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한국 기자는 경찰 혹은 조사원 같았어요”
“한국 기자는 경찰 혹은 조사원 같았어요”
[인터뷰] 예멘 국적 언론인·난민 당사자 이스마일 알쿠블라니

2018년 4월 중순께 예멘인들이 제주 땅에 속속 발을 디뎠다. 도민들은 이들의 사연을 궁금해했다. 예멘인에게 내전 상황을 전해듣고 안타까워했다. 난민 신청이 잘 이뤄지길 빌며 환영했다. 5월 초, 제주 지역신문을 시작으로 예멘인들의 입국 소식이 전해졌다. 한 달 새 전국에서 보도가 쏟아졌다.

“제주에 왜” “왜 한국에 왔나”… 당시 대다수 기사 제목을 수놓은 문구다. 기사는 예멘인들이 왜 고향을 떠나왔는지 묻지 않았다. 난민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6월1일 한국정부가 예멘인의 무사증 입국을 차단했다. 그해 예멘 국적 난민신청자 549명 가운데 단 2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이스마일 알쿠블라니(32)씨는 “한국 미디어가 많은 것을 바꾸었다”고 했다. 이스마일씨는 그 자신이 예멘에서 전쟁과 인권 이슈를 보도해온 기자다. 2년 전 난민인정자 2명 가운데 하나다. 그는 “제주에서 차별적 상황에 빠져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역설적이게도 언론이 하는 질문으로 한국사회가 나를 보는 시선을 깨닫는다”고 했다. 22일 그를 만나 지난 2년 간 삶, 한국과 예멘 언론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스마일 알쿠블라니씨가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스마일 알쿠블라니씨가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스마일씨는 ‘안전한 삶’을 위해 예멘을 떠났다. 그는 예멘 수도 사나에 위치한 일간지 ‘올라신문(Al-Ola Newspaper)’에서 일했다. 앞서 2011년 2월 아랍의 봄 당시엔 예멘 청년 시위 지도부로 활동했다. 그는 후티 반군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예멘 내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실수”도 보도했다. 후티 반군이 납치하겠다는 협박을 해왔다. 수차례 위협에 그는 집을 떠나 1년 6개월을 숨어 지냈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 시절을 잊기 위해 산다”고 했다.

예멘의 언론 상황은 “기자들이 ‘저널리스트’가 되지 못하게 한다.” 그는 “예멘에서 기자는 정부와 반군 양쪽으로부터 위험에 빠진다”며 “양쪽 다 기자를 ‘무기’로 내세우려 하기 때문”이라 했다. 내전이 불붙었던 예멘 북부에선 언론사 90%가 문을 닫고 1~2곳만 남았다. “남아 있는 곳도 언론사라 할 수 없어요. 후티 반군이 원하는 대로 보도하니까요.” 예멘 언론인은 다수가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국경 안팎의 예멘인들은 왓츠앱 그룹이나 텔레그램,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

이스마일씨도 2017년 말 구명보트를 타고 예멘을 탈출했다. 아르메니아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로 왔다. 그가 ‘이제 안전하다’고 느낀 곳이다. 그러나 얼마 뒤 겪은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육지를 찾아 헤엄치는 것 같았다.”

▲이스마일씨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고향인 예멘 이브에서 열린 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스마일 제공
▲이스마일씨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고향인 예멘 이브에서 열린 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스마일 제공

출입국‧외국인청과 경찰, 기자는 끝없이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모두 ‘범죄’와 연관됐다. 경찰은 영어를 하는 그에게 ‘칼을 들고 다니지 말라’ 등 문구의 아랍어 번역을 부탁해왔다. 젊은 아랍인 남성이란 이유로 치안에 위협, 테러리스트라는 가짜뉴스가 성행했다. 한 한국 기자는 컨퍼런스 연사로 나선 그에게 “이성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까지 했다.

다수 기자가 예멘 난민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보고 추궁했다면, 나머지 다수는 예멘 내전과 난민 상황을 알아보려 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그가 지난 2년 간 자신을 취재하는 한국 언론의 모습이 저널리스트이기보단 “경찰” 또는 “조사원” 같았다고 말한 이유다. “내가 후티 반군을 피해 왔다고 하자, 기자가 ‘후티가 뭐냐’고 물어왔습니다. 어느 날 현장에 떨어진 조사원 같았어요. 하지만 ‘후티’가 뭔지 알아보지도 않고서, 왜 나를 인터뷰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언론이 예멘 난민에게 절대 묻지 않는 한 가지

기자들이 절대 하지 않지만, 던지길 기다리는 질문이 있는지 묻자 단순한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지내나요(How are you)?” 다수 언론이 예멘인이 한국에서 어떤 처지에서 살아가는지 무관심하단 뜻일 터다.

