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0시20분경 숨진 채 발견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황망한 죽음 이후 혼란은 극심했다. 그의 사망 시점이 8일 박 시장 전직 비서 A씨의 성추행 피해 고소 직후였다는 점, 박 시장이 1993년 ‘성희롱은 불법 행위’라는 인식을 세상에 알린 ‘서울대 신 교수 사건’의 공동 변호인이었던 이력 등 젠더감수성을 갖춘 정치인이었고 진보적 업적을 남긴 정치인이라는 점 등이 맞물려 혼란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혼란을 부추겼다. △박 시장의 사망 확인 전 ‘사망 오보’ △A씨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긴 보도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비판을 평가 없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나르는 보도 등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14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 언론 보도들이 “추모와 진실을 이분법적 시각으로 해석하게 하는 데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우선 박 시장 실종 소식 이후 사망이 확인되기 전까지 속보와 오보가 속출했다. 경찰에 따라 숨진 채 발견된 것이 10일 새벽 0시쯤인데, 박 시장 딸이 신종 신고를 한 오후 5시17분 이후 ‘시신 발견’과 같은 보도가 남발됐다. 월간조선은 9일 오후 6시45분 속보로 ‘박원순 시장 시신 발견’이라고 썼다가 삭제했다. 로톡뉴스도 ‘성균관대 근처 시신 발견’이라고 썼다가 사과했다. 서울일보 ‘와룡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과 같은 기사가 충청리뷰, 펜앤드마이크, 브레이크 뉴스, 청년의사 등에서 나왔다. 로톡뉴스나 충청리뷰 등 일부 언론은 자사 보도에 사과문을 올리거나 정정했지만 클릭 유도를 위한 속보성 오보가 속출하는 문제가 또다시 반복됐다. 

박 시장이 젠더감수성이 높았던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성추행 고소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거나 미확인된 음모론 형태의 발언을 옮기는 보도 도 있었다. 정치인 발언이라고 해서 바로 지면에 옮기기보다 이런 발언들이 어떤 효과를 낳는지 고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예를 들어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시장 사망에 “누구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분이었다. 여성 인권에 누구보다 앞장선 분이 자신이 고소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얼마나 당혹스럽고 부끄럽게 느꼈을까”라며 “행정1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피해자를 봐 왔고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 침실, 속옷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한 오해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갑작스러운 죽음의 배경이라고 얘기되는 고소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자 명예훼손에도 해당할 수 있는 이야기다. 섣부르게 예단할 시점은 아니고 차분히 따져봐야 될 문제”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박원순 성추행 의혹 2차가해성 보도 “자중해야”)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심은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기도 한다. 진 의원 발언은 자칫하면 성추행 피해호소자의 신빙성을 훼손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14일 성명을 통해 △피해자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신상털기나, 음모론, 가짜뉴스 등 2차 가해가 활개를 치는 사회가 되도록 방치하지 않았는지 △피해자 고통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모른 척 회피하지는 않았는지 △피해자가 누누이 고충을 말할 때 모른 척 입 다물기를 강요했던 서울시는 직장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진실을 밝힐 책임을 지려고 하는지 등을 다시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진주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장)은 1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모든 따옴표 저널리즘을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이 아니라 2차 가해성이 될 수 있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며 “유력 정치인들이 한 말을 따옴표로 인용할 때, 특히 피해자가 있는 사안에 있어서는 단순 인용 보도가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위력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단순히 ‘빨리 많이 써야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해당 발언 맥락을 전달하면서 ‘문제적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면 발언과 학자 등의 코멘트를 다는 식의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특히 페이스북을 보면서 2차 가해성이 있는 말을 단순 퍼나르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라면 ‘이런 보도가 맞을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야 하고 단순히 ‘유력 정치인이 말했으니 보도했다’라고만 넘어가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김재련(오른쪽 두번째)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재련(오른쪽 두번째)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러한 지적처럼 페이스북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한 보도도 쏟아졌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머지 모든 여성이, 그(박원순 시장)만한 ‘남자사람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원순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史)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즉시 ‘전우용’과 따옴표가 붙은 제목의 기사가 40여건이 나왔다. 

이후 전씨에 대한 비판도 생중계식으로 기사화됐다. 11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페미니스트 셀럽 성추행 1호이니 당연히 여성사에 기록되겠죠”라고 쓰고 가수 핫펠트가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머지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그건 친구가 아니다. 그런 친구 둘 생각 없고 그런 상사는 고발할 것”이라고 쓰자 줄줄이 기사화됐다. A에 대한 발언을 바로바로 기사화하고, 또 ‘B가 A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기사를 내면서 ‘SNS발’ 보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관점 없는 이와 같은 기사는 혼란만 가중시켰다. 

한 일간지의 논설위원은 “사건 초창기에는 사안 실체를 알 수 없고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무엇을 보도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며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에 의한 피해가 커지지 않는 것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언론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 논설위원은 "언론사 전반에 젠더감수성이 무디고 성폭력 의제가 표면화한 지 얼마 안된 만큼, 데스크든 일선 기자든 ‘사건 발생 뒤 피해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바로 연결짓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문제 의식을 지닌 구성원이 보다 적극 편집국 내 성찰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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