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무용가 A씨가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춤을 춰 명문 예고를 거쳐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여대 무용과를 나왔다. 춤 잘 춘다는 소리를 들어 유명 안무가들 사이 작업 제의는 꾸준히 들어와 매년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한 덕분에 졸업 후 이름도 제법 알려졌다고 자신한다. 이제 30대 초반에 진입한 그녀는 나름 열심히 활동한 덕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등록도 너끈히 통과했다. 하지만 요즘 무용가 A씨는 가히 절망적이다.

우선 올 들어 무대에 선 경험이 없다. 모든 공연이 취소돼 오디션은커녕 함께 작업하자던 무용가들 연락도 오지 않는다. 벌써 6월인데 반년 동안 단 한 번의 무대도 구경하질 못했다. 그나마 하반기에 2020년도 예술창작기금을 받은 다른 안무가가 연말 전에 공연을 해야만 해서 한 건이 잡혀는 있지만 아직 연습도 못 들어갔다. 이런 식이면 내년 하반기에 다시 연장해야 하는 예술인 등록에서 자격 미달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나마 생활비를 충당하던 필라테스 강사 생활도 불가능해 생계가 막막하다. 직접 대면 수업이라 수강생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침 수업은 가정주부, 저녁은 직장인이 많았는데 유치원과 학교가 개학하지 않으니 엄마들이 나오지 못하고, 저녁 일반인 수업도 직장을 잃거나 불안한 상황 때문에 수강생이 전멸했다. 지난 3월 이후 수입이 ‘제로’에 도달했다. 자영업자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작은 수입을 모아 버틴, 말만 좋은 프리랜서라 은행에서는 소액 대출도 안 된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명문 대학을 나왔기에 교수 밑에서 눈치 보며 수발 들고 입시로 유명한 무용학원 전전하며 고액과외로 쉽게 돈 버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교수 입김이 좌지우지하는 입시시장에서 예술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에 남들에게 실력이 아깝다는 소릴 귓등으로 들으면서 나름 예술에 매진했던 지난 10년의 세월이 혹시 철없는 결정이 아니었나 싶은 자괴감이 드는 요즘이다.

경력·업적 순 긴급대책, 밀려나는 취약자… 월세·휴대폰요금 전전긍긍

정부가 제공하는 긴급대책 사업들에 공모하느라 지난 겨울과 봄은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했다. 하지만 A씨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보다. 경쟁률은 상상초월이고 결과 발표를 보면 모두가 알만하신 분들이 선정된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인 지난해 하반기에 진행한 정기 공모 사업에 선정된 명망가 분들이 또 됐거나 아쉽게 탈락한 분들이 됐다. 심사평을 들여다보니 사업 수행 능력과 예술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단다. 시급한 현실, 그리고 상황과 빗대 가장 취약하고 어려운 사람 순이 아니라 예술적 경력과 업적 순이었으니 경력 짧은 사람과 단순 출연자는 당연히 밀려나는 구조다.

죽어라고 해당되는 모든 사업들의 지원신청서를 써 봤지만 될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용노동부 긴급고용안정지원금도 신청해 보려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예술계를 몰라서 설명도 부족하고 심지어 문화예술계를 위한 별개 양식도 없다. 슬슬 월 50만원 받으려고 드는 공이 더 들것 같다는 암울한 예감이 들어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변 선후배, 친구들을 보니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누구는 월세가 밀려 있거나 혹은 이러다가 핸드폰까지 끊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눈치도 감지된다.

이런 말이 있다. “집안 기둥을 한꺼번에 뽑아 버리고 싶으면 음악을, 서서히 뽑아 버리려면 미술을 시켜라.” 맞는 말이기에 무용은 그보다는 아주 조금 나은 상황이라며 자족해왔다. 하지만 예술은 전공하거나 지속하려면 드는 돈도 상당하지만 그들이 활동을 영위한다고 투자 대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대부분이 학교 졸업 후, 혹은 젊은 시절 몇 번의 시도 이후 냉정한 현실을 맞이하며 생활인으로 영위한다. 따라서 활동을 지속하는 예술가들은 의지와 직업정신, 그리고 전문가로서 자부심은 유별나고 막말로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건 아니었다.