그는 최근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다. 난민에게 주어지는 F2 거주비자는 국민에 준하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히지만, 오히려 취업 시 한국어 능력이 필수로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난민에게 한국어 교육을 보장하지 않는다. 쇼핑백을 만드는 일을 하던 그는 작업장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자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고 있다. 그는 목포 현대삼호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겪은 예멘인 가운데 그가 영어 통역을 도운 이만 6명이라고 했다.

▲이스마일 알쿠블라니(32)씨는 지난 2018년 난민 인정을 받은 단 2명의 예멘인 중 1명이자, 그 자신이 예멘 내전과 인권 이슈를 다뤄온 기자다. 그는  “언론이 하는 질문으로 한국사회가 나를 보는 시선을 알게 된다”고 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스마일 알쿠블라니(32)씨는 지난 2018년 난민 인정을 받은 단 2명의 예멘인 중 1명이자, 그 자신이 예멘 내전과 인권 이슈를 다뤄온 기자다. 그는 “언론이 하는 질문으로 한국사회가 나를 보는 시선을 알게 된다”고 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그의 답변은 다른 한편 많은 언론이 예멘 내전을 겪은 이들을 당사자의 시선으로 묻지 않는단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에 대해 쓰는 많은 기사들을 보면서 신기했어요. 예멘인들이 겪는 심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이스마일씨는 지금까지도 내전 관련 악몽을 겪는다. 다른 예멘 난민도 마찬가지다.

“이제 ‘제주 예멘 난민’은 큰 뉴스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난민 이슈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서 취재해야 한다는 점은 남아 있습니다. 기자로서 나는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RSF)에 따르면 외국 기자는 예멘 현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예멘 기자들의 보도는 내전 세력에 갇혀 있다.

최근 5년 간 20여명의 예멘인 언론인이 후티 반군이나 알카에다에 의해 억류됐거나 숨졌다. 지난 3일 AFP 등에 기사를 내던 예멘인 사진‧영상 기자 나빌 하산 알퀘이티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총격으로 숨졌다. 언론인 4명은 현재 스파이 혐의로 사형선고에 직면했다. 예멘 아덴에서 후티 반군은 예멘 통신을 장악한 뒤 비판보도 언론사의 온라인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정부군 통제 지역에서도 민병대의 언론인 학대가 이어진다.

한편 한국 정부의 난민 인정 절차는 예멘 난민의 제주 입국 이래 어느 때보다 엄격하고 험난하다. 당시 제주로 입국한 예멘인의 인정률도 0.4%였다. 지난해 난민 인정자는 42명, 심사완료 건수의 0.4%에 그친다. 이는 난민법이 제정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평균 인정률 3.7%보다 턱없이 낮다. 법시행 전 평균 인정률 18.9%, 190개국 평균 인정률 30%와는 격차가 더 크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언론 보도에 떠밀려 난민에 불리한 정책을 펼치게 됐다고는 볼 수 없다. 예전부터 난민 인정률이 대폭 준 것만 봐도 그렇다”며 “인정자를 줄이려던 차에 예멘난민에 대한 근거없는 불안이 ‘기회’로 작용한 셈이다. 정부의 ‘난민의 제도 남용’ 프레임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난민법 악용 방지’를 목표로 난민법 개악안을 내놨다. 일부 난민신청자에 정식 심사에 앞서 적격성 심사를 받게 해 인정 절차를 늘리는 한편 재신청 기회는 제한하고, 신청 철회 간주사유를 넓히는 등 내용이 담겼다. 해당 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법원 등이 우려를 표명해 입법예고 전에 철회됐다.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지난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낸 성명에서 “정부는 난민에 대한 ‘남용’ 프레임을 중단하라. 국제 기준에 맞는 인권보장을 선포하고 제도를 정비하라”고 촉구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바람 2020-06-27 13:09:35
나는 솔직히 미안하다. 우리나라 부동산을 보라. 바로 옆 일본 버블붕괴를 보고도 규제(LTV, 대출)를 비판하며 내 집, 내 집만 외친다. 미국은 모든 국민이 내 집 외치다가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났다. 나도 사람의 탐욕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럴 땐 천천히 법제화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 혐오차별 금지법, 인구대비 출산율(인구 절벽)을 따져서 이민규제 완화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 법제화 없이는 그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법제화는 국회의원을 자주 만나면서 토론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모르면 알게 하는 것도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