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 측이 13일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A씨 변호인인 김재련 변호사와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은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사실을 설명한 뒤 2차 가해 중단 및 경찰·서울시·정치권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은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4년 간의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A씨는 지난 5월 김재련 변호사와 상담 및 법률 검토를 진행, 지난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한 직후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와 면담했다. 고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은 성폭력특례법(통신매체이용음란·업무상위력추행) 위반, 형법상 강제 추행 등이다. 김 변호사는 고소 당시 증거로 A씨의 휴대전화(텔레그램) 포렌식 자료와 박 시장이 심야비밀대화에 A씨를 초대한 증거를 제출했으며, A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친구·동료공무원·비서관 등에게 피해를 호소한 내용을 확보한 상태라 밝혔다.

A씨는 고소장에 박 시장 비서로 수행한 4년 및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이후에 지속된 성추행 피해를 기재했다. 이에 따르면 박 시장은 즐겁게 일하기 위해 셀카를 찍자며 집무실에서 셀카 촬영 시 신체적 밀착, 피해자의 무릎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무릎에 입술 접촉, 내실로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 접촉,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해 음란한 문자 및 속옷 입은 사진 전송 등을 지속적으로 하며 A씨를 성적으로 괴롭혔다.

▲김재련(오른쪽 두번째)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재련(오른쪽 두번째)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 변호사는 “인터넷에 ‘고소장’이라고 떠돌아 다니는 문건은 우리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문건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해당 문건을 유포한 자들을 적극 수사해 처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오늘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우리가 접한 피해사실은 비서가 시장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나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시간뿐 아니라 퇴근 후에도 사생활 언급, 신체접촉, 사진 전송 등 전형적인 권력과 위력에 의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라며 “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하거나, 비서 업무를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노동으로 일컫거나, 피해를 사소화하는 반응이 이어졌다”고 했다.

이 소장은 “형사사법절차상 수사·재판을 제대로 거쳐 가해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고소 당일 피고소인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상황이 전달되었고, 피고소인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피해자는 온오프라인에서 2차피해를 겪는 등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A씨 측은 고소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려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수사팀에 절대적인 보안을 요청했고, 고소 당일 고소인 조사를 받은 것도 보안 유지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서울시장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목도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시스템을 믿고 위력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나. 우리는 이렇게 투명하고 끈질긴 남성중심 성문화의 실체와 구조가 무엇인지 통탄하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현장을 창문너머로 지켜보고 있는 유튜버 및 일부 취재진. 사진=노지민 기자
▲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현장을 창문너머로 지켜보고 있는 유튜버 및 일부 취재진. 사진=노지민 기자

박 시장의 죽음을 둘러싼 일방적 해석이 A씨에게 압박으로 가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죽음을 선택한 것이 피해자에 대한 사죄 뜻이기도 했다면 어떤 형태로라도 피해자에게 성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진다고 전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을 뿐인데, 피해자는 이미 사과받은 것이며 책임은 종결된 것 아니냐는 일방적 해석이 피해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력으로 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박원순 전 시장은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고 역할을 해 온 사회적 리더였다. 그럼에도 그 또한 직장내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적 대상화, 성희롱, 성추행을 가했다”며 “미투운동,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에 대해 가까이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위치였음에도 그 사안이 누구보다 자신에게 해당된다는 점을 깨닫고 사과하고 멈추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피고소인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해서 사건의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 비난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피해자 인권회복의 첫걸음”이라 강조했다.

고 대표는 “현재 경찰에서는 고소인 조사와 일부 참고인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피해자가 성추행을 겪은 직장인 서울시에 대해서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정부, 국회. 정당 또한 책임 있는 행보를 위한 계획을 밝혀달라고 고 대표는 주장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 A씨가 보낸 글을 대독했다. A씨는 이 글에서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며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 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전했다.

A씨는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다. 저를 사랑하는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이어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한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며 “저와 제 가족의 보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 바란다”고 밝혔다.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A씨가 보내온 글.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A씨가 보내온 글.

한편 박 시장 장례위원회는 기자회견에 앞서 “오늘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는 중이다. 한 인간으로서 지닌 무거운 짐마저 온몸으로 안고 떠난 그이다.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이 시각, 유족들은 한 줌 재로 돌아온 고인의 유골을 안고 고향 선산으로 향하고 있다. 부디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유족들이 온전히 눈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고인과 관련된 금일 기자회견을 재고해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기자회견 주최측은 이와 관련 “장례 기간 중에는 최대한 기다렸고 오늘 발인을 마치고 나서 오후에 기자분들을 뵙게 된 것이다. 저희 나름대로 최대한의 예우를 했다고 이해해 주시면 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외압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청와대나 어디로부터든 이 사건에 대해서 압박을 받지 않았다. 받았더라도 저희는 거기에 전혀 굴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사건을 보면서 피해자가 엄청난 위력에서 시베리아 벌판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이 2차 가해를 하고 피해자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우리가 연대해서 함께 지켜내고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위력 성폭력이 없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피해자 지원을 하고 있다”고 힘 주어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1~2시간 전부터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상당수 취재진이 회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창문 너머에서라도 회견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달라붙어 있거나, 회견장 맞은편 건물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론매체 소속 기자들 뿐 아니라 생중계를 하려는 유투버들도 모여들었다. 일부 유튜버는 회견장이 협소해 더 이상 입장이 불가하다는 주최측에 목소리 높여 항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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