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성별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저 특정 유권자들을 대리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을 굳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건 가부장제 사고방식이다. 구분의 목적은 단순 차이를 드러내는 것보다 우열을 가려 차별하는 쪽에 가깝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이후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일 SNS에 올린 글을 보면 박 전 시장이나 여당,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없다. “당신이 외롭지 않기를”이라고 시작하는 글에는 피해자(당신)가 느낄 외로움, 충격 등에 공감하고, 사회적으로 논의하던 ‘성범죄 처벌강화’ 입법을 약속했다. 중요한 건 글의 내용이 아니라 ‘가장 어리면서 제일 먼저 조문하지 않겠다’고 한 괘씸죄였다. 같은당 장혜영 의원이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도 진상규명과 2차가해 방지 등을 강조하며 “차마 조문을 갈 수 없다”고 했다. 

▲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피해자 보호·연대를 우선한 정치인의 메시지를 전하는 기사에 그들의 조문여부를 더 부각하는 것까진 넘어가더라도, 다수 기사에서 ‘조문거부’라고 쓴 것은 ‘마땅히 조문을 해야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관점을 담아 편향적이다. 관련 기사 댓글에는 온통 나이 어린 여성에 대한 욕설이 난무했다. 정치인들이 성인임에도 어린아이를 비난하는 표현이 많았다. 

류 의원이 거울을 보는 모습 등 그의 여성성을 부각하는 사진을 썸네일(미리보기 이미지)로 보도한 곳도 있었다. SNS에도 류 의원을 비판하는 게시물에 해당 사진이 함께 퍼졌다. 그는 지난달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성차별 등)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진이 쓰였고 (매체가) 의도를 가지고 (반복) 선택한 건 적절치 않다”고 했지만 이런 요청은 쉽게 외면당했다. 

▲ 여성정치인이 거울보는 사진을 썸네일로 쓴 언론보도와 해당 기사 댓글.
▲ 여성정치인이 거울보는 사진을 썸네일로 쓴 언론보도(위)와 해당 기사 댓글.

 

조문하지 않은 야당 정치인은 더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조문을 하겠다고 공지했다가 11일 조문을 취소했다. 이후 통합당은 피해자 편에서 진상규명을 외쳤고 적극적으로 여당을 비판했다. ‘말을 바꿨다’거나, ‘죽음 앞에서 정략적으로 판단했다’는 등 문제를 삼으려면 충분히 삼을 수 있지만 앞의 두 의원과 반응이 달랐다. 두 의원의 발언 수위가 높아 논란이 됐다고 보긴 어렵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1일 “공무상 사망이 아닌데도 서울특별시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이 나라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고위공직자”들을 직접 비판했다. 안 대표도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이 처음 시장선거 나가기 전 ‘아름다운 단일화’로 주목을 받았던 정치적 동지였으니 역시 이를 문제 삼는다면 안 대표를 강하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큰 논란 없이 흘러갔다. 작은 야당의 초선 비례의원이 당 대표인 김종인·안철수 등보다 체급이나 영향력이 더 커서 논란이 더 컸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차이는 성별차로 설명할 수 있다. 보통 남성과 남성은 일반적인 인간관계로 이해한다. 공적관계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쉽게 사적관계로 이해한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인·안철수 대표의 조문불참은 정치적 판단 영역으로 전제하고 보도하지만 류호정·장혜영 의원의 조문불참은 그들 개인의 예의와 태도의 문제로 보는 차이다. 강제추행 등으로 복역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공적관계로 만난 비서를 사적관계(애정관계)로 이해한 점, 안 전 지사를 옹호했던 논리인 ‘어떻게 불륜으로 그만큼 처벌하느냐’는 것 등은 모두 남녀관계를 사적관계로 이해하는데 익숙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과 여성간에는 사적관계인 동시에 ‘잘 지내야 함에도 갈등하는 관계’로 이해된다.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와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남성은 독립된 개인으로 보지만 여성은 집단으로 묶으면서 나온 편견이다. 남성 정치인이 잘못하면 그 개인의 잘못이지만 어떤 여성 정치인이 잘못하면 여성 전체의 잘못이 된다. 여성은 하나의 집단이 아닌데, 하나라고 가정하면 그 안에 이견과 갈등이 필연적이다. 다음은 13일자 기사들이다. 

“‘성누리당’ 성토했던 민주 여성의원들, 내편 미투엔 ‘묻지말라’”(중앙일보)
“‘미투’ 앞에 선택적 분노…박원순에 침묵하는 민주당 여성 의원들”(뉴스1) 
“남인순 젠더폭력위원장은 박원순 장지에…입 닫은 민주당 여성 의원들”(한국경제)
“‘여성 팔아먹고 사는 여성들’ 진중권, 민주당 女의원 침묵 비판”(아시아경제)

기사 취지는 문제가 아니다. 여당 소속 지자체장 의혹에 대해 여당 의원에게 침묵하지 말라는 요구는 언론의 권리이자 의무다. 다만 여기서 언론이 선택한 건 ‘여성’이다. 보도 의도는 제각각이다. 페이스북에 글 하나만 써도 죄다 기사화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발언이라서 기사로 전했든, 여당의 위선을 비판하려 했든 중요치 않다. 여성만 특정했고 여성에게 더 높은 의무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성차별 보도로 분류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질문하는 기자에게 ‘XX자식’이라고 욕설을 내뱉는다고 이 대표를 비판하지 않았다며 ‘남성의원’을 한데 묶는 비판기사는 없다. 심지어 포털에 ‘민주당 남성의원’을 검색하면 ‘남성의원’ 기사는 없고 도리어 ‘민주당 여성의원’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온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번 사태에 사과한 것과 같은당 윤준병 의원이 “정치권 논란과 피해자 2차가해를 막기 위해 (박 전 시장이) 죽음으로 답했다”고 해 논란된 것을 두고 ‘남적남’이라고 하지 않는다. 

▲ 네이버에서 '민주당 남성의원'을 검색한 결과. '민주당 여성의원' 비판 기사가 뜬다.
▲ 네이버에서 '민주당 남성의원'을 검색한 결과. '민주당 여성의원' 비판 기사가 뜬다.

 

자신의 SNS에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고소인 측 기자회견을 ‘흥행몰이’라고 비판한 이는 현직 ‘여성’검사이고, 박 전 시장 의혹 관련 “정보가 없다”면서도 “보도되진 않지만 (고소인 주장과) 전혀 다른 얘기도 있다”며 근거도 없이 성추행 의혹을 부인한 민주당 대변인 역시 여성이다. 성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정의당과 민주당은 각각 진화에 나섰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4일 오전 같은당 두 의원의 메시지에 대해 “유족과 시민들 추모감정에 상처를 드렸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낼 예정이다. 여론에 떠밀리듯 내놓는 이런 맞대응이 해결책일 수 없다. 이 국면에서 여성의원·남성의원이 아닌 그냥 국회의원, 남성 서울시장·여성 비서가 아니라 그냥 시장과 비서로 보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