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부영그룹 사옥에서 행사가 열렸다. 행사 내용은 부영그룹이 가지고 있는 806억원 상당의 전라남도 나주 부영CC 부지(40만㎡)를 학교법인 한전공대에 무상 기증하기로 했다는 것. 다음날 언론에 부영그룹 무상기증 소식이 일제히 실렸다. 부영그룹이 제공하는 사진도 덧붙였다. 중앙지(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등)와 지역 매체 46곳이 무상 기증 소식을 실었다. 부영그룹이 모그룹인 인천일보와 한라일보 역시 관련 소식을 다뤘다. 한 경제지 신문은 ‘통큰 기부’라고까지 표현했다.

▲ 지난 6월29일 조선Biz 온라인 보도
▲ 지난 6월29일 조선Biz 온라인 보도

무릇 언론이라면 부영그룹이 무상기증을 왜 했는지 질문을 던지고, ‘통큰 기부’ 이면을 들여다보는 게 상식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건설기업을 주주 혹은 광고주로 둔 미디어의 한계라는 말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무상 기증 이후 부영그룹 광고가 지면 매체에 실린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대다수 언론이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신변에 대한 질문이다. 이 회장은 회사 자금 횡령 등으로 지난 1월 법정 구속됐다. 부영 측은 이 회장의 건강상 이유를 들어 구속집행을 정지해달라고 요청했고, 법원은 지난 6월 수용했다. 부영그룹의 무상 기증을 단순히 ‘선행’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영그룹이 무상 기증을 약속한 것은 지난 2018년 1월 한전공대 설립지원위원회가 부영CC를 학교부지로 결정하고 난 후 그해 8월이었다. 무상 기증식이 이중근 회장 구속집행정지기간 중 열린 것은 언론을 활용해 여론에 ‘선처’를 구하는 ‘이벤트’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속집행정지 기간이 만료되면서 지난달 30일 구치소에 갇히긴 했지만 이 회장은 무상기증을 통해 이미지 세탁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둘째 806억원에 달하는 부지를 정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증했을까라는 질문이다. 다행히 지역 매체를 중심으로 부영그룹의 ‘꼼수’를 파헤치는 중이다. 광주일보는 2일자 1면에서 한전공대에 부지를 기증하고 남은 35만2294㎡ 부지에 부영그룹이 최고 28층짜리 아파트 5328가구를 짓기 위한 용도 변경을 나주시와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전공대에 부지를 무상 기증한 이면에 수천 가구 아파트 건설로 특혜를 노린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충분히 합리적이고, 검증해봐야 할 질문이다. 전남일보는 사설에서 “부영그룹이 골프장 부지를 한전공대에 기부한 것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면서도 “하지만 그걸 빌미로 본전을 뽑겠다는 듯이 나주시에 과도한 특혜를 요구하는 것은 순수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중앙지 중 유일하게 특혜 주장을 제기한 언론은 경향신문(전국 12면)이었다.

▲ 7월2일 광주일보 1면
▲ 7월2일 광주일보 1면

최근 정부와 공기업의 YTN과 서울신문 지분 매각 방침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자본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미디어 속성을 고착화시킬 수 있는 소유 구조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언론사 인사나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언론사 지분을 소유할 이유도 없고 국가채무 비율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라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정부의 언론사 지분 매각에 따라 공영 미디어가 민영으로 바뀔 경우 보도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는 커질 수 있다. 언론사 정부 지분 매각 방침이 현실화되고 이후 특정 기업의 소유 문제에만 이목이 집중되면, 미디어 공공성에 대한 언론계의 고민은 사치에 가까운 목소리에 그칠는지도 모른다. 자본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 저널리즘의 고질적인 문제다. ‘진짜’ 뉴스가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지분 매각 방침 논의에서 최우선 가치는 ‘진짜’ 뉴스를 원하는 시청자와 독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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