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삼성정밀에서 부당해고돼 28년간 싸워 공식 사과를 받아낸 김용희씨(61)가 355일 고공농성을 끝내고 호통을 친 곳은 언론이었다. 김씨는 취재진에게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피눈물 흘리는 현장을 세상에 환기시키는 게 언론인”이라 강조했다.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9일 오후 6시 서울 강남역 인근 김씨가 농성 중인 CCTV 철탑 아래서 삼성과 협상 타결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씨와 삼성 간 협상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이다.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째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종료하고 내려와 지지나온 시민들한테 꽃다발과 인사를 받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째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종료하고 내려와 지지나온 시민들한테 꽃다발과 인사를 받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양측 협상은 전날 오후 6시 타결돼 29일 오전 최종 확인을 마쳤다. 협상은 ‘사과·복직·보상’ 3대 의제를 두고 지난달 29일 시작됐다. 삼성의 거듭된 연기 요청에 지난 15일 파행 위기를 맞았으나 30일 만에 합의를 도출했다. 양측은 삼성의 공개사과문 외의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정했다. 

삼성은 “먼저 김용희님의 장기간 고공농성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점에 사과 말씀을 드린다.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고 공개 사과했다. 

삼성은 이어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점으로 인해 가족분들이 겪은 아픔에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끝으로 “조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삼성 측에선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대표이사가, 김씨 측에선 협상단 대표였던 임미리 교수가 대리인으로 최종 합의문에 서명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와 이덕우 변호사는 입회인으로 서명했다. 

협상은 3대 3으로 진행됐다. 김씨 측에선 공대위의 하성애 집행위원장, 임미리 대표, 이덕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삼성 측에선 삼성물산 전무 2명이 위임을 받고 대리인으로 참석했고, 부사장급 간부 1명이 입회인 자격으로 나왔다.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째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355일째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61)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언론인들 부탁한다. 자본권력에 맞서달라”

하성애 삼성피해자 공동투쟁 대표는 “그의 고공농성 355일은 무노조 삼성의 노동탄압을 전 세계에 알린 기폭제였다. 뉴욕타임스, 독일 공영방송 ARD, 영국의 BBC 등이 삼성의 반헌법적 노조 탄압 문제를 알렸다”며 “한 노동자 투쟁을 넘어 과천 철거민대책위원회,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 환우 모임, 삼성전자서비스 해고자 복직 투쟁 등 삼성 자본 피해자들의 공동투쟁으로 확산됐다”고 발언했다. 

현장을 찾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김용희 당원의 승리는 무노조 황제 경영으로 노동기본권을 차단했던 삼성의 높은 담벼락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삼성이 노동자가 사람답게 일하고, 사람답게 대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김씨가 지상에 내려오기 직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소감을 취재진에게 들려줬다. 김씨는 “자랑스러운 노동운동 역사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 큰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준 동지들에게 눈물나게 고맙다”며 “이제 이번 투쟁을 통해 삼성에 새로운 노사 문화 패러다임이 자리매김하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노사는 상생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씨의 목소리는 언론을 언급하며 높아졌다. 그는 “오늘 이 자리 참석하신 언론인분들, 삼성그룹은 광고비 많이 줍니다”며 “그렇지만 언론인 여러분 사명감은 무엇입니까”라 물었다. 

그는 “정말 부탁한다. 아직 사회 곳곳에 악 소리 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들 아픔을 외면하지 마시고 펜으로 자본 권력과 국가권력에 당당히 맞서는 언론인으로 거듭나면 좋겠다”고 말하며 발언을 마쳤다. 

오후 7시 119구급차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온 그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임미리 교수, 박석운 대표, 하성애 대표 등이 준비한 꽃과 케이크를 받았다. 케이크엔 ‘마침내 김용희는 땅으로’란 문구가 적혔다. 힘이 빠진 다리로 절뚝이던 김씨는 곧 119 대원이 준비한 휠체어를 탔다. 

30명이 넘는 취재진이 김씨 근처로 한 번에 몰리자 현장에선 힐난이 나왔다. 회견장 곳곳에서 참가자들이 “진작에 찍지” “싸울 땐 안 오고 이제야 와서 난리냐”라고 소리쳤다. 

▲29일 땅으로 내려오기 전 철탑에 걸린 현수막을 걷고 있는 김용희씨. 사진=손가영 기자
▲29일 땅으로 내려오기 전 철탑에 걸린 현수막을 걷고 있는 김용희씨. 사진=손가영 기자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종료하고 119 굴절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종료하고 119 굴절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김씨는 내려온 후에도 언론에 당부했다. 그는 “우리 언론인들 정말 부탁한다”며 “제 문제보다 삼성생명 암보험 피해자들 문제가 먼저 해결됐으면 하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암 환우님들과 눈을 못 맞추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과천 철거민 문제. 17년 째 삼성물산을 상대로 힘겹게 싸운다”며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항상 언론인 여러분께서 관심 가져달라”고 밝혔다. 

김씨는 경기도 성남의 한 병원에 후송되기 전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이 가장 손쉽게 택하는 게 정리해고다. 얼마나 많은 형제, 가족들이 출근을 못하고 있느냐”며 “산재로 죽는 목숨값이 기계 부품보다 못한, 그런 경영자에 대한 생각을 바꿔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광화문 촛불 민심, ‘사람이 먼저’란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같다”며 “한국만큼은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사회보험제도의 초석을 닦아달라”고도 했다. 

김씨는 지난해 6월10일 삼성의 사과와 자신의 명예복직 및 보상을 요구하면서 철탑에 올랐다. 고공농성과 함께 단식 투쟁도 세 차례나 병행했다.

삼성 측은 협상 타결과 관련 29일 “그동안 회사는 시민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 인도적 차원에서 대화를 지속했다”며 “뒤늦게나마 안타까운 상황이 해결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도움을 준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또 “김용희씨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보다 겸허한 자세로 사회와 소통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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