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인의 토크 패턴을 노회찬 이전과 노회찬 이후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면 한국 노동운동 홍보물은 류호정 이전과 류호정 이후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의 평가다. 노동운동계에서 노조홍보물이 세련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은 오래됐지만 어떻게 바꿀지 제시한 사람은 없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과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화섬노조)에서 선전홍보부장 시절 만든 홍보물을 주목해보기 위해 미디어오늘은 지난 24일 류 의원을 그의 의원실에서 만났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24일 자신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류호정 의원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24일 자신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류호정 의원실

 

하 교수가 가장 인상 깊게 본 홍보물은 움직이는 웹자보였다. 지난해 11월 전국노동자대회 화학섬유연맹 사전대회 안내 포스터로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장과 네이버지회장이 각각 배경음악과 함께 등장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사전집회 일정과 함께 선보인 온라인용 포스터다. 기존 노조 홍보물은 여러 색을 사용해 각각의 문구를 강조하고 여러 글씨체를 써 가독성이 떨어졌다. 

류 의원은 디자인을 바꾸고 노조 이미지도 바꿔나갔다. 그는 “인지도 없는 노조가 투쟁한다고 화난 아저씨들이 조끼입고 팔뚝질하는 사진만 나오면 질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조에 와서 한달이 채 안됐을 때 한국음료가 파업 100일을 맞았다. 일단 ‘한국음료’를 사람들이 잘 몰랐다. LG생활건강의 하청업체가 코카콜라이고, 다시 그 하청업체가 한국음료다. 

류 의원은 “한국음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몇 년에 걸쳐 나빠졌고, 노사 교섭하는 몇 개월간 분위기도 안 좋아졌으며 파업한지 100일이 지나는 ‘과정’이 있는데 ‘현재 시점’, 화난 이미지만 내보내선 안 됐다. 맥락을 설명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코카콜라, 파워에이드, 미닛메이드 등 한국음료가 만드는 음료병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동조건이 나빠졌는지 소개했다. 병따개는 노측, 병뚜껑은 사측으로 표현해 교섭에서 노사가 왜 갈등하는지 등을 영상에 담아냈다. 기자들에게 전화로 길게 설명하기보단 일단 이 영상을 보내주고 취재를 시작했다. 류 의원은 “시민들도 함께 분노할 준비가 돼야 함께 싸울 수 있다”며 “먼저 시민들을 설득하자”고 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음료 파업100일 영상',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뜻으로 만든 무지개색의 화섬노조 깃발', '섬식이', '화섬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만드는 제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상자' 영상화면 갈무리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음료 파업100일 영상',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뜻으로 만든 무지개색의 화섬노조 깃발', '섬식이', '화섬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만드는 제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상자' 영상화면 갈무리

 

그에겐 게임업계에 있으면서 쉽고 재밌게 설명하는 게 익숙했고, SNS 관리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란 긴 이름 대신 ‘섬식이’로 불렀고 섬식이 인스타그램 계정(@nojostagram)도 만들었다. ‘네이버는 파업을 하게 되나요?’라는 영상은 쟁의행위, 파업 등의 노동법 용어를 상세하게 설명해 다른 노조들 교육 영상으로 활용했다. 

화섬노조 조합원들이 만드는 제품들로 크리스마스 선물상자를 만드는 영상도 참신했다. 해태제과지회, 미찌푸드지회 등이 만든 과자를 상자 벽면에 담고 그 안에는 카카오지회 굿즈(소주잔), 넥슨지회 넥슨카드, 스마일게이트지회 굿즈(볼펜), 파리바게뜨지회 사탕 등을 상자에 넣으며 내레이션으로는 각 지회와 노조상황 등을 소개한 영상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제품으로 노조를 설명해 거리감을 줄인 시도였다. 

류 의원은 “그 영상을 구독하고 홍보하는 분 두명을 뽑아 영상에서 만든 크리스마스 상자를 실제 보냈다”며 “팔로워를 늘리는 마케팅 수단으로도 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누구누구 지회도 있는데 왜 안 넣어줬느냐’고 해서 ‘설날 복주머니로 합시다’ 답했지만 다른 투쟁으로 못했다”며 “노조 활동은 계획대로 하기가 어렵다(웃음)”고 했다. 게임업계에선 여름·겨울방학 시즌 이벤트가 많아 그에겐 낯설지 않은 행사였다. 

▲ 움직이는 웹자보(왼쪽)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키우던 강아지 댕댕이 관련 게시물. 사진=노조스타그램 갈무리
▲ 움직이는 웹자보(왼쪽)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키우던 강아지 댕댕이 관련 게시물. 사진=노조스타그램 갈무리

 

민주노총의 다른 산별과 연대하는 홍보물도 제작했다. 류 의원은 ‘일상속의 노동조합’을 추구했는데 지난해 뜨거웠던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 홍보물 ‘톨게이트 댕댕이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류 의원은 “애완동물이 고속도로에 많이 유기되는데 그들을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데려다 키운다”며 “당시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욕심을 낸다는 등 (근거없는) 비난을 많이 받았는데 이분들도 평범한 시민이고 우리 곁의 사람이란 걸 이런 이야기로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언론에 비친 ‘청년’ ‘여성’ 정치인

노조에서 일하던 그는 최연소 정치인으로도 주목받았다. 젊은 여성 정치인을 향한 부적절한 시선도 있었다. 민영뉴스통신사 뉴스1코리아(뉴스1)에서 류 의원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해 사진기사로 보도했다. 사진 기사 댓글에는 “얘는” “너는” “정치도 모르는 새파란 사람” 등 젊은이에 대한 비난이나 업무보다 외모에 신경쓴다며 비하하는 내용이 다수 있었다. 위키트리는 머리를 넘기거나 거울보는 모습 등 몇몇 사진을 류 의원 관련 기사 썸네일(미리보기 이미지)로 반복해 썼다. 

