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2항 제2호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구하는 헌법소원이 청구됐다. 법 조항이 지나치게 불명확해 특정인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넘긴 통신사가 당사자에게 수사기관의 ‘요청 사유’를 공개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라는 사각지대를 열어놨다는 지적이다.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민주노총, 전국언론노조, 참여연대는 4일 정보통신망법 제30조 2항2호가 헌법이 정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불충분하다며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청구인은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한겨레 기자)이다. 2015년 KT에 가입했던 김 협회장은 KT가 그해 11월 서울지방경찰청, 12월 서울남대문경찰서에 한 번씩 자신의 통신자료를 넘긴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김 협회장은 KT에 자료제공 내역 공개를 요구했으나 제공 일자와 요청기관, 요청 법 근거 등만 공개됐다. ‘수사기관이 왜 나의 자료를 요청했는지’에 대한 답은 확인할 수 없었다.

▲참여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는 2016년 5월25일 오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와 통신3사에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는 2016년 5월25일 오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와 통신3사에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수사기관 통신자료 무단수집 공동대응이 발표한 2015 3월~2016년 3월 시기별 통신자료 수집 현황.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린 시기와 자료 제공이 폭증한 시점이 일치한다. 자료=진보네트워크센터
▲수사기관 통신자료 무단수집 공동대응이 발표한 2015 3월~2016년 3월 시기별 통신자료 수집 현황.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린 시기와 자료 제공이 폭증한 시점이 일치한다. 자료=진보네트워크센터

 

전기통신사업법(제83조4항)상 수사기관은 전기통신사업자에 특정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할 때 요청 사유, 당사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 범위를 명시한 ‘자료제공요청서’로 요청해야 하고, 통신사는 이 자료를 보관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제4조)을 봐도 ‘정보 주체’는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동의와 그 범위를 결정할 권리, 처리 여부를 확인하고 해당 정보 열람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김 협회장은 수사기관이 반드시 통신사에 밝혀야 하는 ‘요청 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16년 5월 통신사를 상대로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KT에 “요청 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으나 2심 법원은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선고했다. 

김 협회장은 이를 대법원에 상고하고 위헌제청신청까지 넣었으나 지난 4월 모두 기각됐다. 이에 이번 헌법소원 청구에 나서게 됐다. 

위헌 주장의 요점은 ‘불명확성’이다. 이용자가 통신사에 열람·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정해서 법원이나 통신사가 개인의 자기정보 통제권을 침해하는 법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사각지대를 열어놨다는 주장이다.

정보통신망법 제30조2항2호는 이용자가 통신사에 열람·제공·정정 요구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 3가지를 정한다. 이 가운데 ‘사업자가 이용자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이 있다. 

김 협회장은 ‘요청사유’ ,‘이용자와의 연관성’ 등이 적힌 자료제공 요청서가 ‘제3자(수사기관)’에게 정보를 제공한 현황에 해당된다고 봤다. 그러나 2심 법원은 자료제공 요청서는 ‘현황’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013~2017년 통신 제한 조치, 통신사실 확인, 통신자료 제공 등 현황. 자료=2018년 인터넷투명성보고서.
▲2013~2017년 통신 제한 조치, 통신사실 확인, 통신자료 제공 등 현황. 자료=2018년 인터넷투명성보고서.

 

김 협회장은 이에 “법이 통신자료 제도를 통해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면서도 수사·정보기관의 권한 오·남용이나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통신사 등)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제공으로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되지는 않았는지를 정보 주체(이용자)가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인 열람 절차를 불충분하게 마련했다”며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대리인단은 “이 사건 법(정보통신망법 제30조2항2호)은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에 따라 열람·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 내지 항목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헌법상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국가는 수사, 정보수집 활동으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정보주체(이용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규율하고 입법할 의무가 있다”며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도 주장했다. 

대리인단은 또 “통신자료제공이 요청된 ‘사유’에 대해 열람할 수 없도록 하면, 정보주체는 자신의 통신자료가 어떤 이유로 수사기관에 제공됐는지 전혀 짐작할 수도 없고, 그 결과 통신자료와 관련한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다”며 “이는 정보주체의 절차적 권리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기에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대해 대리인단은 “수사기관은 특정 시점이나 장소에서 이뤄진 통신, 특정 상대방과 한 통신, 특정 내용을 포함한 통신 등에 대해 그 통신을 한 사람의 신원 확인 목적으로 통신자료 제공요청을 하게 된다. 그 경우 통신자료 수집은 특정인 신원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특정 신원을 가진 사람이 언제 어떤 곳에서 누구와 통신을 했는지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며 “통신사실에 대한 익명성이 제거된다”고 경고했다.

김 협회장의 소송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수집 제도 오·남용을 막기 위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가 2008년부터 주도했던 기획 소송의 일환이다. 이들에 따르면 검·경, 국가정보원 등이 통신자료 제공제도를 통해 취득하는 국민들의 통신자료는 2008년 500만 건을 넘어선 이후 계속 증가해 2014년 한 해에만 1300만 건이 수사기관에 제공됐다. 여전히 한 해 600만 건 이상의 개인정보(통신자료)가 수사기관의 공문만으로 넘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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