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시급으로 계산해도 300만원은 넘게 벌 근무시간인데 젊은이들의 열정, 꿈을 이용해 말도 안 되는 금액(30~50만원)으로 착취를 하는 이 업계가 너무 역겹습니다.“ (청년유니온 조사 결과 보고서 중)

모델·연예인 의상 등을 담당하는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들이 심각한 수준의 노동법 위반 사각지대에 처한 사실이 확인됐다. 열에 아홉이 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며,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시간당 임금이 평균 3989원밖에 되지 않았다. 강한 위계 질서 속에서 관리자가 폭언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갑질도 흔했다.

청년유니온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252명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5~21일간 어시스턴트 관련 종사자들에 온라인으로 무작위 배포해 252명의 응답을 받았다.

252명 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어시스턴트는 9명(3.57%) 뿐이었다. 4대 보험 관련해 205명(81.35%)은 어떤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모두 다 가입한 응답자는 13명(5.16%), 일부만 가입한 응답자는 16명(6.35%)였고 나머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청년유니온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252명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년유니온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252명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반면 업무로 인한 부상·질병 경험은 많았다. 211명(83.73%)이 부상·질병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청년유니온은 ”의상이나 기타 물품, 무거운 짐 등으로 인해 어깨 무릎 통증이 유발되며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되는 노동 환경으로 스트레스성 위염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열에 여덟은 ‘정해진 휴일 없이’ 일했다. 휴일이 미리 정해져 있느냐는 질문에 222명(88.10%)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한 달에 휴일이 8일도 나오지 않았다. 최근 한 달 동안 휴일이 0~5일이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128명(52.67%)이었다. 88명(36.21%)이 5~10일이라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휴일도 이날 쉬자 해놓고 그날 새벽에 전화해 다른 일정 나가달라고 하는 바람에 두 달에 한 번 쉰 적도 있다. 정말 1주에 (휴일이) 하루만이라도 보장되면 정말 좋을 거 같다”고 밝혔다.

이들은 열악한 장시간 저임금 구조에 처해 있었다. 응답자 236명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49시간이다. 206명(87.29%)이 매일 9시간 넘게 일한다고 답했다. 평균 수면시간도 5.56시간으로 건강을 해치는 수준이었다. 응답자 243명 중 123명(50.6%)가 수면시간이 6시간 미만이라고 답했다. 2~4시간이라 답한 응답자는 18명이다.

반면 월 평균 임금은 97만2400원. 응답자 83.3%(210명)이 월 150만원 미만을 벌었다. 월 50~100만원을 번다고 답한 응답자가 109명(43.25%)로 가장 많았고, 50만원 미만이 18명(7.14%)이었다. 월 100~150만원 응답자는 83명(32.94%)이었다.

이에 따라 청년유니온은 시간 당 평균임금이 3989원으로 산출된다고 밝혔다. 2020년 최저임금 8590원보다 4600원 적다.

적은 월급에 비합리적인 지출은 상당했다. 주먹구구식 손해배상이 컸다. 응답자 절반 가까이가 손해배상금을 낸 적이 있다고 밝혔는데, 본인이 분실하거나 물품에 손상을 입히지 않았음에도 ‘관리 담당’이라는 이유로 배상을 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내가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팀장이라는 이유로 170만원짜리 한 명품 상의를 배상했다”거나 “198만원 드레스를 팀원들이 나눠서 갚았는데 월급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청년유니온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252명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년유니온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252명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와 관련 실장 등 관리자의 갑질도 심각했다. 응답자들은 설문조사의 ‘남기고 싶은 말’ 서술형 문항에서 공통적으로 ‘갑질’ 피해 사례를 적었다. 한 응답자는 “내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 물건 분실이나 하자를 내 탓으로 돌려 배상하게끔 몰아갔다. 하루는 책가방을 메고 출근했는데 퇴근할 때 가방을 마음대로 열고 뒤져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기분이 더러워서 그 다음부터는 배낭을 절대로 메고 다니지 않는다”고 답했다.

관리자가 “스팀(다리미 종류)을 집어던졌다”거나 “행거(옷걸이)를 엎었다”는 폭력 행위도 고발됐다. 한 응답자는 “픽업한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행거를 엎는 일은 종종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욕설과 언어폭력은 기본이었다”고 밝혔다. ‘머리는 왜 달고 다니니’ ‘X신’ 등의 욕은 기본이라고 답한 어시스턴트도 있었다.

이밖에 실장이 자신의 강아지를 돌보라고 시키거나 쇼핑에 데려가는 사적인 지시도 고발됐다. 일부 응답자는 실장이 속옷 색깔까지 참견하면서 바꾸라며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실장이 새벽에 잠들 때까지 그의 카카오톡에 답변을 해야 한다는 고충도 나왔다.

기자회견에 가면을 쓰고 참석한 어시스턴트 A씨는 “2020년 한국에서 아직도 구두계약으로, 월급 50만원 받고 정해진 휴일없이 부르면 나가서 일하고, 마치 개인 시간을 다 뺏긴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며 “담당 스타가 돈을 많이 버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토로했다.

A씨는 또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어시’들이 이 환경에 체념하며 적응해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다들 먹고 잘 시간조차 없어서, 소문이 나면 밥줄이 바로 끊기니까. 아무도 이 말도 안 되는 노동환경을 바꾸려는 시도조차,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은 이에 특별근로감독 촉구를 시작으로 어시스턴트 노조 설립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임금체불 사례자를 모아 집단 진정을 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어시스턴트들이 밀집한 압구정에서 현장캠페인을 열어 열악한 노동실태를 알리고 ‘청년유니온 패션어시지부’를 설립해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