▲사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간지원 혜택은 기업·건물주로, 공연 없어 문젠데 티켓지원 웬말 

하지만 요즘 코로나19 덕분에 최악 중 최악이다. 그래서 나온 정부의 추경 예산 편성 관련 긴급대책을 살펴보면, 저래서 우리한테 오기는 올 돈인가 싶다. 극장 무너질까봐 시행되는 공간 지원은 몇몇 소극장을 직접 운영하시는 소수의 예술가를 제외하면 당연히 예술가보다 건물주나 기업에게 갈 돈이고, 공연 티켓 지원 사업은 정작 공연물이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다. 심지어 이 사업은 메르스 사태 때도 많은 문제점을 지적받은 사업이었다. 벽화 그리기 역시 지역 주민들이 그려진 그림도 지워버려는 판국에 왜 다시 등장했는지 모르겠고, 예술가를 위한 유일한 직접 지원 사업인 창작준비금 사업은 상반기에 시행된 6000명의 절반인 3000명에 그친다.

상반기 내내 사업 중심 지원사업으로 일괄하다가 정치계와 경제계에서 먼저 간접 지원에 의한 낙수효과의 실용성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 논의가 결정이 난 이후에 나온 결과가 이렇다. 아직도 절대 다수가 사업 중심이다. 속 내용을 들여다보니 만만한 것들이 동영상 관련 사업이다. 이 역시 선정되더라도 영상 장비 관련 업체와 대여비로 지출 대부분이 나갈 것 같다. 속된 말로 무용가가 지원서 쓰고 직접 춤도 추지만 대부분 돈은 애먼 놈들이 가져갈 것 같다.

이해는 한다. 그냥 퍼주기 뭐하니까 근거라도 남겨야 공적 자금 명맥 유지되고 나중에 뒷감당도 해야 하니 공무원들이 쉽게 결정 못할 것이다. 또 직접 지원 근거도 없었고, 눈 먼 돈이라는 인상도 받기도 싫을 테니 말이다. 위에서 시키니까 예전에 한 번 해본 것, 다른 곳에서 하고 있는 것 총동원해 나열했다. 하지만 그 돈이 과연 예술가에게 돌아가는지 촘촘하게 들여다볼 생각은 하셨는지, 그리고 실질적으로 나눠주고 실행할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같은 하위 조직의 인력난에 관심은 있으신지 묻고 싶다.

▲문화예술노동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문화예술노동연대 페이스북 갈무리

코로나19, 당신이 즐긴 콘텐츠 만든 예술가는 힘들다

아마도 많은 무용가들은 오늘도 자기가 신청할 수 있는 지원금이 있는지 살펴보고 컴퓨터 앞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자기가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전년도 소득 감소, 소득순위 하위 등 증빙 서류와 씨름할 것이다. 혹은 신청해 놓고도 장소와 장비 대여비, 편집비와 같은 예술인과 별반 상관없는 곳으로 지불할 사업계획서를 열심히 작성할 것이다. 그래서 작업하면 만족하자며, 열심히 작성하고 선정되기를 기대하겠지. 그림의 떡 같은 저 어마어마한 돈 중에 조금은 나에게 오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조금만 돌려서 생각해보자. 전 국민이 코로나19 때문에 숨죽이고 집에만 있을 때 어떻게 견디며 생활했을까? 아마도 절대 다수가 TV나 영화보고, 음악 듣고 게임하며, 독서하거나 웹툰 같은 인터넷 콘텐츠들을 즐기며 버텼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콘텐츠들을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지금 죽어나가는 예술가들이 만들었다.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즐기시고 소비한 그것들을 결국 사람이 만들었는데, 지금 그 사람들이 힘들다. 정말 너무 힘들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