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2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9-2x번지 쪽방마다 노란 퇴거통보 딱지가 붙었다. 1평 안 되는 45개의 방에 세입자 45명이 들어차 살았다. 대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에 고령이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가장 방값이 싼 곳이다. 건물주는 쪽방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들려 했다. 주민들이 저항했지만 공사는 강행됐다.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법원이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서울시가 중재해 ‘월세 동결, 거주기간 보장’을 전제로 4년 간 건물 전체를 임차했다. 그 사이 주민 45명 가운데 9명이 숨졌다.

이문영 한겨레 기자가 취재한 동자동 쪽방 강제퇴거 사태를 ‘사건’ 순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그가 5년 간 취재를 기록한 저서 ‘노랑의 미로’에 사건을 “정연하게 정리해 전달하는” 문장은 없다. 책은 그 설계가 하나의 미로다. “입구”에서 “입구”로 끝나는 3장 남짓한 챕터들로 묶였다. 69개 챕터 속에서 주민 한명 한명이 그린 궤적을 화살표로 안내한다.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첫 장은 퇴거 통보 1년 전, 유경식(가명)이 또 다른 세입자의 시신을 치우고 그의 살림살이를 파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린다. 시신이 치워진 106호 방에 입주한 김택부(가명)는 강제퇴거 사건이 벌어진 뒤 비대위원장이 되고, 5년 뒤 그 방에서 홀로 숨져 발견된다. 1968년 쪽방 건물 완공과 함께 태어난 민태진(가명)의 삶이 동자동 역사와 교차해 적힌다. 이황수(가명)는 옛 노숙 동료를 맞아들여 그의 죽음을 돌보고, 2018년 그도 홀로 숨진다.

이문영 기자는 14일 통화에서 “언론은 사건과 일상을 구분하지만, 가난은 ‘사건’으로 포착할 수 없다”고 했다. “일상은 사건의 파장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은 사건의 순간이 아니라 앞뒤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기자가 책에서 강제퇴거란 사건 중심의 서술을 벗어던진 건 그래서다. 그가 미얀마 이주노동자 딴저테이씨의 죽음 1년 뒤 그의 고향을 찾고, 밥상 뒤에서 벌어지는 농축산업 강제노동 실태 등 사건이 지나간 자리, 일상의 뒷면을 살펴온 이유이기도 하다.

- 2015년 4월~2016년 5월 ‘가난의 경로’ 연재와 이후 취재를 바탕으로 ‘노랑의 미로’를 펴냈다. 어떻게 취재를 이어왔나?

“연재할 땐 마감 일정 탓에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현장을 수시로 찾아 진행 과정을 촘촘하게 따라갔다. 9-2x에 살던 45인 한분 한분마다 파일을 만들었다. 애당초 어떤 경로로 9-2x에 오게 됐는지와 쫓겨난 뒤 움직임을 둘러싼 이야기를 추적했다. 연재를 마무리한 뒤엔 관계를 이어오면서 상황이 바뀌거나 돌아가시는 등 주목할 이야기들이 있을 때마다 만나뵀다. 책에선 강제퇴거와 이주 경로에 더해 등장인물 개인 서사를 최대한 살렸다. 그 가난이 어떤 이유로 그런 모습을 띠게 됐는지, 한국사회의 역사와 정치가 어떻게 개인의 가난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히 썼다.”

▲5월30일 한겨레 1면.
▲5월30일 한겨레 1면.

- 첫 챕터는 강제퇴거 통보 1년 전, 106호의 ‘죽음을 치우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책의 순서와 구조는 어떻게 잡았나?

“한겨레21 연재 첫 기사에서 지하7호가 시신을 치우는 이야기가 잠깐 언급된다. 그 부분을 따로 다시 썼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 시점이다. 마지막 챕터는 돌아가신 9명 중 역시 106호에서 마지막으로 숨진 김택부의 시점으로 쓰였다. 지하에 사는 분이 돌아가신 분의 방을 치우고, 이후 이사해온 분이 다시 돌아가시는 죽음의 이야기란 형태를 취하고 있다.”

- 책은 주민이 기자에게 말하는 듯한 챕터, 1인칭으로 독백하는 챕터, 전지적으로 묘사하는 챕터까지 화자와 시점이 다양하다. 일반 기사 형식에 답답함을 느끼진 않았나?

“기자들은 사실을 정연하게 정리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훈련 받는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선 기존 언론이 전형적으로 써온 언어나 기사 형식, 문장 형태에 갇히지 않고 사실의 간격을 재배열한다면 진실을 더 적극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갑갑함이 있다.

이야기를 문학이나 역사책처럼 쓰는 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어서다. 동자동 9-2x를 놓고 보면, 강제퇴거 딱지가 붙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상태다. 주민들이 거리 노숙을 하거나, 한겨울에 강제퇴거를 하거나,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려야만 추가 기사가 나온다.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일반 기사에 쓰는 언어로 이 이야기를 모두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이 벌어진 다양한 층위를 45명의 이야기로 다시 짰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9-2x 건물의 강제퇴거 전 모습. 한겨레 5월22일 B2면 갈무리.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9-2x 건물의 강제퇴거 전 모습. 한겨레 5월22일 B2면 갈무리.

- 퇴거 주민들의 이주 경로를 따라 거리를 쟀다. 반경 100m가 안 됐다. 한국에서 숨진 이주노동자 딴저테이씨의 아버지가 사는 미얀마에 가 취재했다. 국내 농축산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실태를 보도했다. 사람이 장소를 옮기는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나?

“왜 그 상황이 왔고 당사자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려면 그 사건만 보고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사건이 벌어진 순간엔 매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달라붙지만, 사건이 지나가면 모두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나. 반면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야기는 언론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 예컨대 딴저테이씨 사건은 아직 규명이 안 됐다. 언론은 그 가족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덮쳤는지 말하지 않는다. ‘사건의 순간’이 지나간 뒤 그분 죽음이 그 가족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려고 갔다.”

-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이 가난을 소비하고 대상화해온 시선을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취재와 기사 작성, 책을 펴내는 과정에서 고민은?

“다른 책들을 낸 경험이 있다. 이번엔 느낌이 좀 달랐다. 출간 일정이 잡혀 인쇄에 들어가니 두려움이 생겼다. 가난을 어떻게 서사화할 것이냐는 고민이 마지막 단계까지 있었다.

한국 사회가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집중된 곳이 용산구 동자동과 남대문로5가동(전 양동)이다. 과거 기록은 이 지역을 무력하고 범죄와 연관된 곳으로 표현한다. 언론도 폭염, 명절 등에 맞춰 쪽방촌을 ‘가난의 표상’으로 포착한다. 반복돼온 이미지를 흔들고 흠집 냈으면 좋겠단 생각이었다. 시점을 바꿔 주인공이 서사를 이끌도록 하기도 했다. 제대로 했을까 하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있다. 책은 다시 ‘입구’란 챕터로 끝난다. 출구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흠 많은 글을 딛고 더 나은 시선으로 가난을 흠집 내는 단단한 후속 작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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