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본지에서는 ‘할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나 당사자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씨’로 표기한다). 유력 언론인 김어준씨는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위 ‘배후설’을 제기하며 진영 논리를 부추겼다. 이 틈을 타 국내와 일본의 극우세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적 증언을 부정하고 나섰다.

이용수씨 기자회견은 ‘위안부’ 관련 국내 최대 시민단체인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윤미향의 국회의원 당선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씨는 지난달 7일 대구의 한 찻집에서 ‘위안부’ 인권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수요시위’를 없애야 한다, 정의연이 모은 성금·기금이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언론판이 관련 의혹으로 뒤덮인 뒤 열린 25일 2차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 앞에 홀로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증언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이씨는 “(나는)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다, “위안부 피해자를 만두의 고명으로 사용했다”, “돈은 몇 사람이 받아 먹었다”,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일본이) 배상해야 내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는다”는 말들을 전했다. 화려한 겉옷을 입고 당당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지만 “내가 갔던 곳을 말씀드리겠다”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 대목에서는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 5월2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갈무리.
▲ 5월2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갈무리.

그리고 다음날 김어준씨의 ‘공작론’이 작동했다. 독보적 청취율을 차지하는 자신의 프로그램(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그는 ‘기자회견문의 순수성’을 의심했다.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건 명백해 보인다. 도저히 그 연세에 어르신들이 쓰는 용어가 아니라는 게 금방 드러난다”며 “(이씨에게) 도움을 줬다는 분들이 정의연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말이다.

이씨와 그의 딸이 언론을 통해 배후설을 반박했으나, 김씨는 다음날인 27일 방송에서도 “기자회견문을 (할머니) 혼자 정리했다고 하는데 7~8명이 협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특정 세력이 윤 의원을 공격하기 위해 고령의 이씨를 조종했고 이씨는 그걸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불순한 세력이 의도하는 대로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김어준식 ‘공작의 관점’이다.

이런 프레임은 피해자를 지워버린다. 지금의 현상이 누군가의 ‘큰 그림’을 위해, 더 솔직하게는 ‘우리 편을 지워버리기 위해’ 설정된 수단으로 각인되면 더 이상 피해자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고령의 할머니가 어떻게 이런 기자회견을 기획하고, 평소 쓰지도 않는 언어로 작성하냐는 의심이 시작된다. ‘왠지 횡설수설 하더라’,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겠느냐’는 비난에 정당성을 더해준 결과가 이미 온라인을 잠식했다. ‘거짓말쟁이 이용수를 검증해야 한다’는 극우세력 주장도 고개를 들었다.

과연 이씨는 본인이 뭘 말하는지도 모르는 조종당한 노인일 뿐인가. 이씨가 기자회견에서 전한 메시지는 선명했다. 정의연 등이 요구하는 이미지에 따라 ‘이용’ 당했다는 문제의식, ‘더러운 위안부’이지만 ‘성노예’라는 용어로 불리기 싫다는 불만, 이제는 본인이 주체적으로 권리를 찾아내겠다는 선언이다. 목표는 늘 말해왔듯 ‘일본의 사죄’였다. 윤 당선인에 대한 의혹은 “검찰에서 밝힐 것”이라 정리했다. 윤 의원과 정의연에 대한 비판을 극대화해서 쏟아낸 것은 언론이지, 이씨 본인이 아니다.

‘이용수에게 도움을 준 인물이 여럿 있었다’는 말을 배후설 관점에서 제기한 것 또한 피해자의 정당성을 공격한다.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언론에 알리고, 장소를 마련하고, 배포해야 할 유인물을 만드는 모든 절차는 이씨가 아닌 그 누구라도 어려운 일이다. 시일이 가깝다면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개인의 입장을 공표하기 전 신뢰할 수 있는 주변 인물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에 대한 지적은 피해자의 말에서 피해자성을 소거하는 ‘공작론’의 전형이기도 하다. 2018년 2월 ‘미투 공작설’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 방식으로 보면 첫째 섹스, 좋은 소재고 주목도가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해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정봉주 전 의원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그는 “안희정에서 봉도사(정봉주 전 의원)까지, 제가 공작을 경고했다.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러나 이제껏 사실로 밝혀진 전말 대신 남은 것은 ‘미투 공작’이라는 프레임 뿐이다. 언론이 권력에 눌려 있던 시절 ‘나꼼수’는 범접할 수 없는 정치·경제권력을 겨냥했다고 호평 받았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떤가. 이들의 ‘배후’가 공격할 만한 대상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 소위 ‘민주 진보 진영’일 테다. 미투 피해자들의 말하기가 공작으로 여겨지자 일부 극렬한 지지층은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피해는 보이지 않는 배후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에게 꽂혔다.

심지어 ‘파생정당’을 합쳐 180석에 육박하는 여권인사들이 이씨의 ‘욕심’을 공격한다. 이씨가 지난 2012년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던 이력을 두고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할머니의 분노는 ‘내가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나는 못하고 네가 하느냐 이 배신자야’로 요약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민주당이 차라리 피해당사자 이씨를 등용했다면 ‘위안부’ 운동 역사의 한 획을 그었을 테지만, 그 같은 모습은커녕 피해자의 분노를 ‘질투’로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인식이 여당 중진 의원의 입에서 언론을 통해 확산됐다.

그 양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는 최근 “언론은 이렇게 정신 없을 때 하이에나처럼 앞장선다. 기자회견 보면서 왜 이런 말이 나올까 여기 나오는 논리는 왜 이런 걸까 단어는 누가 쓴 걸까를 보고 이야기 해야 하는 게 기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를 그대로 돌려줄 필요가 있다. 피해자는 왜 이런 말을 할까, 왜 이런 논리를 펼칠까, 왜 이런 단어를 썼을까. 김씨는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그룹, 나아가 대중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자 지상파 라디오 진행자다. 그가 일부 언론을 상대로 종종 지적하는 ‘책임’을 고려한다면 복잡한 사안을 너무 쉽게 뭉개버려선 안 될 일이다.

이런 가운데 이씨가 보인 모습은 시사점이 크다. 지난 1일 이씨는 1991년 피해를 증언해 국내 ‘위안부’ 운동을 촉발한 고 김학순씨 묘소(충남 천안)를 참배했고, 일부 피해자들이 기거 중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혼돈 속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멈춰 있는 동안 피해 당사자가 오히려 정치적 행보를 보인 셈이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할머니가 말하고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하는 건 아니다. 피해자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과정이 만들어져야 여러 혼란을 일본과는 다르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역사 속으로 넣을 것인가. 피해자가 주체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운동의 상징으로서 윤 의원을 두고 있는 민주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불어시민당이 처음 윤 의원을 검증했다고는 하나, 시민당은 애초 민주당과 함께 하고자 출범한 ‘플랫폼’ 내지는 ‘위성정당’이다. 총선이 끝난 뒤에는 아예 합당했다.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믿고 준 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전국민적 혼란의 중심에 섰지만 민주당은 제3자처럼 지켜봤다. 국회는, 민주당은 앞으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정쟁이 아닌 실질적 고민을 내놔야 한다. 구경만 하고 있을 만큼 민주당의 의석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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