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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1면 코로나 사망 기사가 주는 교훈
뉴욕타임스 1면 코로나 사망 기사가 주는 교훈
부고가 아닌 사망기사를 써야 하는 이유… 이준웅 교수 “제대로 된 사망기사는 곧 ‘감시자’의 역할 그 자체”

잭 버틀러, 78, 인디아나, 유년시절의 고향에서 계속 살았던 사람. 
수잔 그레이, 97, 웨스트우드, ‘펠넬로페’라는 이름으로 즐거운 글을 썼던 사람.
제임스 데이비드, 72, 뉴시티, 등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음.
마리 조 다비토, 82, 톨톤,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즐거워함.

지난 5월24일 뉴욕타임스가 1면에 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들의 목록 중 일부다. 단순히 죽은 사람 이름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망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1줄로 요약해 덧붙였다. 이 명단은 1면을 가득 채웠다. 뉴욕타임스는 어떻게 이 많은 사람 특징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을까. 

25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진행된 ‘죽음을 대하는 저널리즘의 자세’에서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의 해당 기사를 두고 “희생자 이름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삶이 있는 사망 기사”라고 평가했다. 

▲5월24일 뉴욕타임스 1면.
▲5월24일 뉴욕타임스 1면.

이 교수는 “뉴욕타임스의 해당 사망 기사 취재기를 보면, 뉴욕타임스 소속의 리서처와 3명의 대학생들이 지역지들 부고를 뒤져서 기사를 만들었다”며 “각 지역지 부고 기사들을 모두 모아 한 문장으로 정리해 탄생한 기사”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부고’와 ‘사망 기사’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부고는 유력인사 죽음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사망 기사는 의미 있는 삶의 궤적을 이야기한다는 것. 이 때문에 부고는 죽은 자의 이익을 위한 글이라면 사망 기사는 쓰는 자의 관심을 보여준다고 했다. 부고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사망 기사는 특정 기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사망 기사를 쓰려면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며 “잔잔하지만 중요한 기록을 이야기로 풀 수 있어야 하며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함께 공유하려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사망 기사를 잘 쓰려면 해당 인물이 사망하기 전 평소에 쓰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정치부 기자라면 4선 이상의, 현대사를 꿰뚫는 정치 인물들의 ‘사망 기사’를 평소에 쓰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예로 2011년 3월23일 뉴욕타임스에 헐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망 기사가 실렸는데, 그 사망 기사를 쓴 기자는 2005년 사망한 멜 구소 기자였다. 

멜 구소 기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살아있을 당시 사망 기사를 쓰고 뉴욕타임스 편집기자에게 넘겼는데, 자신이 사망 기사를 쓴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6년 먼저 세상을 뜬 것이다. 이후 멜 구소 기사를 편집자가 보관하고 있다가 2011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사망하자 해당 기사를 공개했다. 

뉴욕타임스에는 기자들이 특정 인물의 사망 기사를 먼저 써놓고 저장해두는 관행이 있어 훌륭한 기사들을 노출할 수 있었다. 

이준웅 교수는 훌륭한 사망 기사는 그 자체로 ‘감시자’라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누군가 나의 사망 기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사회의 여러 인물이 그 눈을 의식해 더 좋은 삶을 살려고 할 것”이라며 “제대로 된 사망 기사가 곧 제대로 된 감시자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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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6-27 17:35:03
부고가 아닌 사망기사를 써야 하는 이유… 이준웅 교수 “제대로 된 사망기사는 곧 ‘감시자’의 역할 그 자체” <<<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