간도특설대로 활동했던 백선엽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만 가능하다”며 “백선엽의 왜곡에 국방부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썼다.

특히 한 교수는 이 같은 칼럼을 쓴 계기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다는 소식들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며 “친일파 척결을 주장하던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백선엽을 떠받들기로 한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는 고백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글 가운데 어떤 대목에 문제가 있는지를 두고 한 교수와 경향신문 쪽 얘기를 들어봤다. 한설 교수는 15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글을 보고 경향신문에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근거를 제시해달라는 거였다”며 “한국전쟁의 백선엽 전공에 대한 평가 부분으로, 다부동전투 관련 참전용사들이 백선엽이 공을 가로챘다고 했다는 근거를 밝히라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밝히냐”고 말했다. 한 교수는 “매번 모여서 참전용사들이 했던 얘기를 쓴 거고, 한국전쟁사는 백선엽이 죽어야 제대로 쓰일 거라는 얘기가 ‘회자됐다’는 것도 근거를 대라고 했다”며 “이는 그동안 알려진 일반적인 얘기인데, 군인들 누가 회자했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 교수는 ‘외부 필진 글의 표현이나 완성도 문제는 어느 언론사에서도 요구하지 않느냐’는 질의에 “칼럼에도 썼지만 다부동이 아닌 영천, 마산 지역이 더 심각했고, 참전 군인이면 다 그런 얘기한다”며 “그런데 다부동에서만 백선엽이 혼자 전투한 것처럼 공을 주장하니 공을 가로챘다고 비판한 것은 일반론적인 비판이다. 이건 근거를 밝힐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글을 싣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면서 결국 경향신문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칼럼이 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현 정권에서 백선엽을 조문한 행위를 비판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 앞으로 경향에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향신문 측은 글이 일방적으로 치우쳐보여 보완을 요청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경향신문 편집국 오피니언(칼럼)담당 간부는 15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일부러 안 실으려 한 것 아니냐는 한 교수의 의심에 전혀 오해라고 밝혔다. 이 간부는 “백선엽 장군에 우리가 특별한 평가를 갖고 있지 않으며, 알고 있는 것도 한국전쟁 때 공을 세웠고, 일제강점기 때 친일했다는 정도”라며 “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 국립묘지 불가 등 묘역 문제로 논란일 때 이 칼럼이 문제가 되면 우리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이 칼럼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다르고, 일방적으로 치우쳐 보이는 칼럼이었다”며 “그래서 몇가지 제안을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간부는 칼럼 초안에 ‘공을 가로챘다는 참전군인의 볼멘소리가 나온다’는 대목, ‘백선엽이 죽어야 제대로 된 한국전쟁 전사가 쓰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군인들 사이에서 회자된다’는 대목, ‘한국전쟁기 참모총장 중에서 가장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 ‘이명박 정권 때는 명예원수로 추대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사실과 다르다는 주변의 지적은 무시했다’ 등의 표현을 들어 “누가 그랬는지, 근거자료가 나온게 있는지 보완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명예훼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내용 자체가 생경한데 그럴수록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그냥 내기엔 조심스러웠다. 칼럼이 필자 주장이라 해도 모든 주장을 쓸 수는 없다”고 답했다.

▲한설 순천향대 초빙교수·예비역 육군준장. 사진=한설 페이스북
▲한설 순천향대 초빙교수·예비역 육군준장. 사진=한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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