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언론에 비친 이재용과 김용희
언론에 비친 이재용과 김용희
[ 미디어오늘 1253호 사설 ]

지난달 29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땅을 밟았다. 강남역 사거리 삼성본관 앞 25미터 cctv 탑에 오른 지 355일 만이다. 그는 1982년 삼성항공에 입사한 후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김씨의 삶 자체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정면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직 투쟁은 개인을 뛰어넘는다. 언론이 주목해야 할 지점도 이 부분이다.

하지만 5월30일 조간신문 속 김용희씨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지난달 27일부터 6월1일까지 ‘삼성’과 ‘김용희’, 두 키워드로 검색한 조간신문 보도는 24건에 그쳤다. 30일 토요일자 신문에 김용희씨 소식(사진 포함)을 1면에 실은 매체는 한겨레, 경향신문 그리고 파이낸셜뉴스뿐이었다. 그마저도 파이낸셜 기사 제목은 “삼성 진정성 통했나”였다. 김씨의 목소리는 거의 없고, 삼성의 공식 입장문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입장 등으로 채웠다. 삼성의 ‘시혜’에 가까운 인도주의적 입장과 사과가 있었음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김씨의 목소리를 지우는 효과로 나타난 셈이다.

특히 1일 한국경제 보도는 삼성 편에 선 언론의 이기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경제는 “상여 끌고 장송곡 틀고… 욕설 비방에 포위당한 ‘삼성 타운’”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삼성 시위대’를 초법적인 집단으로 그렸다. 시위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릴 때 단골처럼 나오는 인근 주민과 스트레스 받는 상인들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는 “기업들을 압박하는 집회와 시위는 더 격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은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용희씨가 삼성 측으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고 29일 시위를 멈춘 데 주목하고 있다”며 “기업을 끈질기게 압박하면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결국 합의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김씨는 삼성 무노조경영의 피해자로 알려졌지만 주장의 진실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썼다. 김용희씨를 ‘떼쓰는 무리’ 중 일부, 나아가 떼쓸 자격도 없다고 깎아내린 것이다. 김용희씨가 철탑에서 내려오면서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피눈물 흘리는 현장을 세상에 환기시키는 게 언론인”이라고 말한 게 무색할 지경이다.

▲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째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째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할 때 언론 보도는 180도 달랐다. ‘삼성’, ‘이재용’, ‘사과’ 세 개 키워드로 5월7일과 8일자 조간신문을 검색한 결과 216건의 보도가 쏟아졌다. 조선일보는 1면에 “이재용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라는 기사와 함께 “10분간 세차례 고개 숙여”라는 제목의 사진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3면에서 “학벌 국적 떠나 인재 모셔 나보다 중요한 위치 일하게 할 것”이라는 이재용 부회장의 발언과 함께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관련 일지’를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국내 기업 집단 가운데 경영권 대물림의 포기 선언은 처음이고, 창업 이래 지켰던 무노조 경영 원칙을 폐기하는 것도 과감한 결단”이라고 썼다. “주변 반대에도 진정성 강조 위해 직접 기자회견 자청”(국민일보 2면)이라는 비슷한 류의 기사도 쏟아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김용희씨 소식을 놓고 뉴스 가치에 차이가 있다고 데스크의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10배 가까이 많은 보도량은 재벌과 노동 사이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 부회장의 사과 배경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게 언론의 몫이지만 이 부회장의 발언을 대부분 찬양에 가까운 것으로 보도한 건 분명 문제가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6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6일 오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2006년 삼성 X파일 사건, 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때도 비슷한 대국민 사과가 있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꼼꼼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박근혜에게 묵시적인 청탁을 하고 뇌물을 줬다고 판단한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준법감시위원회가 대국민 사과와 삼성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을 주문한 것이 대국민 사과의 실체라는 것도 상기해야 한다. 최소한 “이 부회장의 이번 사과가 대법원이 파기환송시킨 취지를 훼손해 사법부의 오랜 관행인 재벌 봐주기로 변질되지 않을까를 우려한다”(서울신문 사설)고 지적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자에겐 그토록 법치주의를 얘기하면서 뇌물액이 86억 원에 이르는 재벌총수에 대해선 왜 그렇게 너그러운지 언론 스스로 되묻길 바란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바람 2020-06-03 12:53:47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언론사 대주주(재벌/대기업)가 된다. 기자들을 저렇게 만든 것도 어쩌면 국민의 탐욕(아파트 투기, 나만 부자가 되면 된다)일지 모른다. 그대들은 정부에 수익(흑자)과 노동복지 모두를 요구한다. 아이러니 아닌가. 수익을 위해서는 민영화처럼 좋은 게 어디 있나. 취약계층을 다 버리는 것이다.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로 가면 누구만 살아남을까. 옆 나라 일본을 봐라. 태풍으로 전기가 나가도 복구에 한 달이 넘게 걸린다. 그대들도 타협하고 전략을 짜라. 왜 다 극단으로만 가는가. 극단에서 그대들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신자유주의(수익9:나머지1)를 원하면서, 노동복지를 요구하는 게 그대들이다.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