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반 정도 지나는 사이, 미디어 차원에서도 온갖 일들이 전개됐다. 특히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방송 미디어일수록 거센 혼란이 전개되고 있다. 가장 먼저 지역 방송 미디어를 뒤흔든 사건은 노동 문제였다. 2020년 1월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됐다. 2014년부터 대전MBC에 입사해 아침부터 밤까지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무수한 프로그램에 불려 나오던 유지은 아나운서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에 대전MBC의 채용 성차별에 대한 진정을 제기했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아나운서가 동등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1990년대부터 계속 대전MBC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로 뽑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지은 아나운서의 행보에 대전MBC는 빠르게 응답했다. 개편을 명목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1편(정오의 희망곡)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지시한 것이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고,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개수에 따라 매달 받게 되는 월급이 정해지는 고용 구조였다. 자연스레 수입은 급감했고 생계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유지은 아나운서는 쉽게 회사를 떠나는 길 대신, 어떻게든 계속 싸움을 이어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올해 1월에 세워진 공동대책위원회는 작년 대전에서 세워진 연대체에 이어, 이 싸움을 통해 방송국의 잘못된 구습을 함께 바꾸기 위한 언론이나 인권, 여성 영역을 비롯한 무수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의지가 담겨 있는 행보였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위원회는 지난 4월 말 유지은 아나운서의 진정에 대해 시정 취지의 인용 결정을 내렸지만 여전히 대전MBC는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대전MBC의 주식 51%를 취득한 대주주인 서울 MBC도 대전MBC의 문제적 행보에 어떠한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지난해 10월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서울여성노동자회
▲2019년 10월1일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서울여성노동자회

2월에는 CJB 청주방송에서 14년간 PD로 수많은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재학 PD의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2018년 자신을 비롯한 동료 프리랜서 PD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강제로 하차되며 ‘부당해고’를 당하고, 이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하였으나 2020년 1심 판결에서 이재학 PD는 패소 판결을 받고 말았다. 이전 유사한 사안의 재판에서 거의 노동자가 승소했던 상황에서 충격은 컸다. 사측이 증거를 은폐하거나 증언 조작에 관여하였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던 이재학 PD는 죽음으로 최후의 저항을 남겼다.

이후 2020년 2월19일에는 대책위가, 2월27일부터는 대책위와 유족, 언론노조, 청주방송까지 4자의 공개 합의로 진상조사가 개시되었으나 청주방송은 이재학 PD가 죽었을 때만 잠시 사과의 말을 남겼을 뿐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 명시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도리어 지난 3월 사퇴한 이두영 전 청주방송 회장이 직원 전체 조회에서 사측의 책임을 부정하고, 내부고발자를 철저히 추적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남겼을 뿐이다.

▲고 이재학 PD 영정사진.
▲고 이재학 PD 영정사진.

3월부터는 대구MBC가 문제의 대상이 되었다. 대구MBC는 자막CG, 주조정실 등 프로그램을 제작, 편성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직군의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프리랜서로 고용하고 있었다. 2017년 ‘언론 적폐 척결’을 내세우며 전국 각지의 MBC에서 발생한 대규모 파업에도 이들 프리랜서 노동자는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합원 가입이 애초에 불가능했고, 따라서 파업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파업을 함께 응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일방적 노동조건 악화였다. 2017년에는 기존 월급제를 주급제로 전환했고, 2020년 초에는 주급제를 참여한 프로그램 수만큼 돈을 받는 ‘회차별 바우처제’로 전환할 것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의 협의는 없었다.

결국 대구MBC의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위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며 2020년 1월 ‘언론노조 대구MBC 프리랜서다온분회’를 결성했지만, 대구MBC는 여전히 이들 노동자를 동등한 노동자로 대우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주급 바우처제 강행은 잠시 중단되었으나, 다온분회가 요구한 단체교섭에는 이렇다 할 공식적 발언을 남기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계속 틈만 나면 주급 바우처제의 필요성을 사측이 주장한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3월24일부터 대구MBC사옥 로비에서 대구MBC와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는 다온분회 조합원들. 사진=다온분회.
▲3월24일부터 대구MBC사옥 로비에서 대구MBC와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는 다온분회 조합원들. 사진=다온분회.

