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여성혐오’자는 아니야.”

특정 개념을 ‘어감’으로만 이해하고 논쟁하는 일이 많다. 개념을 통한 토론이 어감에 따른 논쟁으로 변질하면, 논쟁은 곧 싸움이 되곤 한다. 그리고 싸움의 이유는 더는 내용이 아니라 말투나 표정이다. 그래서 내가 정확히 모르는 개념이라면 쓰지 않는 게 좋다. 잘 모르긴 해도 ‘여성혐오’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개념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최근 중앙일보는 “정의연은 운동권 물주, 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감을 몰아준다고 ‘일감몰아주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일감을 많이 주는 모든 경제행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수직 계열화는 권장하기도 한다. 원하청 거래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도 긍정적인 일이다. 그래서 ‘일감몰아주기’는 규제의 필요성이 있는 특정한 형태의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규제하는 개념이다. 

그럼 일감몰아주기가 무엇일까? 공정거래법 제 23조의2(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조문 이름 그대로 ‘특수관계인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첫째, 일감몰아주기는 가족이나 친족과 같은 특수관계인에만 해당하는 규정이다. 가족이나 친족과 같은 특수관계인이 대상이 아니라면 ‘일감몰아주기’가 아니다. 나 또는 내 회사의 재산을 재벌 2세 또는 3세에게 세금 없이 증여하는 행위를 규제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공정거래법보다 증여세법에서 더 먼저 시행됐다. 즉, 비특수관계인에 일감을 주면 ‘일감몰아주기’가 아니다. 

둘째, 일감몰아주기는 ‘부당한 이익의 제공’을 규제한다는 의미다. 거래 가격이 정당한데도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규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당한 규모의 거래’가 핵심 논리다. 거꾸로 말하면 가격 등이 정당한 상황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가 아니라면 규제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제공 주체는 재벌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만 해당한다. 재벌만이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독립기업의 사업 기회를 박탈할 정도의 ‘상당한 규모의 거래’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에 따르면 ‘상당한 규모의 거래’는 200억원 이상과 매출액의 12% 이상의 거래를 뜻한다고 명시돼 있다. 

▲ 중앙일보 10일자 진보진영 일감몰아주기 비판 기사. 온라인에는 “정의연은 운동권 물주, 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란 제목으로 일감몰아주기라고 비판했다.
▲ 중앙일보 10일자 진보진영 '일감몰아주기' 기사. 온라인에는 “정의연은 운동권 물주, 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란 제목으로 '일감몰아주기'라며 비판했다.

 

결국, 중앙일보는 정의연 및 진보 시민단체들이 ‘일감몰아주기’를 했다고 비판하나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 수준의 일감을 준 것은 ‘일감몰아주기’가 아니다. 과도한 소금이 고혈압에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소금몰아넣기’를 규제한다고 해서 소금이 들어간 음식을 모두 ‘소금몰아넣기’라고 비판하면 안 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핵심은 ‘상당한 규모’기 때문이다. 적당한 소금은 ‘소금과 같은 존재’처럼 맛과 건강을 모두 지킬 수 있다. 

사실 ‘여성혐오’와 같은 사회적인 개념은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도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거나 개념이 진화,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적인 개념은 법에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언론은 법적인 용어를 쓸 때는 무척 주의해야 한다. 일상에서 쓰는 용어와 법에서 정의내린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 내부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가 기사의 리드다. 언론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또는 “논란이 될 예정이다” 같은 표현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상을 명확하게 도마위에 올려 비판하고 사회적 논란을 만드는 것은 좋다.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념을 어감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심판인척하는 플레이어는 되지 말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