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 인권단체가 꾸린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네트워크)’가 11일 코로나19 감염 국면에서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코로나19 감염 위기가 일상화하는 국면에서 그간 인권 고려 없이 이뤄진 방역대책과 취약해진 사회적 약자 현실에 경고 목소리와 종합적인 제안이 나온 것이다.

네트워크는 감염병을 이유로 집회‧시위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가장 먼저 집회를 금지한 뒤 대구시와 경기 성남시, 인천시를 비롯해 전국 시‧군‧구가 집회 금지 방침을 발표했다. 한편 용역 직원 인파를 대규모로 동원하는 강제철거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 활동가는 “코로나19가 우리의 활동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할지라도 집회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 조치는 집회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인식하도록 했다”고 했다. 랑희 활동가는 “최근 UN은 공중보건 비상이 인권 침해의 핑계로 이용되거나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탄압하는 데 쓰여선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고 했다.

네트워크는 당국이 집회 금지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제한 조치를 검토하고 비판할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일률적으로 집회를 전면 금지하지 말고 개별 평가한 뒤 단계적이거나 일시적인 조치할 것 등을 주문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서울시가 설치한 도심내 집회금지 현수막.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설치된 도심내 집회금지 현수막.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정부가 ‘방역 성공 요인’이라 자평한 개인정보수집과 동선공개 방역대책이 인권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돼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경고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현재 확진자의 카드 결제내역과 위치정보 등을 수집하고 있다. 각 지자체는 동선공개 과정에서 확진자의 성별, 성씨, 직업, 국적, 종교 등 개인정보 일부를 공개하기도 한다.

희우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2015년 메르스 때 ‘감염경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회적 질타를 계기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원칙은 투명성으로 바뀌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동선 공개 과정은 방역 성공 요소이기도 하지만 기본권이 어떤 합리적 절차 없이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점은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권리 간 충돌을 공론장에서 논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희우 활동가는 “보건당국이 지난 3월 코로나19 종식 시점을 기해 수집한 개인정보를 모두 폐기한다고 밝혔지만 그 판단 기준은 명시하지 않았다”며 “질병관리본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더니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수집된 개인정보도 아직까지 폐기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는 당국이 확진자별 동선 정보가 아니라 장소와 시점 관련 종합 데이터만 밝혀 개인정보 공개를 최소화할 것을 주문했다. 또 감염 경로 파악을 위한 시스템의 일상화를 금지하고, 공중보건 위기 시 개인정보 처리와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보완하도록 권고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네트워크는 언론과 당국이 코로나19 보도와 재난 정보 전달의 실패를 반성하고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언론은 ‘창궐’ ‘패닉’ 등 용어를 쓰거나 초기 마스크 부족과 관련해 국민 불안감을 과도하게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동포나 성소수자, 특정 종교인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조장했다는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의 ‘왼손경례’ 사진 같은 고위공직자 명예훼손 콘텐츠는 코로나19 방역활동과 무관하거나 시급하지 않은데도 허위조작정보로 신속히 삭제됐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들은 재난 상황에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권 활동가는 “당국은 물론 공영언론도 재난보도하며 수어 제공에 나서지 않았다. 이주민들은 방역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불안감에 떨고,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오르기도 했다. 스마트기기 조작이 어려운 노인 등 정보접근취약계층도 있다”고 했다.

네트워크는 언론사와 언론인이 ‘재난보도준칙(감염병보도준칙)’를 엄격하게 지키고 재난주관방송사는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난 상황에서 관련 정보가 정보취약계층을 비롯한 공중에 원활하게 전달되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