노동 문제 이외에도 지역방송을 둘러싼 논란은 넘쳐난다. 2월20일에는 경기방송이 긴급 이사회를 개최하며 지상파 방송사 최초로 자진 폐업을 결정했다. 경기방송이 공식적으로 내건 폐업 사유는 정치적 사유의 언론 탄압이었으나, 이미 경기방송은 2019년부터 자사 직원에 대한 부당해고를 비롯해 경영진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계속 편성 독립성, 경영 투명성의 문제가 대두되자 2019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경기방송에 대해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하였지만 경기방송은 한 발 더 나아가 자진폐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와 시청자들이 이에 반발하였지만 폐업 절차는 속전속결로 개시되었다. 3월16일에는 주주총회를 열어 폐업을 최종적으로 확정지었고, 3월30일에는 전파 송출을 중단했다. 갑작스럽게 경기 지역의 독립 라디오 방송국이 사라진 상황에서 지역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경기방송이 빈 자리에 경기도 차원의 공영방송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개시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신규 방송국의 등장 여부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4월6일 전국언론노조, 경기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 6개 시민사회단체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지역 새 방송 새로운 999 추진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사진=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
▲4월6일 전국언론노조, 경기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 6개 시민사회단체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지역 새 방송 새로운 999 추진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사진=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

최근에는 KBS의 지역 방송국 개편 여부를 놓고 해묵은 새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구노조(KBS노동조합) 사이의 갈등에 불이 붙고 있다. 양승동 사장 체제의 KBS 경영진과 새노조는 진주, 포항, 안동, 목포 등의 지역국의 프로그램 제작 기능과 송출 기능을 총국에 통합시키는 계획을 준비 중에 있으나 구노조와 지역국이 기반을 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KBS의 이러한 움직임이 일방적임을 지적하며 갈등이 쉽게 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이미 KBS나 MBC는 IMF 이후 지속적으로 경영 효율성 개선을 이유로 수많은 지역국을 통합시키고 있었다. 특히 MBC가 이러한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며 2011년에는 진주MBC와 창원MBC를 합친 ‘MBC경남’을, 2015년에는 강릉MBC와 삼척MBC를 통합하여 ‘MBC강원영동’을 출범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지역 공영방송의 통폐합이 각 권역별로 산발적으로 움직였다면, KBS의 방침은 대대적으로 지역국의 기능을 축소하고 총국에 기능을 이전하는 것을 골자로 내세우며 갈등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다. MBC가 지역 방송국을 통합할 때도 각 지역 방송국의 독립성 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심각한 갈등이 벌어졌던 상황이기에, 이번 논란 역시 쉽게 가시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2015년 조대현 사장 시절 공표된 ‘KBS 미래혁신’ 방안에 담긴 내용 상당수가 인건비 절감, 지역국 기능조정 및 합리화 등 일방적 인력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이라는 것에 새노조-구노조 모두가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던 상황에서 현재 추진되는 경영 합리화와 2015년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KBS노동조합 진주지부 김태훈 지부장이 진주시청 앞에서 KBS의 진주방송국 변경허가를 반대한다며 삭발하는 모습. 사진=노컷뉴스, 경남CBS 이상현 기자.
▲지난해 11월 KBS노동조합 진주지부 김태훈 지부장이 진주시청 앞에서 KBS의 진주방송국 변경허가를 반대한다며 삭발하는 모습. 사진=노컷뉴스, 경남CBS 이상현 기자.

