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시세조종 등 10여개 불법행위를 한 혐의를 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구속영장심사를 받는다. 삼성은 3일 전부터 3차례 해명자료를 내고 ‘삼성이 위기’라는 대언론 호소문도 냈다. 보도는 혐의 쟁점을 분석하는 매체와 삼성 입장을 그대로 전하는 매체로 나뉘었다.

서울중앙지법은 8일 10시30분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이 부회장 영장실질심사를 연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도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첨예한 대립과 방대한 증거기록을 볼 때 결과는 9일 새벽께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는 2018년 11월부터 시작됐다. 검찰이 이번에 제출한 영장 청구서는 150장, 수사기록은 20만장에 이른다.

▲8일 경향 3면
▲8일 경향 3면
▲8일 한겨레 12면
▲8일 한겨레 12면

 

이 부회장이 구속 위기에 처한 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이후 2년 4개월 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이 부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발부됐다. 이 부회장은 1년 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됐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행위가 동원됐다고 본다. 당시 삼성물산에 손해가 되는 합병비율(제일모직:삼성물산=1:0.35)로 주식가치가 계산됐는데,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부채를 덮는 등 모회사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린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최대 주주였고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검찰은 두 기업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4.1%를 확보하면서 8조원 가량의 이득을 취했다고 추산한다.

▲8일 세계일보 2면
▲8일 세계일보 2면

 

보도를 종합하면 검찰이 이 부회장에 적용한 혐의는 10여개다. 검찰은 부정거래 행위를 금지한 자본시장법 178조의 모든 조항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밖에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 등도 적시했다.

검찰에선 이번 수사를 전담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의 이복현 부장검사, 의정부지검 김영철 부장검사, 최재훈 부부장검사가 나설 예정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현 삼성전자 고문)이 총지휘한다.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 김형욱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감반장, 이남석 삼성전자 법무팀 상무 등이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동아·조선 “삼성이 위기입니다” 호소문에 방점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은 지난 5~7일 간 3차례 이 부회장과 관련된 해명자료와 호소문을 냈다. 한겨레는 “삼성이 자사 관련 보도에 대해 연속적으로 공식 해명자료를 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그룹 차원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8일 동아1면
▲8일 동아1면
▲8일 동아 2면
▲8일 동아 2면

 

특히 7일 발표된 호소문은 “삼성이 위기”라고 강조했다. ‘언론인 여러분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낸 보도자료엔 삼성이 코로나19와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위기를 겪는다며 “삼성의 경영이 정상화돼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적혔다.

삼성은 3차례 자료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시세 조종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도 적극 반박했다. 6일 YTN이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직접 구체적인 승계 작업이 보고됐다는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자 삼성 측은 이날 밤 늦게 “이 부회장은 어떤 불법적인 내용도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고 보도자료로 밝혔다. 지난 5일엔 이 부회장이 시세 조종 등 의사 결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8일 조선일보 1면
▲8일 조선일보 1면
▲8일 조선 3면
▲8일 조선 3면

 

8일 이를 강조한 언론은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등이다. 동아일보(“삼성, 신경영 선언 27주년 날 ‘경험 못해본 위기’”)와 조선일보(“이재용 영장심사 전날에 삼성, 이례적 호소문 발표”)는 1면에, 세계일보(“위기 외친 삼성… ‘경영 정상화로 경제 매진할 길 열어달라’”)는 2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매체 별로 논조·편집의 미묘한 차이도 보였다. 이날 동아일보는 1~2면에 걸쳐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의 반박 자료를 기사화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등을 인터뷰해 '반도체 산업 특성 상 빠른 의사 결정이 중요한데 총수가 없다면 누구도 빠른 판단을 책임지고 내릴 수 없다‘는 우려를 전했다.

▲8일 한겨레 12면
▲8일 한겨레 12면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등은 이 부회장의 혐의와 영장실질심사 쟁점 분석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경향신문은 3면 통으로 2개 기사를 배치했고, 서울신문은 9면에 2개 기사를, 한겨레는 12면에 2개 기사를 비중있게 실었다.

한겨레는 특히 삼성의 메시지 분석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여론전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검찰이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위기에 몰린 삼성이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의혹을 해명하는 한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삼성 역할론’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며 “‘위기 극복론’은 과거 경영권 불법 승계나 비자금 의혹 등 삼성을 둘러싼 법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삼성이 취해온 일관된 전략이다”라고 평가했다.(“‘구속만은 막아라’…삼성, 사흘 연속 ‘대언론 호소문’ 여론전”)

▲8일 중앙 14면
▲8일 중앙 14면
▲8일 한국 13면
▲8일 한국 13면

 

보도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매체는 중앙일보, 한국일보였다. 중앙일보는 14면에 검찰과 삼성 측 주장을 대등히 전하는 기사 1개를 배치했다. 한국일보는 치열한 양측 공방을 보여주는 기사를 13면 하단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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