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넓어졌다고 본다. 개그콘서트가 사라진다고 슬퍼하지만 않고, 더 넓은 무대에서 ‘제2의 개그 인생’을 펼치겠다.”

21년 동안 방영된 공개 코미디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사실상 폐지’에 개그맨 박성호씨가 밝힌 심정이다. 박성호씨는 KBS 13기 공채 개그맨이다. 1997년 데뷔해 개콘 ‘봉숭아학당’의 ‘다중이’, ‘멘붕스쿨’의 ‘갸루상’ 등 캐릭터로 사랑 받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일 서울 구로구 한 스튜디오에서 박씨를 만났다.

- 6월3일 ‘개그콘서트’ 마지막 녹화다. 어떤 심정인지?  
“대외적으로 임시 중단이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폐지다. 그래도 마지막 녹화를 위해 준비 중이다. 물론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후배 개그맨들 입장에선 어떤 목표가 사라진 거고, 선배 개그맨 입장에선 청춘을 다 바친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트렌드 변화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또 젊은 층들이 TV 보기보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본다. 모든 매체가 모바일로 옮겨갔고 사람들 생각도 옮겨갔다. 모바일 영상은 TV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이 표현된다. 특히 지상파에서 개그하는 것은 ‘건강한 맛’일 수 있으나 ‘맛이 없다’는 평을 받을 수 있다.” 

▲1일 서울 구로구 한 스튜디오에서 개그맨 박성호씨를 만났다. 사진=김용욱 기자.
▲1일 서울 구로구 한 스튜디오에서 개그맨 박성호씨를 만났다. 사진=김용욱 기자.

- TV를 보는 시청자 연령이 과거보다 높아졌다지만 트로트 열풍처럼 인기를 얻는 프로그램도 있다. 개콘은 왜 외면당했다고 생각하나? 
“노래와 개그가 다른 것이, 노래는 ‘내가 옛날에 들었던 노래’가 여전히 좋다. 추억이 묻어나고 옛 생각이 나니 노래를 계속 반복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개그는 봤던 걸 다시 보면 재미없다. 개그는 새로워야 하니까.”

- 개그콘서트가 “웃기지 않다”고 비판 받을 때 반박 주장 가운데 하나는 “공영방송에서 개그를 하면 방송심의 등 제약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콘 유튜브 버전 ‘뻔타스틱’에 기대만큼 웃기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일단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 시도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플랫폼에서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앞으로도 새로운 스타가 나오길 바란다.”

- KBS 웹예능 ‘구라철’에 나와 개콘에 대해 “아직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때는 폐지될 것을 몰랐나?
“그때 따끔하게 지적을 듣고 개선해서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구라철’ 해당 에피소드가 나오고 한 달 만에 폐지됐다. 얼마 전 KBS ‘연예가중계’가 잠정 중단됐다가 재개하지 않았나.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도 개그콘서트는 21년을 해온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공개 코미디 형식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KBS 웹예능 ‘구라철’은 개그맨 김구라를 MC로, ‘거침없이 센 질문을 날리자’는 콘셉트의 유튜브 방송이다. 방송 초기부터 양승동 KBS 사장에게 직접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 등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현재 구독자 12만여명을 확보했다. 

▲4월10일 공개된 KBS웹예능 '구라철'에서 개그맨 박성호씨가 개콘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모습.
▲4월10일 공개된 KBS웹예능 '구라철'에서 개그맨 박성호씨가 개콘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모습. 사진출처='구라철' 갈무리. 

- 같은 KBS 유튜브 채널인데, 김구라를 내세운 ‘구라철’은 인기를 얻고 ‘뻔타스틱’은 그렇지 못하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코미디의 트렌드가 ‘날 것’이 된 것 같다. 이제는 뭔가 장면을 만들어서 그속에서 웃음을 찾는 형식 자체가 힘든 것 같다. 예를 들어 ‘구라철’에선 ‘혹시나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하는 날 것의 질문을 그대로 계속 던진다. 그런 것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두 번째, 개그맨이나 캐릭터 자체가 ‘호감’인지 ‘비호감’인지도 중요하다. 개그맨이나 캐릭터의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구라 선배의 경우 막말을 하지만 그의 길었던 무명 시절, 혹은 그의 인생 속 아픔 등과 어우러져 캐릭터가 된다. 이 때문에 그가 막말을 했을 때도 웃음이 터지고 받아들이게 된다. 작위적으로 웃긴 상황을 만드는 식의 개그가 아니라 개그맨 그 자체가 호감이 돼서 진행하고 웃음을 얻는 게 트렌드인 것 같다.”

- JTBC 예능 프로그램 ‘1호가 될 수 없어’도 개그맨들이 나와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맞다. ‘1호가 될 수 없어’는 MC도 개그맨, 출연진이 개그맨이다. 예능이라기보다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본다. 이 역시 패턴화한 개그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포맷이다. 어쩌면 콩트 형식의 개그가 달라진 시대에서 개콘이 도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무래도 개콘은 공개 코미디, 특히 콩트라는 형식에서 새 패턴을 발굴하지 못한 것 같다. 21년 동안 반복되다보니 시청자분들도 그 패턴을 습득했고 내성이 생겨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개그맨 박성호씨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김용욱 기자.
▲개그맨 박성호씨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김용욱 기자.

- 요즘 관심 있게 보는 개그맨이나 개그 프로그램이 있나?
“개그우먼 김신영이 ‘둘째이모 김다비’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예전같으면 개콘의 한 꼭지 속 캐릭터로 나올 법하다. 그 캐릭터가 무대 밖으로 나왔다. KBS 아침마당에 김신영이 아닌 김다비로 출연했는데 시청자들이 ‘왜 김신영이 아니고 김다비일까’라고 반응하지 않는다. 일종의 캐릭터 놀이인데 이를 인정해주는 시대다. 이제 무대에서만 캐릭터로 활동하지 않는다. 더 많은 무대가 생긴 것이다. 하다못해 카메라 한 대만 갖고도 자기 캐릭터로 방송할 수 있는 시대다.”

- 박성호가 추구하는 개그는 무엇인가?
“일단 스스로 즐거워야 한다. 예전엔 내 몸이 힘들어도 ‘사람들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 노력하면 그게 통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 사람들이 한두 명 찾아와 같이 노는 식이다. 그래서 개콘이 없어지고 나면 새 플랫폼에서 신인의 자세로 노력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개콘이 없어져 슬프기도 하지만 무대가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4050세대 분들은 청년 때부터 개콘을 보셨을 텐데 나도 그렇다. 개콘을 통해 데뷔하고 인기를 얻고 이제 50대로서 다음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다. 은퇴 후 무언가 새롭게 하는 분들도 많지 않나. 개콘은 나의 개그 1막이었다. 2막에는 어떤 개그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해주시고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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