이렇게 쉴 틈 없이 지역방송 각국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영 합리화나 부족한 예산을 이유로 일방적 인력 감축이나 노동조건 악화를 강요한다. 청주방송이나 경기방송 같은 민영방송은 회사의 지분 상당수를 소유한 대주주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며 언론 독립성은 물론 노동조건 침해에도 앞장선다. 이들 문제가 2020년 지금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아니지만, 2020년이 되어 한꺼번에 터진 것은 우연의 일치라 할지라도 너무나도 상징적일 수 밖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나오는 이야기는 ‘지역방송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다.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가 총선 직전에 발표한 충청북도지역 총선 후보자에 대한 질의응답에서도 답변에 참여한 후보 전원은 지역방송 문제에 대한 질문에 모두 ‘적절한 지원’이 필요함을 응답했다. 물론 방송통신위원회나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유관기관이 아예 지원을 하지 않고 있던 것은 아니다.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이나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을 통해 각 지역 방송국이 만드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지원하거나, 2006년 지역MBC들이 연합하여 만든 ‘MBC NET’이나 지역 민영방송사들이 연합하여 개국한 ‘9colors’ 같이 ‘콘텐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직간접적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지역방송 지원에 대한 말이 높지만, 그 말들은 얼마나 지역방송이 놓인 현실을 적절하게 짚고 있는가. 당장 지금 새노조-구노조 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KBS 지역국 개편안은 물론 20년 넘게 계속 되었던 KBS와 MBC의 지역국 통폐합에는 정작 지역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나 해당 지역국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고민은 느껴지지 않는다. 효율성이라는 논리 앞에서 지역 공영방송이 만드는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다양성, 지역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동하는 이들의 상황에 대한 접근은 이전에도 쉽게 보이지 않고 지금 역시 보이지 않는다.

▲2019년 8월7일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전남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국회의사당에서 KBS 지역국 광역화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2019년 8월7일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전남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국회의사당에서 KBS 지역국 광역화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오히려 ‘지역방송국이니 마땅히 지역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청주방송이나 경기방송 같은 민영 지역방송들의 전횡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2000년대 이후 지역 경제의 심각한 침체와 2010년대 이후 방송 매체 전반에 대한 관심도나 주목도가 저하된 이후 이미 지역 방송국들은 광고 수익에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각 지역별 광역‧기초 지자체나 각종 공공기관과 함께 행사를 위탁 개최하면서 이를 통해 나오는 이윤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이러한 유착의 관계는 지역의 행정 체계나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지역 방송사의 문제에 쉽게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온갖 행사가 취소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문제적인 지역방송국의 재정을 더욱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

역설적으로 지역방송사의 문제는 결코 지역방송사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동시에 재정을 단순히 많이 투여하는 것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사안 역시 아니다. 방송은 결국 단순히 일방향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 담아나는 주제와 이를 통해 등장하는 사람이 함께 만드는 문화와 체계의 총체로서의 결과물이 방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성의 논리에서 지역방송이 고민해야 할 공공성도, 동시에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움직임을 다루는 기동성이나 현장성도 점차 발휘할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굳어진다. 그나마 지역 KBS나 MBC 일부에서 ‘열린 채널’ 같은 퍼블릭엑세스를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운 시간대에 박는 것이 지역 주민이나 커뮤니티가 지역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의 전부이거나 대다수다.

동시에 현재처럼 방송이라는 매체 전반이 온라인의 등장으로 더욱 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지역 방송사들은 최근 ‘1일1깡’ 열풍에 편승했던 움직임처럼 지역의 움직임과는 별반 상관없는 유행에 편승하며 당장의 수익을 올리는 것에만 몰두하고 만다. (관련 기사:'1일1깡' 열풍에 편승한 지역방송사 유튜브) 오히려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서 기존 수도권의 인기 프로그램에 치이고 밀려 시도하지 못했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대신, 철학 자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더더욱 유행을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된다. 노동도, 철학도, 지향도 점차 형해화되는 마당에서 지역방송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러한 이해를 가장한 몰이해와 무관심은 지역의 공공성 대신 탐욕만을 거세게 부추기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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