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피해 직격탄(!) 맞은 공연예술계”란 표현이 관용어처럼 쓰인다. 말 그대로 공연예술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의 핵심, 거리두기! 공연예술의 특성상, 관객이 봐줘야 하는데 관객과 거리두기 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선 관객을 모아 공연하는 것이 대역죄로 취급된다. 그렇기에 공연예술계는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다. 공연예술인 의지와 상관없이 이들은 실업 상태가 됐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이 긴급고용안정금이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당장 외출할 교통비조차 답답한 예술인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프리랜서, 고용보험이 없어서 자신의 실업 상태를 증명할 길이 없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을 표현한 말. 당연히 예술가들 역시 고용보험이 없고, 해당 사항이 있다. 그래서 너나없이 지원 신청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그러나 이 신청이 참 어렵다.

평소 공연예술 관행상 계약서는 거의 작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작성했더라도, 수개월 전 공연이 끝났거나 취소돼 계약서를 폐기한 경우도 허다하다. 소득 증빙도 어렵고, 노무제공확인서를 준비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래서 공연예술인노조는 신청 과정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정리해 올려놨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그정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절박한 처지의 공연예술인들은 하나하나 따라서 지원신청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부딪친다. 신청 첫 번째가 자격.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월31일 사이 작품이나 공연 예술 활동을 해서 통장에 돈이 입금됐거나 아니라면 2019년 3월, 4월, 또는 2019년 10월, 11월에 입금된 경우가 아니라면 탈락”이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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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6월1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소득 증빙이 안 되더라도 해당 시기 노무이행확인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혹시 2020년에 작품을 할 예정이었고 이것이 취소됐음을 증빙한다면, 일정에 맞춰 입금 금액이 없더라도 신청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문체부 해명이 있기 전까지 대다수 예술인들은 애초 신청서의 소득증빙란을 채우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거나 이 부분이 해명됐으니 희소식은 희소식이다.

그러나 그 희소식도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는 예술가들이 허다하다.

“J씨는 20년차 음악인이다. 이름만 대면 아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해왔고 오랜 경력으로 인해 다양한 음악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예컨대 자신의 공연뿐 아니라 동료 음악인 창작물에 짧거나 긴 연주를 수시로 제공해 왔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그는 밴드와 공연을 할 때나 동료 음악인들의 작업을 해줄 때 혹은 프로듀서로 일을 하면서도 ‘서면계약서’를 작성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수많은 작업을 해왔던 경력과 수입이 있으나 현재 그는 정부 프리랜서 특별지원 신청 과정에서 보면 사업주로부터 노무제공확인서를 받을 수 없는 ‘무직’인 사람이다. 그와 같은 입장의 수많은 음악인이 정부의 이번 프리랜서 지원 신청에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다.

단속, 단발적 음악 작업의 경우 절대 다수 음악인이 서면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해왔다. 분명 음악노동을 제공하고 입금을 받았으나 섭외한 주체가 사업자가 아니거나 개인간 거래여서 사업주 확인서를 받지 못한다. 결국 수많은 프리랜서 음악예술 종사자들에게 특별 지원은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물론 주로 장기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장르들은 계약서 작성이 자리 잡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예술노동 제공자이자 공연자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뮤지션유니온 이수진 사무국장 말이다. 문체부의 아름다운 해명에도 여전히 해당 없는 예술가들이 허다하다는 얘기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노무제공 확인이 됐다면 다시 자격조건. 고용보험 가입 여부다. 여기서 또다시 수많은 공연예술인들은 우수수 탈락의 길을 걷는다. “2019년 12월1일부터 2020년 1월31일까지 고용보험이 한 달에 10일 이상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탈락입니다. 알바 두어달 하는데 마침 그 기간이어서 그때 잠깐 고용보험이 있는 경우 그저 별 다른 방도 없이 억울하게 탈락입니다.”

공연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공연예술계의 열악한 특성상 공연예술인은 늘 작품과 단기 알바-패스트푸드, 편의점, 커피숍 등등-를 오가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기간에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프리랜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 항목으로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줄줄이 탈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에 다시, 공연예술계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업자등록증 소지 여부다. 우리나라 예술지원 정책은 예술 사업에 대한 지원이 주류다. 즉, 공연사업을 위해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 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지않은 예술인들은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있다. 아무리 영세한 극단대표라도 사업자가 있어야 예술사업비 지원 신청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증이 있다는 것 자체로 프리랜서는 아니다.

▲사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여기까지도 무사히 지나온 예술가들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 그것은 소득분위다.

“제가 상담한 사람은 20대 중반의 음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군대를 다녀와서 예술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프리랜서 지원금(서울시와 고용노동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프리랜서 지원금이 예술가들에게도 해당된다는 뉴스가 많이 나왔지만 정작 상담을 진행하다보니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가장 큰 문제로 프리랜서 지원금은 세대 대상 지원금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대주 수입을 다 합쳐서 기준에 못 미쳐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습니다. 분명히 내 수입은 없고 돈을 벌 길도 막막한데, 세대 수입을 합쳐 계산하는 방식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예술가들에게는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예술인위기극복센터 김태균 기획팀장 설명이다.

도대체 이 프리랜서 지원 긴급고용안정금이라는 것을 받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서류 준비가 어려운 것이 핵심이 아니다. 공연예술계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알았다면 ‘주려고 짠 지원책이 맞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더욱 어렵다. 배려가 없다기보다 공연예술인 실정도 모른 채 보여주기식 사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정부의 예술계지원책이 긴급고용안정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나 예술인 복지재단 등에서도 예술지원은 있다. 시기가 시기이니 비대면으로 예술 사업을 진행하거나 하반기 언제쯤 가능할 때 공연할 수 있다면 하라고 지원금을 내주는 지원사업 등이다. 그런데 이들 지원사업은 공통점이 있다. 사업에 대한 지원이다.

공연사업을 할 수 없어서 힘든 예술가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공연을 할 사업 자금이 아니라 생계를 지원하는 것이다. 사업비를 받아도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면 그 사업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히려 예술가들에게는 손에 쥐고도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된다.

그런 의미로 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지원금 제도는 의미가 있다. 하반기에 예산을 확대해서 지원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벼랑 끝에 서있는 예술가들을 모두 도울 수 없다.

예술지원 재정을 사업이 아닌 예술가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술계를 살리는 것은 사업이 아니다. 그 사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 즉 예술가다. 진정 예술계를 살리고 싶다면 직접 지원이 맞지 않은가? 공연예술계가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정부도 팔 걷어붙이고 지원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진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내놔야 한다.

두루미와 여우가 사이좋게 지내자며 서로의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지만 결국 자기 입장으로 그릇을 준비해 둘 다 굶고 돌아오게 된다는 우화가 생각난다. 좋은 음식을 준비해서 정말 즐겁게 식사하고 싶은 것이라면, 상대에 맞는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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