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시, 박시장 사망 직후 ‘6층’ 비서실 조사했다>, <[단독] 경찰, 고 박원순 시장 고소인 신변보호 중… “요청 받았다”>, <주호영이 말한 “흔적”… 누가 박원순에게 성추행 고소 알렸나>, <홍준표 “박원순 채홍사 있었다는 소문 돈다, 진상규명 해야”>, <민주당 윤준병 “박원순, 피해자 보호하려 극단 선택한 것”>, <과거 안희정 지지 선언도… 박원순 고소인 변호한 김재련 누구>.

처참하다. 박원순 시장의 장례 기간 동안 그마나 신중했던 언론이 발인과 피해자측 기자회견 직후 정치권 발 따옴표 기사와 단독을 남발하고 있다. 이런 언론 보도에 대한 비평에는 늘 “사실을 취재하여 밝혔을 뿐”이라는 항변이 돌아온다. 그 ‘사실’이란 기자가 취재하여 발견한 새로운 정보에서 정치인과 관계자 발언 일부까지 광범위하다. 이런 항변은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규범, 즉 객관성 중 사실성(factuality)에 근거한다. 그러나 사실을 수집하고 전달하는 저널리즘이란 지금과 같은 사태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언론 보도 한 건 한 건이, 기사 단어 하나 하나가 누군가에 비수로 꽂히는 민감한 상황에서는 대화로서의 저널리즘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면기사로 출고하고 포털 메인에 노출되는 단계에서 끝나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그 기사로 누구의 입장에서 어떤 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고민할 때다. 

▲ 7월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사진=민중의소리
▲ 7월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사진=민중의소리

 

이런 태도는 전통적인 저널리즘 원칙에서 본다면 취재원과의 거리두기(detachment)에 반하는 자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지금 사태에서 거리두기를 해야 할 대상은 취재원이 아니라 기자 자신과 소속된 언론사 및 출입처다. 대화로서의 저널리즘에 필요한 태도는 이입(empahty)이다. 이입은 공감(sympathy)과 다르다. 공감이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감정에 동의를 표하는 태도라면, 이입은 피해자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 보는 태도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시장과 비서라는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의 정점에 있는 권력집단과 유사한 성추행을 경험했거나 지금도 밝히지 못하는 이들 간의 오래된 ‘정치적 폭력’의 문제다. 피해자에게 자신을 이입하는 것은 편향이 아니라 철저히 이성적인 태도다. 만약 내가 피해자의 직위와 처지에 있었다면 왜 4년 동안 사실을 밝히지 못했는지, 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은 없었는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라는 자문에서 취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된 저널리즘 관행에서 이입은 전혀 다른 입장에 투사되어 왔다. 권력을 가진 이들, 이번 사태에서는 정치권, 서울시, 경찰과 기자 자신이 속한 언론사가 그들이다. 이들의 입장에 서게 되면 피해자는 철저히 대상화 된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어떻게 이 사태를 대응할 것인지, 시장의 공석 이후 보궐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소속 언론사는 타사에 비해 어떤 차별성을 보일 등의 질문이 우선된다. 특히 정치권과 경찰, 검찰 같은 출입처의 입장에 서게 되면 기자는 하나의 가설을 세워 조각조각 흩어진 사실들을 선택하고 조합한다. 독자들은 각 언론사의 보도를 단편적으로 읽지만, 해당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는 자신의 가설에 맞추어 연속된 스토리를 구성한다. 음모론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 언론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기자가 누구의 입장에 자신을 이입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두 가지 정치적 문제로 제기된다는 점이다. 각 정당의 입장, 서울시의 책임과 대응, 경찰 수사의 진행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들의 입장에 기자 자신을 이입한다면 또 다시 피해자는 사라지고 ‘진실 공방’과 같은 정당 간 정치적 이전투구로만 좁혀진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협소한 정당정치가 아니라 위계에 의한 폭력이라는 더 거대한 정치적 문제다. 언론보도의 정파성이 위험한 것은 사실의 왜곡이나 편향에만 있지 않다. 제도 정치의 쟁점으로 더 큰 정치적 문제를 은폐하는 것. 그래서 지금 언론에 필요한 태도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보다 ‘내가 약자라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라는 정치적 약자에 대한 이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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