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6·25전쟁(한국전쟁)의 정확한 표현이 “6·25 남침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현행법에서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일어난 전쟁’ 등으로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태 의원은 곧 법안을 발의해 이를 “‘6·25 남침 전쟁’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태영호X청년 토론회 6·25 바로알기’를 열고 청년들과 6·25전쟁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태 의원은 6·25의 주범을 명확히 하고 역사를 바로알자는 취지로 북한의 전쟁 당시 상황을 발제했다. 북한 김일성이 당시 소련 스탈린과 전쟁을 상의하면서 미국의 참전을 예상치 못했고, 단시일 내에 끝낼 것을 예상했지만 이에 실패하며 피해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태영호X청년 토론회 6·25 바로알기’ 토론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레를 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태영호X청년 토론회 6·25 바로알기’ 토론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레를 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태 의원에 따르면 주 타격부대는 서울로, 보조타격 부대는 춘천을 거쳐 수원을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춘천에서 국군 6사단이 인민군 2사단을 잘 막아 수원에 제때 도착하지 않자 주 타격부대가 서울 한강이남으로 건너오지 못하면서 국군에게 방어할 시간이 생겼다고 했다. 태 의원은 “전쟁의 1등공신에 대해 인천상륙작전, 낙동강전투 등 여러 설이 있지만 북한의 견지에서 보면 춘천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낸 6사단 김종오 대령”이라고 말했다. 

3일만에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3년으로 길어지면서 400여만명이 사망하고 한반도가 폐허가 됐다. 태 의원은 “북한에선 전쟁이 장기화되고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핵을 가지지 못한 것”을 꼽았다. 

그는 “공산당들은 전쟁을 할 때 ‘인민전쟁’이라고 해서 자신의 지역 사람들 관리·통제가 불가능해지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데 미국이 원자탄을 쓴다는 소문을 내고 삐라를 뿌렸다”며 “공포가 한번 생기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하니 하루 아침에 피난민 대열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로 추정할 수 있다.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6.25전쟁 관련 정확한 용어가 '6.25 남침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자료=태영호 의원실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6.25전쟁 관련 정확한 용어가 '6.25 남침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자료=태영호 의원실

 

태 의원은 북한이 6·25를 미국 ‘승냥이’와 남조선의 이승만이 일으켰다고 가르쳐 미국에 대한 적개의식의 당위성을 부여한다고 했다. 한 청년이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고 묻자 태 의원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데 문화의 힘만큼 큰 건 없다”며 “북한 사람들이 외부 세계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도 말했다. 

태 의원은 자신이 12살 때 평양외국어학원에서 미국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는데 당시 선생님은 영어공부를 위해 볼 뿐이므로 내용을 기억하지도 말고, 본 사실을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승냥이가 진짜 이런 영화를 만들었나”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22살 때 북경외대에서 교수가 6·25 주범을 김일성이라고 하자 자신이 반박했는데 중국 학생들이 모두 김일성이라고 말했던 경험,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시절 영화 태백산맥을 본 기억 등을 언급했다. 

이날 토론에는 많은 청년이 참여했다. 한 청년은 만약 탈남(남한이탈)해 북한으로 가면 혜택 등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태 의원은 “한국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는가가 중요하다”며 최덕신 전 외무장관을 사례로 들었다. 최 전 장관은 박정희 정부에서 국군 제1군단장, 외무장관, 서독주재대사 등을 지냈는데 대통령과 갈등으로 배우자와 북한으로 이주했다. 최 전 장관은 북한에서 환대를 받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종교단체 간부 등을 맡았다. 

태 의원은 “북한은 통일전선 전략에 의해 다 끌어안고 포용심있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질문자가) 대학생이면 배웠다고 생각해 대남사업에 쓰면서 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질문자가 “김일성 종합대학도 갈 수 있느냐”고 묻자 태 의원은 “희망하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태 의원은 영화 ‘출국’을 예로 들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베를린에서 공부하던 경제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북한에 갔지만 북한에서는 체제선전용으로만 이 학자를 활용한다는 이야기라고 소개하며 그는 “자유로운 곳에서 살다가 북한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태영호X청년 토론회 6·25 바로알기’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태영호X청년 토론회 6·25 바로알기’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한편 최근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태 의원은 “북한이 도발수위를 올릴 때는 가장 힘들 때”라며 “북한은 중국의 무상경제 지원에 기대어 살아왔다”고 말했다. 북한 도발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이 먼저 반응하고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중국에 요청을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은 수십년간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잘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태 의원은 “김정은이 꼬리를 내렸는데 이는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고, 당장 알기는 힘들겠지만 (중국과) 북한 간 얘기가 오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하반기 남북관계 (분위기)는 6월25일자 노동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대화가 있었던 지난 2018년에는 6월25일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지만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지난해엔 다시 6·25전쟁을 다시 거론하며 미국과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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