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인 경찰의 무릎에 깔려 흑인 민간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난 뒤 유력 언론사 책임자의 사임이 잇따랐다. 뉴욕타임스(NYT)에선 시위를 무력 진압하자는 칼럼을 내보내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 구호에 맞서 ‘건물도 중요하다’는 헤드라인을 발행한 뒤 거센 비난에 부딪히면서다. 일각에선 조지 플로이드 시위를 계기로 그간 미 주류 언론의 이중적 보도 기준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의 제임스 베넷 오피니언란 편집장은 지난 3일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의 칼럼 ‘군대를 들여라(Send In the Troops)’를 실은 지 나흘 뒤 사임했다. 베넷 편집장은 군대를 투입해 시위를 진압할 것을 주장하는 해당 칼럼이 출고된 뒤 기자를 포함한 직원들과 기고 작가들, 독자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베넷 국장은 해당 기고가 충분히 조심스럽게 편집되지 않았고 발행돼선 안 됐다고 사과했고, 아서 슐츠버거 NYT 회장은 “지난주 우리는 편집 절차의 중대한 붕괴를 목도했다”고 했다.

▲NYT는 지난 3일 제임스 베넷 오피니언란 편집장 승인 아래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의 칼럼 ‘군대를 들여라(Send In the Troops)’를 실었다.
▲NYT는 지난 3일 제임스 베넷 오피니언란 편집장 승인 아래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의 칼럼 ‘군대를 들여라(Send In the Troops)’를 실었다.

6일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스탠 위슈나우스키 총편집장도 사의를 표했다. 이 신문은 지난 2일 12면 머리에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구호에 맞서 ‘건물도 중요하다(Building matter, too)’란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직원 210여명 가운데 비백인 기자 44명은 사태 본질을 흐리는 악의적 헤드라인이라며 데스크에 공개 항의 서한을 발표한 뒤 집단 병가를 신청했다.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시위 국면에서 언론사들이 ‘비폭력 평화시위’ 프레임을 강조하다가 전에 없는 안팎의 반발에 부딪히고 오류를 인정한 사례들이다. 이번 사태가 기존 주류 언론의 ‘보이지 않는 이중잣대’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내 인종차별을 고발하던 언론도 정작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불리한 형사제도에는 일부 온건한 태도를 보이거나 인종차별 저항에 ‘비폭력’ 시위만 강조해왔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지난 2일 12면 머리에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구호에 맞서 ‘건물도 중요하다(Building matter, too)’란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지난 2일 12면 머리에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구호에 맞서 ‘건물도 중요하다(Building matter, too)’란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미국의 독립 탐사보도 매체 ‘인터셉트’ 기자 제러미 스캐힐은 자신의 트위터에 “NYT 편집위원회가 (올해 초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에이미 클로버샤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단 사실을 잊지 말자”며 “에이미 클로버샤는 미네소타뿐 아니라 전국 단위로 인종차별적 형사제도 시스템에 중요하게 참여했다. 검사일 때 비폭력 범죄에 가혹한 구형을 주도했고 경찰이 자기 방침을 지지한다고 자랑했다”고 썼다. NYT 편집국이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흑인에게 불리한 형사 방침을 펼친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을 공식 지지한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를 전공한 캐롤 앤더슨 에머리대 교수는 독립언론 ‘데모크라시나우!’와 인터뷰에서 주류 언론이 ‘약탈’과 ‘폭동’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며 ‘허위 등가성’이라고 지적했다. 앤더슨 교수는 “‘약탈의 언어’는 그간 흑인 커뮤니티를 공격하고, 경찰을 군대화해온 관료적 폭력에 대한 집중을 흩트린다”며 “‘허위 등가성’을 만들어 ‘너희는 평화적 시위에서 엇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불꽃만 바라보다가 발화점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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