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울 공릉동 묻지마 살인 사건 당시 SBS ‘궁금한이야기Y’에서 약혼녀를 죽인 살인자로 몰렸던 양석주씨가 SBS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가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앞서 군인 장○○(당시 20세)씨는 휴가 중이던 2015년 9월24일 새벽 5시28분경 운동화를 신은 채 현관문을 열고 침입해 자고 있던 양씨의 약혼녀 박○○(당시 33세)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양씨와 장씨는 격투를 벌였고, 그 결과 장씨가 사망했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궁금한이야기Y’는 그해 10월9일 방송 ‘노원구 살인 사건, 군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가리키는 것은’ 편에서 인근 주민 오○○씨의 증언을 인용해 “살려주세요 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다. 27분이었다”고 내보냈다. 오씨 증언이 맞다면 박씨의 비명 소리 이후 장씨가 양씨 집에 들어간 셈이었다. 

CCTV 증거 상 이 사건은 양씨 또는 장씨 둘 중 한 명이 박씨를 죽인 범인일 수밖에 없는 밀실 살인이었다. 방송 이후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유일한 생존자였던 양씨를 살인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검찰은 양씨의 살인을 정당방위로 인정해 무죄로 판단했고, 수사기관은 군인 장씨가 박씨를 살해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5년 전 공릉동 살인사건 현장. ⓒ연합뉴스
▲5년 전 공릉동 살인사건 현장. ⓒ연합뉴스

양씨는 SBS측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다. 검찰은 2018년 5월28일 SBS 제작진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했다. 

서울북부지검은 불기소 이유서에서 “오씨가 인터뷰 과정에서 비명 소리를 들은 시간에 대해 5시27분 경에서 5시30분경 사이라고 번복했음에도, 방송에는 5시27분 경 비명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는 부분만 내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했지만 “피의자들이 방송 내용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은 살인 동기 등이 명확하지 않아 언론 보도가 계속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후 양씨는 지난해 3월 SBS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라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에 나섰다. 양씨측은 SBS가 오○○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방송을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오씨는 SBS 제작진을 만나 첫 진술에서 비명 소리를 새벽 5시27분에 들었고 3분쯤 지나 5시30분에 정확히 신고했다고 증언했으나 이들이 실제 경찰에 신고한 시점은 5시33분44초였다. 

양씨측은 “SBS는 오씨가 들었다는 비명 소리가 27분이 아니라 30분경에 있었고, 이후 3~4분 뒤 오씨 일행이 112에 신고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SBS가 “오씨측 주장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장씨는 박씨를 죽일 수 없었고 결국 박씨는 원고가 죽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방송을 송출한 것”이라 주장했다. 

▲2015년 10월9일 방송된 SBS '궁금한이야기Y'의 한 장면.
▲2015년 10월9일 방송된 SBS '궁금한이야기Y'의 한 장면.

SBS측은 “오씨 발언을 조작하거나, 허위의 내용으로 방송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며 “오씨가 두바이에 있는 아들과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고, 카톡을 보낸 직후에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27분경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고 밝혔다. 또한 “오씨의 위와 같은 진술은 4차례 이상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동일하게 유지됐다”고 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 10일 양석주씨가 SBS에 제기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록 피고들이 오○○가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시간의 정확성에 관하여 의심할 정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들 측이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카카오톡을 하고 있어 정확히 시간을 알았다는 오○○의 말을 근거로 이 사건 방송 부분 중 악의적 편집 부분과 같이 방송했다고 해서 이를 허위임을 알고 명예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한 SBS가 장○○에게 손 상처가 없다고 사실과 다른 방송을 한 부분과 관련해 “왼손 엄지에 자창이 있다는 장○○에 대한 부검감정서가 작성된 것은 이 사건 방송이 있은 뒤인 2015년 10월19일이고 위 피고들이 장○○ 손 상처와 관련하여 이 사건 방송 당시까지는 장○○의 신체를 살펴본 공식 문서인 사체검안 결과에 의존해 장○○의 손 상처를 방송의 근거로 삼았다고 하여 이를 허위임을 알았거나 그 과정에서 이와 동일시 할 수 있는 중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실제 칼로 사람을 찌를 때 자주 생기는 손 상처가 있었지만 없었다고 방송한 것이 고의가 아니라는 의미다. 

양씨는 앞서 SBS를 상대로 한 고소장에서 “국과수 결과 발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비보도 약속을 어겨가며 나를 약혼녀를 죽이고 비명 소리를 듣고 도와주러 온 사람까지 살해한 살인마로 지목해 수사에 방해를 가하고 수없이 많은 조작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했다”며 “공익성을 빌미로 여론재판, 여론 살인을 가한 방송에 대한 엄벌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이 끝났다. 

재판부는 “피고들에 대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지만 이 사건 사망사고의 경위나 원고의 그에 따른 고통 등에 비추어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으로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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