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A씨를 두고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일부 언론도 피해자 의사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보도되면서 2차 가해를 유도하는 양상이다. 성추행 의혹이 무분별하게 다뤄지는 것을 경계하고 언론도 자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시장 비보가 전해진 10일 온라인 커뮤니티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는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서울시청에 공개되어 있는 열람 가능한 자료를 뒤져보니”라며 “같은 여자로써 그분 참교육 시켜줄 것”이라 썼다. 이 작성자는 피해자의 직업, 피해자가 일했거나 퇴사한 시점으로 추정되는 시기를 언급하며 “남자분 제외하면 몇분 안 남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딴지일보 운영팀은 이날 오후 “박원순 시장 고소인 관련 음해성 글 자제 요청”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운영팀은 “고소인의 신분을 특정한다던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추측성 글을 섣불리 게시하는 일은 되도록 지양해주시기 바란다. 이러한 게시물은 타 게시판 이용자는 물론 고인에게도 누가 될 수 있음을 호소하는 바”라며 “또한 허위사실 유포로 법적 조치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란다. 현재 서울시 측에서도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확인되지 않은 게시글들의 빠른 삭제를 요청하였기에 회원님들께도 양해드린다”고 밝혔다.

▲ 7월10일 '딴지일보' 운영팀이 자유게시판에 공지한 게시글.
▲ 7월10일 '딴지일보' 운영팀이 자유게시판에 공지한 게시글 갈무리.

피해자의 직업은 전날 일부 언론 보도를 기점으로 대중에 알려졌다. SBS는 “박 시장 비서로 일했던 A씨가 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았고 곧바로 오늘 새벽까지 고소인 조사가 진행됐다”며 “박 시장과 A씨 대화는 주로 텔레그램으로 이뤄졌으며 A씨는 박 시장과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을 증거로 제출한 걸로 알려졌다. A씨는 또, 본인 외에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고도 덧붙였다”고 전했다.

이후 비서라는 직업을 키워드로 신상털이 양상이 시작됐다. 구글 검색창에 ‘박원순’을 입력하면 피해자 직업 또는 ‘사진’이 자동 완성 검색어로 추천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와 같은 곳에서는 성추행 신고에 대한 배후설을 제기하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일부 언론사는 2차 가해를 비판하는 듯하면서 되레 이를 부추기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조선일보("성추행 고소한 朴시장 비서 찾아라" 신상털기로 2차 가해 우려)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 일부 지지자들이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직 서울시 직원에 대한 ‘색출 작업’에 나섰다. 성추행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하며 해당 게시글 캡처 사진을 그대로 올렸다. 사실상 2차 가해에 동참한 셈이다.

피해자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퍼 나른 경우도 있다. 한국경제(박원순 애도 속 정작 피해자는...“정신과 치료 중”)는 “박원순 시장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미투 신고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당사자가 직접 공개하지 않은 내용들을 기사화했다. 고소장에 적시됐다고 알려진 피해 내용들을 ‘전해졌다’ ‘알려졌다’고 전하는 방식이다.

▲ 7월10일자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 7월10일자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2차 가해 우려가 높아지자 경찰은 10일 “박 시장에 대한 고소건과 관련해 온라인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유포해 사건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위해를 고지하는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 밝혔다. 신상털기가 과열되면서 피해 당사자와 무관한 사람의 사진이 온라인에 떠돌고 있다는 피해 신고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접수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류호정·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차 가해 가능성을 우려해 ‘박 시장 빈소를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문을 다녀온 심상정 대표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다시한번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애도를 표한 뒤 “사안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한 분이 피해 호소인일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상황이 본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박 시장 성추행 혐의 보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온다. 한 방송사의 C기자는 “(현재까지는) 피해자가 공론화를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 전혀 모른다. 먼저 제보하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취재가 안 되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취재 중인 경찰 출입기자 B는 “다 경찰 발로, 피해자를 접촉한 거 같지 않다. 구체적인 내용을 쓰면 방송사 입장에서는 좋으니 욕심을 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제 SBS와 MBC 등을 빼고 비서라 쓰지 않은 이유는 조심한 게 아니라 취재가 안 된 걸로 안다”면서도 “(A씨 신상 보도는) 지적을 할 부분이고 언론사가 반성할 것 같지 않다. 다만 비서로 밝혀진 마당에 다 직업을 특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업무적인 위력·위계에 의한 성폭력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일정 정보를 드러낼 지점은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이 공개하지 않은 개인 정보가 계속해서 언론이나 커뮤니티로 노출되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피해자가 직접 나서게 될지 기다려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추측성이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확한 정보 없이 회자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문제적이다. 언론 자중도 굉장히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 7월10일 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 7월10일 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서 대표는 이어 “‘음해’ 아니냐. ‘(박 시장이) 미투 당했다’로 시작해서 정치적 의도로 해석하는 맥락이 피해자의 회복과 사회적 말하기를 어렵게 하는 구조를 만든다”며 “사회적 영향이 컸던 정치인은 지지·추종 세력이 많고, 사건을 성폭력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피해자 비난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날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피해자의 용기에 도리어 2차피해를 가하고 있는 정치권, 언론, 서울시, 그리고 시민사회에 분노한다”며 “서울시는 진실을 밝혀 또 다른 피해를 막고 피해자와 함께해야 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피해자의 용기에 연대하며 그가 바꿔내고자 하였던 사회를 향해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박 시장에 대한 추모·애도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가 신상털이·비난에 휩싸이지 않도록 연대해야 한다는 SNS 여론도 조성되고 있다.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박원순시장의서울시5일장을반대합니다’ 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정세랑 ‘시선으로부터’)는 문구도 온라인에 공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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