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언론의 주요 수익원은 지방자치단체다. 보통 언론의 주 수익원은 기업이지만 기초지자체일수록 지자체 내 규모가 큰 기업이 적고, 구독료 비중이 탄탄한 매체도 많지 않다. 자연히 공공기관 광고나 행사 협찬 등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지자체 홍보비엔 특별한 역할도 있다. 다양한 언론의 생존을 지원하면서 지역 여론 다양성을 지키는 효과다.

그러나 지자체의 언론사 홍보비 집행 기준이 마련된 지 7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 전국 226개 광역·기초 지자체 중 대여섯 곳만 관련 조례를 갖고 있다. 이들마저도 개별 집행 금액은 공개하지 않아 ‘반쪽짜리’ 조례라는 비판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나머지 200여개 지자체다. 원칙 없이 과거부터 유지된 관행대로 홍보비를 집행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5월11일자 무주신문에 실린 "무주군 광고홍보비 '편중' 심각... 집행기준은?" 기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지난 5월11일자 무주신문에 실린 "무주군 광고홍보비 '편중' 심각... 집행기준은?" 기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전북 무주군 주간신문 ‘무주신문’이 쓴소리를 하고 나섰다. 지역 언론으로선 이례적이다. 지자체의 편향적 광고비를 비판한 기사는 적지 않으나 이 가운데에는 ‘왜 우리 매체에 광고비를 주지 않느냐’는 불만 표출 기사가 상당하다. 무주신문은 이와 선 긋고 지난 5~6월 “시민 혈세를 아무 기준 없이 집행하는 관행은 바로 잡아야 하고 지자체 입맛대로 악용돼선 안 된다”고 보도했다. “지역사회 합의로 집행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무주신문은 지난 5월 “반딧불축제는 혈세잔치?… ‘홍보비 중복’”(5월4일) 기사를 시작으로 홍보비 문제를 조명했다. 이어 매주 꼴로 “무주군 광고홍보비 ‘편중’ 심각… 집행기준은?”(5월11일), “택시 랩핑 광고도 지역마다 차별? 홍보비 집행기준 마련 요구”(5월18일), “무주군 신문구독료, 과도한 ‘혈세 낭비’”(6월1일) 등의 기사를 연속 보도했다.

초점은 주먹구구식 예산 집행을 비판하는 데 있다. 예로 무주군의 주요 연례 축제인 ‘반딧불축제’ 홍보비는 무주군청과 별도 축제위원회에서 동시에 지출돼 2017~2019년 동안 7억 2581만원이 소요됐다. 이 중 군청 출입기자를 둔 도내 일간지에만 최소 2억6500여만원이 광고비로 나갔다.

특히 3년 동안 인쇄매체에 집행된 군정 홍보비 7억3000만원 중 군청 기자단이 있는 13개 매체에만 77%에 달하는 5억6665만원 가량이 지출됐다. 집행 금액은 언론사 별로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광고비 집행 순위는 유가 부수 발행 순위 등 지표와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무주신문은 “기준 없이 형편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취재를 한 이진경 기자(38)의 도구는 정보공개청구였다. 지난해부터 차근차근 자료를 모으기 시작해 군의 가장 큰 축제인 반딧불축제를 비롯해 최근 3년 간 무주군 전체 광고비 집행 내역을 구했다.

이 기자는 “정보공개청구 건마다 ‘광고홍보비 집행기준은 무엇입니까’를 물었다. 과연 무주군에 제대로 된 홍보 컨트롤타워는 있는가 묻고 싶었다”며 “어떤 건은 달랑 문서 한 장으로, 굉장히 성의 없는 자료를 받아서 분석 자체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무주군 본예산서 중 ‘부서별 세출예산 사업명세서’에서 관련 자료를 찾느라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6월1일 무주신문 1면. 사진=무주신문 제공.
▲6월1일 무주신문 1면. 사진=무주신문 제공.
▲5월11일 무주신문 기사. 사진=무주신문 제공.
▲5월11일 무주신문 기사. 사진=무주신문 제공.

이 기자는 이어 “다행히 3년 간 ’무주군 전체 광고비 집행 내역’은 흡족할 정도로 내용이 충실했다”며 “문제는 자료 분석이었다. 행여나 원 단위 하나 틀릴까 싶어 일일이 엑셀로 세부항목을 나누고 집행 금액을 나열해가며 몇 날 며칠 자료를 취합·분석했고, 타 지차체 광고홍보비 집행사례를 비롯해 관련 기사도 꼼꼼히 수집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것보다 심리적 압박감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군의 광고홍보비는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다. 언론계에는 기자를 상대로 불편한 기사를 쓰지 않는 관행이 있고, 이 같은 관행으로 광고비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쉽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이 기자는 “별다른 견제가 없었던 까닭에 해마다 언론 홍보비 예산은 증가했다. 과거 수차례 홍보비 과다지출 문제가 지적됐는데도 무주군을 홍보한다는 명분으로 아무런 제재 없이 관행으로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 “신생 언론사 기자로서 지역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 사회의 뿌리박힌 불합리함을 발견하곤 한다. 그 중 하나가 홍보비 집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사는 광고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 광고가 많지 않은 지역일수록 관공서가 가장 큰 광고주”라며 “경영이 어려운 지역언론 입장에서는 최대 광고주인 관공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홍보비에 ‘언론 길들이기’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기자는 무주군이 조례 제정에 나설 때까지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그는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제일 두려웠던 것이 바로 ‘대답 없는 메아리’로 그치고 마는 것이었다”며 “하반기에는 더 구체적으로 ‘언론 홍보비 집행기준 마련 및 관련 기준 조례 제정’을 목표로 지역민 관심을 유도할 만한 아이템을 고민해보고 지면에 담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이 보도로 지난 6월15일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시민이 뽑은 5월의 좋은 기사상’을 받았다. 전북민언련은 “자치단체의 명확한 홍보비 집행 기준 마련은 무주군뿐 아니라 전라북도에 있는 모든 지자체에 해당되는 사안”이라며 “그러나 언론사 차원의 관련 보도를 찾아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무주신문은 지역민 180여명이 조합원인 협동조합형 지역 주간지로 2018년 6월 창간했다. 구독자는 현재 1600명에 다다랐다. 무주신문 기치는 “지역민의 눈과 귀가 되는 소통 언론, 올바른 지역 여론형성”이다. 이 기자는 “신문사가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지 돈을 벌기 위해 신문을 만들면 안 된다”는 한 선임기자 조언을 전하며 “이 말처럼,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보고 지역의 입으로 지역을 말하되 언론의 정도와 본분을 지키는 지역신문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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