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을 감금·협박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 국정원 직원의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혐의가 국가 안보와 관련이 적은 데다 고문에 가까운 반인권 범죄라는 점에서 비공개 이유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판사는 지난 5월부터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 위반과 위증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 박아무개씨와 유아무개씨 사건을 심리 중이다. 첫 공판은 지난 5월20일 열렸고 지난달 19일 2차 공판까지 진행됐다.  

두 공판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송 판사는 재판 시작과 동시에 이 재판은 비공개 재판이라 밝히며 사건 관계인과 피해자 대리인, 피해자 변호인을 제외한 모든 방청객을 퇴정시켰다. 판사는 피고인석에 앉은 국정원 직원 앞에 이들을 가리는 차폐막도 설치했다.

당장 피해자 측에선 법원이 국정원 직원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들어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공개 근거의 설득력이 부족한데다 이 사건이 고문에 가까운 협박이 이뤄진 반헌법적 범죄라는 점에서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사진=뉴스타파 '자백이야기' 영상 갈무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사진=뉴스타파 '자백이야기' 영상 갈무리
▲2013년 3월 4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보전절차의 녹음파일 일부.
▲2013년 3월 4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보전절차의 녹음파일 일부. 유씨가 국정원의 증거 조작을 말하고 있다.

 

비공개 재판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국가 안보 등을 공개 예외 사유로 정한 법원조직법과 국정원 조직 비공개를 정한 국정원법 등이다. 법원조직법 제57조는 “국가의 안전보장, 안녕질서,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재판을 비공개할 수 있도록 정한다. 국정원법 6조는 “조직·소재지 및 정원은 국가 안보를 위한 경우 내용을 비공개할 수 있다”고 정한다. 

허위 자백 강요와 위증은 국정원 직원들의 업무상 비위 행위로 국가 안보를 해친다고 보기 어렵다. 즉 국가 안보를 전제로 비공개 조건을 둔 두 조항 모두 적용할 여지가 적다. 범죄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직원 개인이 '정원'에 포함되는지도 모호하다.

‘전기고문 받아볼래’ 폭언·폭행한 국정원 직원

특히 이 사건은 국정원의 각종 증거·증인 조작이 확인된 ‘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일부다. 간첩으로 몰렸던 피해자 유우성씨는 2013~2015년 동안 법정 다툼을 벌였고 1·2·3심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때 국정원의 간첩 조작 핵심 증거가 우성씨 동생 유가려씨 증언이었다. 그러나 이는 허위 자백이었고 가려씨는 이 과정에서 폭행·협박·감금이 동원됐다고 밝혔다. 우성씨의 2·3심 재판부 모두 “(가려씨가)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국정원 측의 회유에 넘어가 허위 진술했다”며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수사관의 실명을 몰랐던 가려씨는 자신을 협박한 수사관 3명을 ‘대머리’ ‘아줌마’ ‘큰삼촌’ 수사관이라고 불렀다. 가려씨는 2012년 10월31일부터 2013년 4월26일까지 합신센터(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개명)에 감금돼 수사를 받았다. 가려씨는 대머리·아줌마 수사관이 자신을 수차례 때렸고 ‘오빠와 한국에서 함께 살게 해 주겠다’며 회유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 ‘아줌마 수사관’은 박씨, ‘대머리 수사관’은 유씨였다. 이들 공소장을 보면 박씨는 2012년 11월 5일 화교임을 부인하던 가려씨에게 ‘X년이 질기다. 거짓말 잘하네. 밥 먹듯이 하네’, ‘X년, X 같은 X, 혼나봐야 정신차릴래’라고 욕하고, 책상 위에 있던 서류뭉치를 들어 의자에 앉은 가려씨 머리를 계속 때렸다. 

폭언·폭행은 이후 한 달 여간 지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가려씨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벽에 부딪히게 했고 가려씨 허벅지를 발로 걷어찼다. 또 ‘전기고문을 시켜야 정신이 번쩍 들겠나’라고 말한 후 가려씨를 어느 방 앞으로 데려가 전기고문 할 것처럼 위협도 했다. 이어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쓴 종이를 가려씨 배와 등에 붙인 후 숙소 건물 앞으로 가 ‘탈북자로 가장해 들어온 나쁜 X이다. 구경하세요’라고 외쳐 모욕했다. 

