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혐오 보도’ 비판을 받아 온 국민일보에서 기자들이 내부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0년 차 이상의 차장급 기자들도 나서서 평기자부터 편집인까지 모인 논의 기구를 만들고 비판을 공유하고 대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일보 차장기자들은 27일 ‘국민일보의 건강한 소통을 바라는 차장단’ 명의로 성명을 내 “최근 불거진 동성애 관련 보도 사태와 관련해 먼저 사내 구성원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글쓴이 중 일부는 종교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종교부의 동성애 관련 일부 보도가 때로 선정적이고 혐오의 시선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반성한다”고 밝혔다.

성명이 지적한 보도는 지난 7일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 제목의 단독기사와 9일 ""결국 터졌다"... 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 제목의 기사다. 이태원 한 클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견으로 감염세가 확산된 상황을 전하면서 불필요하게 성소수자를 특정하는 문구를 썼다. '집단 난교' 등 혐오 표현도 쓰였다.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낸 관련 신문모니터보고서 갈무리.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낸 관련 신문모니터보고서 갈무리.

 

차장단은 이와 관련 4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저널리즘 측면에서 동성애 관련 기사에 문제가 있으며 △종교국과 편집국의 오래 분리돼 있으면서 게이트키핑 기능이 약화됐고 △편집국과 종교국이 기독교 이슈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다룰지 공감대가 부족했으며 △종교국 내 광고와 보도 부서가 분리되지 않으면서 지면 광고와 외부 연재 기사 데스킹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차장단은 또 ”언제부터인가 주장과 사실관계가 구분되지 않은 채 주의 주장이 뒤섞인 동성애 기사가 우리 지면을 차지했다“며 기독교계 내 비판도 4가지로 정리했다. △주장과 사실의 혼재에 더해 △자극적 용어 남발 △동성애 관련 한쪽 진영의 관점 과다 대표 △동성애 관련 교리 등을 비기독교인이 이해하게끔 기술하지 못한 점 등이다.

차장단은 사회 뿐만 아니라 교계에도 다양한 가치관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동성애자를 긍휼히 여기며 돌보는 것이 기독교 정신에 들어맞는다고 강조하는 신앙인과 기독교 교파 또한 존재한다.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말하는 성경은 우리에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어떤 언론도 사회적 논쟁을 바라볼 때 한쪽 목소리만 보도하지 않는다. 하나의 이슈에 대해 찬반이 존재하고, 그 찬반의 비중이 어떤지 신중히 판단하고 가려가면서 보도한다”고 지적했다.

10년차 이하 57명 기자들은 ‘10년차 이하 평기자단’ 명의로 연명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어떻게 쓰는 것이 옳은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가 성소수자가 이용하는 클럽이었다는 사실이 취재가 됐을 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하는가”라 물으며 “논란이 불거진 지난 3주간 저희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는 최근 논란이 된 성소수자 관련 기사들이 그동안 배워온 저널리즘 원칙에도, ‘사랑 진실 인간’이라는 국민일보의 사시에도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확진자가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것, 성소수자의 블랙수면방 이용실태를 밝히는 것은 불필요했다”고 판단했다.

평기자단은 나아가 “혐오는 언론사의 언어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기독교적 가치는 혐오와 배척에 있지 않다”며 “그간 성소수자 관련 보도가 기독교적 가치를 편협하게 해석한 결과물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때”라고도 했다.

기자들 대안으로 ‘모든 직급·직종 모인 공론기구’ 제안

이와 관련 차장기자단은 모든 직급·직종 구성원들이 모이는 논의 기구를 제안했다. “앞으로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동성혼 허용, 배아복제와 생명윤리, 낙태 등의 이슈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계속 대두할 것”이라며 “국민일보의 품격 있는 보도를 위해서도 종교국 보도에 대한 견제 및 검증 시스템의 확립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차장기자단은 사측에 “편집국과 종교국, 평기자부터 차장 부장단은 물론 국장과 편집인까지, 아울러 광고 파트와 콘텐츠 제작 분야 간에도 함께 논의하고 우리 조직의 지혜를 모아갈 수 있는 기구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평기자단도 “기독교적 가치관을 어떻게 보도하면 좋을 지를 놓고 논의 기구를 신설하자는 제안에 적극 찬성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일보 보도 전반에 대한 논의 기구가 신설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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