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다. 수신료 아니면 앞으로 먹고살 수 없다. 올해도 1000억대 적자가 예상된다. 광고매출이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사내유보금 감안했을 때 2년 뒤면 망할 수 있다. 수신료 받는 게 쉽지 않은 것 알고 있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MBC 정책부서 관계자) 

젊은 층이 공영방송에서 이탈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 영국 BBC조차 수신료를 지키기 어려운 지금, 박성제 MBC사장이 “MBC도 수신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MBC사장이 대외적으로 수신료를 요구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박 사장은 지난달 7일 한국방송학회에서 “MBC 경영위기 및 사회적 신뢰 회복의 출발점은 MBC 정체성 논란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고 했다. 방송법엔 공영방송 규정이 없지만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에선 KBS와 MBC를 공영방송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3월 중장기 방송제도개선안에서 MBC를 아리랑TV·국악방송 등과 함께 PSB(공공서비스방송)로 분류하자 MBC는 강하게 반발했다. MBC 관계자는 “PSB 모델로 가서 수신료 대신 방송발전기금을 받으라고 하는데 방송용 책정액이 1800억 수준이다. 여기서 아리랑TV와 국악방송으로 400억이 빠진다. MBC가 나머지를 다 가져갈 수 없다. 방통위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로 가라고 해서 반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상암동 MBC사옥. ⓒ언론노조
▲서울 상암동 MBC사옥. ⓒ언론노조

MBC사장이 “MBC=공영방송”을 천명하며 수신료를 요구하자, 업계가 술렁였다. MBC가 수신료를 받게 되면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하고 국회 예결산 심사도 받아야 하고 국정감사에 불려 나가야 하는데 ‘너무 쉽게 던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각종 수익사업이 금지되고, 광고 비중이 축소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수신료를 받는 KBS·EBS처럼 의무재송신 채널로 전환할 경우 재송신 매출을 포기해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회의론도 있었다. 

MBC 재전송료(CPS)는 2017년 671억원, 2018년 782억원, 2019년 805억원으로 매년 증가세다. MBC 관계자는 “수신료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CPS 관련 입장은) 연동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MBC 고위관계자는 “CPS 수입을 상쇄하는 규모의 수신료를 받게 되면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MBC 목표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다. 지상파3사 독과점 시대가 끝났는데 방송구조는 독과점 시대 그대로”라며 생존을 위해 ‘판’을 흔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18대 국회에서 3500원, 19대 국회에서 4000원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정쟁의 도구로 소모되며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선 이렇다 할 논의 자체가 없었다. MBC 관계자는 “39년째 수신료가 2500원이다. KBS 혼자서는 절대 수신료 못 올린다. 같이 협력해 올린 뒤 국회 수신료 산정위원회에서 적절히 배분하면 된다. 21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KBS 관계자는 “솔직히 처음 듣고 뜨악했다. 방송법 어디에도 MBC에 수신료를 줄 규정이 없다. 방송법 틀 자체를 바꿔야 할 것”이라고 전하며 “MBC가 수신료를 받더라도 KBS에 준하는 의무를 부과할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공영방송 제도와 그에 연계된 수신료 제도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전제한 뒤 “수신료는 단순한 공적 재원이 아니라 공영방송과 시청자 사이에 맺어지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중요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적정 수준의 공적 재원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그 공적 재원이 수신료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만약 수신료가 된다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사회계약을 맺고 그에 동참할 것인지의 문제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KBS와 MBC. 디자인=이우림 기자.
▲KBS와 MBC.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 언론학 박사는 “이명박·박근혜정부 공영방송 ‘공백기’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이제 공영방송 없이도 자신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JTBC에서 국정농단사태를 봤고 드라마는 tvN에서 봤다. 지금은 KBS가 수신료를 가져가는 것도 부정적인 분위기”라며 현재 MBC의 수신료 요구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방송사보다 잘 만들거나, 그게 어렵다면 공영방송으로서 차별화된 콘텐츠로 수신료 지원의 당위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는 19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에 박성제 사장이 참석해 또다시 수신료를 주제로 MBC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행사에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양승동 KBS사장도 참석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한편 KBS 경영평가단은 지난달 31일 공개한 ‘2019년 경영평가결과’에서 “수신료 수입 정체와 광고 수입감소로 KBS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낳고 있다”며 “근본적 해결적으로 TV 수신료 현실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8년 기준 KBS 공적재원 비중은 46.9%다. 

MBC사장의 ‘수신료’ 발언을 시작으로 20년 된 방송법과 39년째 그대로인 2500원 수신료를 둘러싼 본격적인 새판짜기가 시작되는 모양새다. ‘수신료 산정위원회’ 설치는 현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해서 국회는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야 한다. MBC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에서 공공의료 영역의 중요성이 확인됐다. 방송도 공공영역이 중요하다. 공영방송이 상업방송과 IPTV, 해외OTT에 쓰러지고 나면 5·18 특집방송은 누가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디즈니·넷플릭스·유튜브 글로벌 OTT 공세 앞에서 문화적 종속성의 문제와 지상파 생태계의 존속 가능성을 묻고, 공영방송이 없어도 되느냐는 논쟁이 벌어질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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