유씨도 박씨와 함께 가려씨를 때렸다. 검찰은 유씨가 ‘사실대로 말 안 해. 너 오빠 밀입북 몇 번 갔다던데’라고 말하며 플라스틱 물병으로 가려씨 머리를 수차례 때렸고, 몸을 떠는 가려씨 다리를 발로 차고 그를 일으켜 세운 후에도 물병과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렸다고 공소장에 썼다. 

가려씨가 이후 억지로 말한 진술을 다시 번복하자 박씨와 유씨 모두 가려씨에게 ‘거짓말이 밝혀지면 가만두지 않겠다’거나 ‘진술번복죄는 간첩죄보다 더 크다. 너 야단났다. 어떻게 감당할래’라며 화냈다. 또 박씨는 가려씨 머리를 밀어 벽에 부딪히게 하고, 유씨는 플라스틱 물병으로 가려씨 머리를 때렸다. 일련의 폭행·협박은 공소장 4장에 걸쳐 자세히 적혔다. 

그러나 박씨와 유씨는 2013년 우성씨 간첩 혐의 조작 사건 1심 재판에서 ‘가려씨에게 폭행하고 폭언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검찰이 지목한 위증죄다.

검찰은 이와 더불어 “국정원 직원으로서 가진 행정조사권을 남용해 피해자 가려씨에게 진술을 강요해 의무 없는 불리한 진술을 하게 했다”며 박씨와 유씨를 국정원법 11조 직권 남용 금지 위반으로 지난 3월 기소했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수사기관 증거 은닉, 날조 혐의 등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 피해자 유우성씨가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수사기관 증거 은닉, 날조 혐의 등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 피해자 유우성씨가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고문 피해자조차 ‘비밀 법정’에서 증언할 판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장경욱 변호사는 이와 관련 “고문 범죄인데, 국정원 직원을 보호하는 식으로 (재판이 비공개돼) 언론도 방청할 수 없고, 차폐막으로 피고인을 가려서 방청이 허가된 우리(피해자 측)조차 볼 수 없다”며 “고문 피해자가 증언하는 날에도 아무도 방청할 수 없을 것이고, 국정원 직원들이 나오면 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안의 중대성과 더불어 국정원의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재판을 공개해야 하는데 비공개는 이해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국정원 직원이 비공개 재판을 요구해도 재판부는 불허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비방한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원 장아무개씨와 황아무개씨 재판이 예다. “신분 노출이 있을 수 있다”는 이들 주장에 당시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재판 전체를 비공개하는 경우는 국가 안보 등을 위한 경우로 (법규에) 돼 있는데, 그 사유가 조금 미흡하지 않나”라며 거절했다. 재판부는 “증인의 신변보호나 내용 자체가 민감한 경우 등 사안별로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오는 3차 공판은 피해자 가려씨와 우성씨의 증인 신문이 예정됐다. 재판부가 비공개 심리를 유지하면 피해자들은 사건 관계인만 출석한 ‘비밀 법정’에서 증언하게 된다. 3차 공판은 9월23일로 예정됐다. 

이밖에 검찰 측 증인은 권영철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 및 이재윤 처장, 당시 가려씨를 수사했던 국정원 수사팀의 신아무개씨, ‘좌익효수’라는 필명으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비방한 댓글을 달았던 유아무개 전 국정원 직원 등이 채택됐다. 신씨는 가려씨가 ‘큰삼촌’이라 부른 수사관이다.

변호인 측은 유씨와 박씨의 상급자 국정원 직원 2명을 증인으로 신청해 채택됐다. 이밖에 탈북민 2명을 신청했으나 보류됐다.

한편 이 사건 재판장 송승훈 판사는 2003년 국정원에 근무한 이력이 있다. 송 판사는 1998년 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1년 30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고 그해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어 2003년부터 국정원에 근무한 뒤 2006년 광주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