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들이 식민지배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한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과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도 고소인으로 참여한다.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 10명과 이들을 대리하는 양태정 변호사(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일종족주의’ 및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집필진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동석하기로 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다고 주최측은 설명했다.

‘반일종족주의’는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로, 강제징용은 ‘입신양명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표현하거나 독도를 일본에 줘야 한다는 등 극우·친일사관을 담은 책이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주익종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과 이우연을 비롯한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공동저자다. 이영훈 교장은 지난달 후속 저서(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를 냈다.

역시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주장으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던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경우 일본 우익 잡지 ‘하나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돈 벌러 자원한’ 사람이라 주장하고,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이 매춘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며 일제 만행을 옹호하는 내용의 기고를 실었다. ‘하나다’는 이 글을 한국어로도 번역하며 ‘혐한 기류’ 부채질에 사용했다.

▲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일제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족들이 ‘반일종족주의’ 저자 및 류석춘 연세대 교수에 대한 고소 계획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일제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족들이 ‘반일종족주의’ 저자 및 류석춘 연세대 교수에 대한 고소 계획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유족들은 고인이 됐거나 끝내 찾지 못한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분을 터뜨렸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강제징용으로 부친을 떠나보낸 이윤재씨는 ”우리 아버지의 시신도 유골도 못 찾고 있다“며 “일본 사람들이 밥 한 주먹으로 세끼를 때우라며 아버지에게 노역을 시켰다고 한다. 그 교수님들 여기 와서 좀 앉아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장덕환 강제노역피해자정의구현전국연합회 대표는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말과 행동이 참으로 인면수심이다. 일제 만행으로 우리 선친을 비롯한 수십 수백만명이 전쟁터로 탄광으로 끌려가서 굶어 죽고 매맞아 죽었다”며 “생각은 자유롭다. 표현은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막말·거짓말은 역사를 속이는 일들로 반드시 심판 받을 것이다. 먼 훗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돼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피해자·유족을 대리하는 양태정 변호사는 ‘반일종족주의’ 저자와 류석춘 교수 등을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내주까지 고소인을 모집해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한다는 계획이다.

양 변호사는 고소 대상자들에 대해 “수많은 사료와 당시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에 전혀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자들로서 최소한 자존심·양심도 버리고 일본 우익 논리를 답습했다”며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 반세기 넘게 살아오신 일제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가족을 다시 치욕과 절망으로 밀어넣고 대한민국·일본 동아시아의 건전한 미래를 망치는 행위는 결코 용납돼선 안 될 것이다. 부디 사건을 담당할 사법기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연세대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모교에 류 교수 파면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동석한 송영길 의원(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일부 강의금지 등 징계 조치에도 파문을 일으키는 걸 보면 정말 죄질이 안 좋은 것 같다. 변재일 의원이 민주당 연대 출신 의원 대표인데 상의해서 연세대 총장에게 류 교수 파면을 촉구하는 강력한 서한을 전달할 예정”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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