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개 시·군 소식이 신속히 모이는 라디오. 도내 곳곳 코로나19 확산 소식을 빠짐없이 전하는 재난방송. 지역 밀착 시사 프로그램이 있는 지역 공동체 저널리즘. 도민이 직접 만든 콘텐츠도 방영하는 자치형 플랫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공공 라디오.’

현재 정파된 99.9MHz 라디오 주파수를 둘러싸고 나오는 제안들이다. 99.9MHz는 지난 3월 기존 사업자였던 ‘경기방송’ 경영진의 일방 폐업 후 지금까지 68일 동안 정파됐다. 새 사업자가 정해지지 않은 공백 상태를 두고 경기도 시민사회에선 ‘공영 라디오’를 향한 다양한 상상이 나온다. 서울시 미디어재단 TBS처럼 경기도도 지역성과 공공성을 대폭 강화할 공영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의회 김달수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장)도 그중 하나다. 김 의원은 지난 4일 동료 의원 40명의 서명을 모아 “경기도형 공영방송 설립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도의원이 집단으로 경기도청에 공영방송 설립 참여를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3일 경기도 일산에서 김 의원을 만나 ‘경기도형 공영방송’의 상을 들었다. 

▲김달수 경기도의원 도의회 발언 모습. 사진=김달수 의원 제공.
▲김달수 경기도의원 도의회 발언 모습. 사진=김달수 의원 제공.

 

“공영방송 만들 기회 놓치면 안돼”

첫 번째는 ‘지역성’이다. 김 의원은 “지방분권·지방자치 관점에서 경기 지역 공영방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뉴스 대부분이 중앙정부 시각으로 다뤄진다는 문제의식이다. 다뤄지는 정보도 중앙정부나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이슈를 발 빠르게 전달할 창구도 필요하다.

그는 “경기도가 원체 크다. 지자체만 31개이니까 많은 뉴스와 다양한 정보를 전달할 창구가 필요하다”며 “각종 정책들이 경기도민 입장에서 해석돼야 한다. 지역성 그 자체를 세계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 언론사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김 의원은 지역에 기반한 재난방송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그는 “경기지역 코로나 확진자 동선이 어떻고, 각 지자체가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재난상황에서의 지역 소식이 세밀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원인 규명은 잘되고 있는지, 재발 방지 대책은 마련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도 재난방송사 역할”이라고도 했다. 

‘공공성’도 중요한 가치다. 한정된 자원인 전파는 공공재고, 이를 기반으로 방송을 하는 지상파 사업자는 공공성을 핵심으로 둘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은 “공공재가 공공재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공적자본을 투입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공영방송을 설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이 기회가 특정 기업에 홍보수단으로, 생존수단으로, 방패막으로 소유되는 건 불행하다”고도 덧붙였다. 

김 의원은 소유와 경영 분리도 강조했다. 소유·경영 분리는 지역언론의 고질적 문제다. 의사결정권을 독점한 사주가 보도에 개입하거나 구성원의 노동환경을 열악하는 등 독단적 운영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번 경기방송 폐업도 사주의 전횡에서 시작됐다. 구성원들과 어떤 상의 없이 이사회와 주주가 ‘부동산 임대업’만 남기고 폐업 결정을 해버렸다. 사주인 심기필 회장의 측근 현준호 전무이사가 각종 막말 사건과 보도 개입으로 논란이 되자 나온 조치였다. 

김 의원은 공적 소유 구조는 이 같은 전횡을 방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지역 언론 대부분이 행정광고나 행사에 의존해 있다. 자본력이 취약한 구조다보니 사주에게 더 휘둘리기 쉽다”며 “탄탄한 자본 지원, 도민 감시를 받는 공정한 운영시스템을 가지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문제”라 강조했다. 

TBS는 김 의원이 주시한 예다. TBS는 서울시 산하 사업소에서 출발해 지난해 출연기관 ‘서울시 미디어재단 TBS’로 독립했다. 그는 소유구조상 정부기관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시·도 조례와 방송 공공성,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두는 게 필수다. 방송국을 별도 재단법인으로 독립시켜 시작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999 추진위원회가 지난 4일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형 공영방송 설립을 요구했다. 사진=새로운999추진위원회 제공.
▲새로운 999 추진위원회가 지난 4일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형 공영방송 설립을 요구했다. 사진=새로운999추진위원회 제공.

 

“도민 공감이 우선, 경기도 마중물 돼야”

김 의원은 경기도가 신속히 입장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막대한 예산이 들지 않으니 경기도가 마중물 역할만 해주면 설립 준비나 과정은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도가 의지만 보이면 (서명한 40명 의원은) 예산 편성에 동의하면서 지원해줄 수 있다. 의회 내에서도 설득을 계속 해 동참 의원을 늘려갈 것”이라며 “경기도가 TF팀을 꾸려 꼼꼼히 설계하고, 방송통신위원회 공모에 대비하고 허가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여론 형성이다. 김 의원은 “도청과 도의회가 어떻게 설립을 준비하느냐보다 도민들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도민들이 공영방송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으면 도청도, 도의회도 공영방송 설립을 주장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999 추진위원회’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 3월 경기방송 폐업 이후 전국언론노조와 산하 경기방송지부,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경기공동행동,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6개 단체가 모여 시작했다. 현재 100개가 넘는 경기지역 사회단체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 4일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가 공적자본 힘으로 방송 공공성을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달수 의원도 40명 의원을 대신해 “방통위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가치를 지닌 언론사의 ‘뉴 모델’을 세밀하게 만들어주시길 바란다”고 경기도청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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