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가 “자본시장을 교란한 중대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 인멸도 여러 차례 자행됐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을 촉구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민변 대회의실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 범죄 혐의에 대한 엄정한 법적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상훈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3대 기업범죄 종합판”이라고 봤다. 계열사를 동원하는 등 중대 규모로 자본시장을 교란시켰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이 될 수 없는 중범죄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횡령·배임 등 회사 재산 탈취 범죄, 자본시장법 위반의 자본시장 교란 범죄, 뇌물 등 부패 범죄, 이 3가지 범죄가 모두 확인되는 사건”이라며 “적은 돈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개인의 탐욕에 기인한 것에 불과해 정상 참작 여지가 적다”고 밝혔다. “준법 경영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법 경시 현상”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인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각종 불법행위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이 부회장은 당시 제일모직 주식(23.24%)만 보유했고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최소 개인 자금으로 최대의 핵심 계열사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두 회사를 합병했고 이 과정에 각종 회계 사기가 있었다고 봤다. 

혐의는 크게 삼성물산 가치는 최대한 낮추고, 제일모직 가치는 최대한 부풀리는 부분으로 나뉜다. 제일모직 주주가 합병 후 회사 지분을 최대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부회장은 최소 비용으로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 당시 주가는 삼성물산에 손해가 되는 합병비율(제일모직:삼성물산=1:0.35)로 계산됐다.

2014~2015년 삼성물산 가치를 낮추는 과정에 시세조종 혐의가 포착됐다. 삼성물산은 2014년 한 해 수주액 약 8조원 중 2조원(약 25%)에 달하는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 수주 실적을 합병 전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물산은 건설사업들을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이관하기도 했다. 합병 전인 상반기에는 30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신규주택사업을 하다가 합병 후 1만여 가구 규모로 대폭 확장했다. 2017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수사 당시 확인된 내용이다. 

이번 검찰 수사는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리는 과정의 불법행위에 초점을 맞췄다. 2012~2014년 ‘콜옵션 약정’을 누락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대표적이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미국회사 바이오젠과 합작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이때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에 ‘50%’까지 지분을 매입할 수 있고 당초 투자 단가에 이자를 더한 가격으로 넘긴다는 권한(콜 옵션)을 줬다. 삼성바이오 가치 산정엔 불리한 조건이다. 콜옵션이 제대로 공시됐다면 삼성바이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율이 낮아져 주가가 낮아지고, 자연히 제일모직 주가도 낮아진다. 분식회계와 관련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는 2018년 11월 삼성바이오를 고의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중대 규모의 분식회계를 계열사 임직원들이 결정했을까. 김남근 변호사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 콜옵션 부채 고의 누락 등 분식회계를 기획하고 이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시세조종에 이용했다는 증거가 나왔고 관계자들이 유죄판결까지 받았다”며 “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죄가 이뤄졌는데도 임원들이 과잉 충성을 한 거고 총수 개인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변명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심사를 받는 8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참석자들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 범죄 혐의에 대한 엄정한 법적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심사를 받는 8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참석자들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 범죄 혐의에 대한 엄정한 법적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도주 우려 쟁점 아냐, 증거인멸·중대범죄 확인돼”

김 변호사는 “그룹 차원의 조직적 증거인멸 사실도 확인됐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기준은 크게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 등 3가지다. 이 부회장 경우 “도주 우려는 없으나 범죄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 우려도 확인됐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상무는 증선위의 검찰 고발이 예상되던 2018년 7월 삼성전자 사업지원TF(미래전략실 후신) 지시로 재경팀 직원들에게 ‘바이오젠사 제안 관련 대응방안(부회장 보고)’ 등 폴더 내 파일 2100여개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5월에는 검찰이 삼성바이오 공장을 압수수색해 공장 바닥 아래에서 재경팀 공용서버와 직원 노트북 등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삼성바이오 임원들은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는 중 금감원이 특정 문건 제출을 요구하자 문건 작성자를 미래전략실 바이오사업팀에서 삼성바이오 재경팀으로, 작성 시점을 2011년 12월에서 2012년 2월로 수정해 제출한 적도 있다.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일부 언론은 ‘국가 경제 위기론’ 보도를 거듭 내고 있다. 김남근 변호사는 “전문 경영체제로 운영되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 이사 한 명의 구속으로 위기에 처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SK 최태원 회장이 3년 징역을 살았을 때도 SK 재계 순위는 더 높아졌고 이재용 부회장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삼성전자 경영성과는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6월5일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기사모음. 디자인=안혜나 기자.
▲6월5일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기사모음. 디자인=안혜나 기자.

김 변호사는 사법부에 ‘법 앞의 만인의 평등’이란 대원칙을 깨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 변호사는 “재판부는 ‘총수가 구속되면 그룹에 경영위기가 오고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는 변론에 부담을 느끼겠지만 이 전략이 계속 먹히면 재벌 총수들에게만 특별한 논리와 법리로 재판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사법부가 삼성그룹이 설립한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종보 변호사는 “준법감시위는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 뇌물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권고한 후 설립한 것”이라며 “삼성은 2011년 컴플라이언스팀(준법경영팀)을 전 계열사에 만들면서 이미 준법경영 시스템을 갖췄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017년 확인된 정경유착 사건이 증거다. 최서원씨 소유 유령업체에 합리적 이유 없이 수십억원이 송금됐지만 실무자들 누구도 준법경영팀에 신고하지 않았다. 

김종보 변호사는 “준법감시위는 이에 비해 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감독하고 통제한다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상근하는 사람도 없고, 국정농단 때처럼 고위급의 위법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김 변호사는 “허울 좋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준법감시위를 영장실질심사에 반영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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