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7일 기자회견을 할 때 주목하는 언론은 많지 않았다. 10명 남짓 기자가 모였던 첫 기자회견 때와 달리 두 번째 기자회견에 100명이 훨씬 넘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불과 몇 주 사이 이슈를 만들고, 이슈를 좇고, 이슈로 먹고 사는 미디어의 ‘성찬’이 됐다. 데스크로 재직 중인 한 언론사 간부는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콘텐츠를 내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불나방과 비슷한 게 미디어의 속성이다. 미디어는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 문제를 ‘사태’로 만들었지만 그것이 곧 ‘진실’에 부합했는지는 의문이다. 발화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위안부 운동 방식에 고민을 던지는 언론보도가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5월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5월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15년 12월28일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최종·불가역적으로 합의했을 때 일부 언론은 위안부 할머니를 애써 지우려하기까지 했다. 한 언론은 “위안부 문제에만 매달려 한국과 일본과 반목하는 국면이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된다”고 했고, 다른 언론은 “위안부 할머니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불복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법적 소송”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썼다. 한일합의로 인해 관광업계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엄연한 피해 당사자인데도 위안부 할머니를 주변부로 만들었던 게 언론이었다. 

정의연 ‘사태’에서 합리적 의혹에 정의연이 답해야 할 것도 있었지만 ‘나쁜’ 미디어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보도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의 말을 그대로 옮긴 내용이 대표적이다. 천 이사장은 지난달 24일 요리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정의연을 강하게 비난했다. 2015년 한일 양국 협상안으로 거론됐던 ‘사이토안’을 윤미향 의원이 거부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일본 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를 만나 일본 총리 사죄 친서와 보상금을 전달하는 안이었는데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국가 차원의 법적 책임 문제를 분명히 하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연의 전신) 30년 운동을 부정하는 내용에 가깝다. 천영우 이사장은 “위안부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받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추정을 갖고 ‘사이토안’에 난색을 표했던 윤 의원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문제는 천 이사장의 인터뷰를 국내언론이 받아쓰면서 갈등을 조장하는 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 정의기억연대 활동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 정의기억연대 활동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마포쉼터 소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서도 ‘나쁜’ 미디어에 대한 책임론이 나온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에 언론은 덧칠하기 바쁘다. 언론은 윤미향 의원이 마포쉼터 소장을 추모하는 모습을 놓고 ‘포착’이라고 표현했다. 포착이라는 단어는 무언가 나쁜 짓을 하다 들통났다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마포쉼터 소장은 언론의 집요한 취재가 괴롭다고 지인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언론은 보란 듯이 고인의 얼굴까지 실었다. “윤미향, 숨진 소장 계좌로 위안부 할머니 조의금 걷었다”라는 기사는 마치 비리에 가담한 마포쉼터 소장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마포쉼터 소장이 윤 의원과 14년 동안 위안부 운동을 함께한 맥락은 제거되고 그는 윤 의원의 공범자로 남았다. 헥터 맥도널드는 “만들어진 진실”이라는 책에서 ‘진실은 경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편집하는 31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생략하기’, ‘유리한 기준으로 설명하기’, ‘앞뒤 맥락 무시하기’, ‘악마 만들기’, ‘상황에 맞춰 단어 비틀기’ 등이다. 정의연 사태 관련 보도들 역시 경합하는 진실 중 편집된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