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본사 연구동 여자 화장실에 불법 촬영기기가 설치됐다는 사실이 5월29일 보도된 뒤 용의자가 6월1일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용의자는 KBS 공채 출신 개그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해당 개그맨이 KBS 직원인지 아닌지가 쟁점이 되면서 조선일보 기사의 오보 여부가 논란이 됐습니다. 굳이 따져 본다면 ‘직원’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조선일보의 오보 여부가 갈릴 텐데요. 과연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논란을 지켜보는 시민들을 씁쓸하게 합니다.

‘범인이 직원이냐 아니냐’ 불필요한 논쟁

논란은 조선일보가 6월1일 오후 보도한 기사 <KBS 화장실 몰카, 범인은 KBS 직원이었다>(6월1일, 이기우 기자)에 KBS측이 입장문을 내 반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KBS는 “경찰 측에 용의자의 직원(사원)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직원(사원)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KBS는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조선일보 기사를 “오보”로 규정했습니다. 다음날, 불법 촬영장비를 설치한 용의자가 2018년 KBS 공채 출신 개그맨이라는 것을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했고, 다른 매체도 잇따라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6월2일 다시 기사를 싣고 KBS를 재차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 <KBS, 본지 보도에 “직원 아니다, 소송 내겠다” 펄쩍 뛰더니…>(6월2일, 허유진 기자)는 “‘직원’의 사전상 의미는 ‘일정한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며 “KBS의 개그맨 공채 시험은 합격자들이 1년간 KBS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는 조건이다. … 공채 개그맨은 전속계약 기간 1년이 끝나면 공채 기수를 토대로 ‘프리랜서’ 개념으로 활동한다”고 부연했습니다. ‘직원이 아니라며 펄쩍 뛰던 KBS 주장과 달리 공채 개그맨이니까 직원이 맞다’는 취지입니다. KBS는 조선일보의 항변에 “추가 입장 혹은 입장 변화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여의도 KBS.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여의도 KBS. 사진=미디어오늘

KBS, 피해 파악과 재발방지가 우선

조선일보가 범인이 아닌 KBS를 직접 비판할 정도로 양측 공방에 불이 붙었으나 과연 ‘직원’ 여부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은 KBS의 대처방식입니다. KBS가 조선일보에 이처럼 격하게 대응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KBS가 관리·감독하는 건물에서 불법촬영 장비가 발견됐다면, 우선 실제 피해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고 피해구제와 재발방지 대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을 임직원과 시청자에게 공개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KBS는 성범죄 용의자가 직원이 아니라는 반박부터 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KBS의 태도에 대해 <KBS, 강력한 손절의지 부끄럽기나 합니까?>(6월2일) 논평을 통해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도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문제해결을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역할을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KBS는 조선일보와의 논쟁 이틀 뒤인 6월3일 “KBS는 연구동 건물에서 불법 촬영기기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재발방지와 피해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2차피해 예방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거듭 약속드린다, 사건의 용의자가 KBS 직원은 아니더라도 출연자 중 한 명이 언급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입장을 냈습니다.

잘못 인정하기 싫은 조선일보

조선일보 역시 언론으로서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직원’은 근로자의 한 종류로 직원이 ‘근로자’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사전상 의미’를 들이밀 만큼 엄밀히 따지자면 조선일보가 오보를 낸 것이 맞습니다. 물론, ‘KBS의 직원’인지 ‘KBS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개그맨’인지는 ‘KBS의 감독책임 하에서 일어난 불법촬영 성범죄’라는 사건의 본질과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조선일보도 간단히 정정하고 넘어갔어야 할 일입니다.

다른 매체는 조선일보처럼 “범인은 KBS 직원”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KBS, 본지 보도에 “직원 아니다, 소송 내겠다” 펄쩍 뛰더니…>(6월2일)에서 보인 태도는 ‘어쨌든 틀린 건 아니지 않느냐’, ‘KBS 직원 아니라더니 결국 너희 개그맨 아니냐’는 비아냥에 가깝습니다. 6월3일에는 <공채 개그맨은 직원 아니라며… 몰카 재발 막겠다는 KBS>(6월3일 손호영 기자)라는 보도로 또 KBS를 ‘저격’했습니다. KBS가 당일 ‘재발방지 및 추가 피해방지 약속’을 발표했음에도  ‘직원 아니라더니 재발 방지책은 왜 내냐’는 식으로 조롱한 셈이죠. 조선일보에게 성범죄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일까요? KBS를 ‘저격’하는 게 더 급했던 것일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5월29일 ~ 6월2일 KBS·조선일보 (온라인 보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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