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의 여성 혐오·차별을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에 따라 정부와 관련 업체들이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를 비롯한 32개 여성·게임·IT 관련 단체들은 1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2018년 ‘사상 및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여성 작가 차별’ 진정이 접수된 지 2년 만인 지난 8일 인권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및 관련 피진정인들에게 게임 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사건 피해자들이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다수의 게임 이용자들에 의해 ‘사이버 괴롭힘’ 피해를 입었고, 이들의 퇴출 요구로 인해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됐다고 인정했다.

특히 “기업도 사회구성원의 하나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게임 이용자의 부당한 종사자 퇴출 요구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혐오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들이 관련 업계에서 다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진정 회사들에게 표명했다”고 밝혔다.

▲ 1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기자회견에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서울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광주여성노동자회,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부산여성회, 전북여성노동자회, 안산여성노동자회, 부천여성노동자회, 대구여성노동자회, 수원여성노동자회, 경주여성노동자회,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청년유니온,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정의당 여성본부, 류호정 의원실, 문화예술노동연대, 게임개발자연대, 무용희망연대오롯,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전국영화산업노조,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전국예술강사노조,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언론노조방송작가지부, 언론노조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뮤지션유니온 등이 동참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 1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기자회견에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서울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광주여성노동자회,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부산여성회, 전북여성노동자회, 안산여성노동자회, 부천여성노동자회, 대구여성노동자회, 수원여성노동자회, 경주여성노동자회,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청년유니온,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정의당 여성본부, 류호정 의원실, 문화예술노동연대, 게임개발자연대, 무용희망연대오롯,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전국영화산업노조,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전국예술강사노조,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언론노조방송작가지부, 언론노조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뮤지션유니온 등이 동참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바라며 게임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호를 위해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 범위를 ‘게임’ 분야까지 확장하는 법률 개정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며 “게임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에 연간 147억여원을 지원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대해 지원 사업의 업체 선정 기준을 개선하는 등 여성혐오 및 차별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프리랜서 피해자 5명의 경우 고용 영역에 해당되지 않아 조사대상이 아니며, 노동자성이 인정된 단 1명의 경우 진정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진정을 각하했다.

김희경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디콘지회)장은 “인권위에 진정을 넣기 전 실로 다양한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결과는 참담했다”며 “콘텐츠 불공정 신고센터에 연락하니 여성가족부에 전화를 해보라, 여성가족부에 연락하니 고용노동부에 전화를 해보라, 고용노동부에서도 피해당사자 대부분이 프리랜서라 어렵다, 회사원이었던 피해자 1인의 경우에도 신고 기간이 지나 어렵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서울시 공정경제과에도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시에서도 권고만 가능할 뿐이라 완전한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대답이었다”고 전했다.

김 지회장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도 상담을 해보니 게임은 문화가 아닌 산업에 속하고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는 예술인이 아니므로 ‘예술인 신문고’ 등을 통한 신고 및 ‘예술인복지법’에 의한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는 신고를 받아주었으나 그 결과는 권고에 그쳤을 뿐으로 실효가 전무했다”며 “인권위 또한 사안을 위중하게 보고 상세한 의견 표명을 했고 게임업계 사상검증이 부당한 상황이라는 점을 명백히 확인해줬지만, 다른 한편으로 각하 결정을 목도한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발언의 자유, 사상의 자유와 같은 기본 인권이 침해된 사항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국가가 보호해 주지 않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절대 갑인 기업을 상대로 을에 불과한 한 작업자 개인이 민사 소송으로 피해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그 부담이 크다. 프리랜서도 국민의 일원인데, 국가 및 유관기관으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소외감과 박탈감은 피해당사자들에게 더욱 큰 가해로 다가온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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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어 “앞으로의 노동은 점점 더 외주화될 것이라 한다. 외주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법은 너무나 뒤쳐져 있다. 정부 및 유관기관은 법망에서 소외되어 사각지대에 위치한 창작노동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법안을 하루빨리 상정해 보호하여야 할 것”이라 촉구했다.

게임업계 노동자 출신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게임업계는 게임 개발이 중단되면 정규직이라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고용불안이 만연한 업계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들을 사상검증해 생계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더 쉬웠다”며 “몇년 전 게임업계 노동자였던 시절.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동료가 회사에 신고했던 일을 기억한다. 밥벌이의 공간에서 ‘혐오’를 만난 순간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상검증’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나와 다른 생각을 혐오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고질적인 악습을 이제 뿌리 뽑아야 한다”며 “게임업계 경영진에게 촉구한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혐오 없이도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업계문화를 조성하는 데 동참해 달라. 기업가로서 ‘최소한의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라.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거듭 강조한다. 게임 업계 내 여성혐오 및 차별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여성혐오와 차별적 관행을 근절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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