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 언론 보도에 최대 3배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이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당 권인숙·김경만·김영주·김주영·양이원영·오영환·우원식·이규민·이장섭·주철현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요지는 언론 보도로 피해를 끼친 경우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개정안은 법원이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한 언론사에 대해서 손해액 3배 이내의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현행법에 추가하도록 했다. 정 의원은 “몇몇 언론의 ‘아니면 말고 식’ 허위보도, 가짜뉴스는 피해자에게 물질적 손해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어 심각하다”며 “기사에 대한 책임 의식을 높이고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의 실제 손해액에 더해 징벌(형벌)적 금액을 물도록 하는 제도로 신용정보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공익신고자보호법을 비롯한 일부 법률에 적용되고 있다. ‘손해액의 3배 이내’는 기존 법안에 준한 범위다.
앞서 관련 논의는 2004년 열린우리당의 언론피해구제법 일환으로 촉발됐다. 당시 언론자유 침해 우려를 이유로 실제 법안에서 제외됐고, 2012년 17대 국회의원이었던 정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입법이 추진되지 않았다. 최근 발의한 개정안은 17대 국회 때와 같은 내용이다. 정 의원은 1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2004년도 초선 때 열린우리당 언론관계법을 총괄했는데 징벌적손해배상 제출은 못했다”며 “진보매체 등에서 이렇게 되면 자본력이 좀 떨어지는 진보매체가 오히려 역으로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언론·시민단체에서도 제기돼왔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언론판결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9년~2018년 언론사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가 이길 확률은 40%, 인용액은 청구액의 10분의1(관련기사: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현실 가능성은)에 그쳤다. 2018년 기준 원고 유형으로는 일반인이 40.6%로 공적인물(18.8%), 기업(16.1%), 공직자(8.5%)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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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법안이 언론자유를 위축할 가능성, 보도의 ‘악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우려는 여전하다. 정 의원 안은 ‘악의적’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하는 것”이라 규정했는데 이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야할 것 없이 진영논리에 따라 ‘가짜뉴스’라는 주장을 펼쳐 온 정치권의 모습도 우려를 지울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일찍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요구해 온 언론인권센터도 여당의 접근법에 의구심을 보였다. 윤여진 이사는 3일 칼럼에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지금 논의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2018년 말부터 정부 여당이 중심이 되어 발의한 ‘가짜뉴스방지법’과 궤를 같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징벌하는 도구가 아니라 거짓 보도로 인권을 침해하는 언론에 책임을 묻는 언론개혁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