국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년 남성 정치인에겐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류 의원은 “사진기자들이 관심 가져주고 다양한 모습을 찍어 보도하는 건 좋다고 생각했고 처음엔 (위키트리 썸네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라는데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진이 쓰였고, (매체가) 의도를 가지고 (반복) 선택한 건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 위키트리 류호정 의원 관련 보도 썸네일
▲ 위키트리 류호정 의원 관련 보도 썸네일

 

정의당, 이건 바꿨으면

류 의원이 속한 정의당은 총선 이후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혁신’을 고민하고 있다. 정의당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류 의원은 정의당의 노선과 철학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원내(국회내)-중앙당-지역위원회의 유기적인 소통을 위해 협업툴을 사용하고 컨트롤타워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류 의원실에는 노조 때 사용해 익숙한 ‘Dooray’라는 협업툴을 쓴다. 협업툴을 쓰면 특정 구성원이 잠시 부재해도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고 할 일과 한 일을 체크하며 서로의 진행 상황도 확인할 수 있다. 드라이브가 있어 자료를 저장하거나 찾기도 쉽다. 류 의원실에선 도메인을 만들어 이메일 체계를 통일하는 등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신경썼다. 

그는 “카톡·텔레그램 등 메신저를 기반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면 이슈를 한눈에 살펴보기 어렵고 자료보관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며 “담당 직원(활동가)이 떠나면 역사가 쌓이지 않고 다음 직원이 오면 구전하는 식이라 체계가 생기기 어렵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면 협업툴을 쓰자”고 말했다. 이어 “정의당엔 상근자가 아니라 생업하면서 활동하는 분들도 있어 메신저 기반보다는 정리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원내-중앙당-지역위원회의 소통과 업무분담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제안했다. 류 의원은 “‘원팀 정의당’을 말하는 만큼 지역현안을 모으고 일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기획조정실 같은 곳이 있어야 한다”며 “물론 지금도 상무위원회가 있고 각 본부가 있지만 미세혈관 수준까지 (메시지·업무 등이) 잘 전달되는 체계로 개선하면 좋겠다”고 했다. 

쿠팡으로 시작한 의정활동

류 의원은 3지망했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 배정됐다. 업무보고를 받고 숙지하고 있지만 해당 상임위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를 살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상임위에 가든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기 위해 노무사를 보좌진으로 섭외했다. 의원실에선 쿠팡을 수차례 비판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쿠팡노동자들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고, 최근 쿠팡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인터뷰를 담아 의원실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 지난 19일 류호정 의원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쿠팡 노동자 유족 인터뷰 '쿠팡 물류센터 조리사의 억울한 죽음' 영상화면 갈무리
▲ 지난 19일 류호정 의원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쿠팡 노동자 유족 인터뷰 '쿠팡 물류센터 조리사의 억울한 죽음' 영상화면 갈무리

 

“쿠팡 천안물류센터 직원 식당에서 일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고 제보가 왔어요. 락스와 세제를 섞어 청소를 하는데 코로나 이후 그 비율을 높인 거죠. 원래도 잘못된 건데 더 인체에 치명적이겠죠. 회사는 묵묵부답이고 세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일상으로 돌아가 정상화하도록 권유했어요. 산재신청 등 이후 일은 의원실에서 진행해 보고해 드리겠다고 했죠. 막내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날 아내가 쓰러졌대요.”

류 의원은 “(쿠팡 노동자 유족 사례처럼) 사람들은 뉴스에서 1명의 소식으로 듣겠지만 한명이 누군가에겐 100일 수 있다. 앞으로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 정치인 인터뷰 ]
① “우리 유튜브 잘되면 시민들에게 자리 내주고 싶어” - 최지선 미래당 미디어국장·우인철 미래당 대변인
② “맏형은 수백평 땅 있는데 동생 몇십만원 준다고 될 일이냐” - 김재연 신임 진보당 상임대표
③ 노동운동 홍보 전문가였던 류호정 정의당을 혁신할까 - 류호정 정의당 의원 
④ 기본소득당 용혜인이 말하는 기본소득 논쟁의 핵심 -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⑤ 조정훈 “부루마블 한 바퀴 돌면 20만원 준다, 그게 기본소득” -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⑥ 장혜영 “혁신 의견 받았더니 ‘네가 혁신대상’이란 말 들었다” - 장혜영 정의당 의원
⑦ “전국민고용보험, 청사진 있나? 하려면 제대로 해야” -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
⑧ “무급가족종사자, 여성배우자도 고용안전망 보호해야” - 송명숙 진보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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