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영 전국언론노조 대구MBC 비정규직다온분회장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여겼다. 2004년 청주방송에 조연출로 입사해 2011년부터 연출을 맡았던 이재학 프리랜서 PD는 “정규직과 똑같이 일했다”며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패소한 뒤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윤 분회장은 2018년 이재학 PD가 부당해고 소송을 시작한다는 기사를 접한 뒤 이 PD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PD 사건을 말하며 “10년 넘게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노동자인데 방송사는 계속 ‘너는 프리(랜서)’라고 주입한다”고 했다. 대구MBC에서 10년째 자막CG를 맡고 있는 그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다.

이후 윤 분회장이 접한 이 PD에 관한 기사는 지난 2월 부고 기사였다. 다온분회는 그달 11일 사업장 노동조합 가운데 가장 먼저 추모 성명을 냈다. “청춘 20대를 다 바쳤지만 회사 어디에도 그의 계약 기록은 없었다. 행여 쫓겨날까 볼멘소리 한 번 못 내고 사용자 입맛대로 주는 저임금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틸 수밖에 없다.” 지난 8일 동대구역 인근에서 다온분회 집행부와 만났다. 이들은 “이 PD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그가 못다 한 싸움을 우리가 하겠다”고 했다.

▲윤미영 전국언론노조 대구MBC 비정규직다온분회 분회장이 지난 13일 오후 3시 충북 청주 CJB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열린 고 이재학 PD 100일 추모 문화제에서 추모 발언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윤미영 전국언론노조 대구MBC 비정규직다온분회 분회장이 지난 13일 오후 3시 충북 청주 CJB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열린 고 이재학 PD 100일 추모 문화제에서 추모 발언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다온분회는 대구MBC에서 일하는 ‘이른바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다 모인’ 노조다. 보도국 영상편집, 보도국 자막CG, 기술국 MD(Master Director), 편성국 자막CG, 편성국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다. 지난 1월 결성한 다온분회는 대구MBC를 상대로 노사 직접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조합원 대다수가 2년 이상 대구MBC에서 일했다. 길게는 22년 일한 노동자도 있다.

기술 스태프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구MBC 방송을 책임진다. 주조정실과 부조정실, 영상편집실에서 영상을 편집하고, 방송 자막을 만들고, 방송을 송출한다. 뉴스 자막과 앵커멘트 어깨걸이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고, 재난방송이나 긴급속보도 책임진다. 스포츠중계에 필요한 자막과 CG도 그들 몫이다. 코로나19 시국인 요즘은 생활수칙을 자막으로 내보내느라 챙길 게 더 많다. 이들 업무는 회사 스케줄에 따라 엄격하게 정해진다.

주조정실에서 MD로 일하는 한혜원 부분회장은 “방송사고가 날 수 있어서 늘 예의주시해야 하고, 지시가 떨어지면 밥 먹다가도 뛰어간다”고 말했다. ‘정규직과 협업이 얼마나 이뤄지냐’는 물음은 우문이다. “아닌 게 없다고 할 정도예요.”

▲대구MBC에서 자막CG를 맡는 다온분회 조합원이 부조정실에서 스포츠 중계를 운행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자막CG를 맡는 다온분회 조합원이 대구MBC 부조정실에서 스포츠 중계를 운행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대구MBC에서 자막CG를 맡는 윤미영 분회장이 지난 4·15 총선거 토론회를 운행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대구MBC에서 자막CG를 맡는 윤미영 다온분회장이 지난 4·15 총선거 토론회 자막CG 업무를 맡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이들은 한시도 거를 수 없는 방송 업무를 하지만 계약 형태는 프리랜서다. 각자가 소속 국장과 계약을 맺고 일한다. 계약서 유무는 국 따라 다르다. 오래 일하면 연차도, 숙련도도 늘지만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국장이 경영진과 이야기하고 와서 넌지시 ‘이번엔 오르겠다’ 또는 ‘어렵겠다’ 얘기해요. 회사 쪽에 뭔가를 요구할 재간이 없죠. 정확한 액수도 입금이 되고서야 알아요.”

프리랜서 노동조건은 역설적으로 MBC가 정상화하는 동안 내리막이었다. “2017년 파업 때 편집부장님이 저희를 불러 말했어요. ‘파업하는 동안 뉴스 제작이 다 멈춰서 일단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파업 끝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라고.” 프리랜서들은 일하지 않으면 곧바로 생계가 어려워진다. 이들은 파업에 참가할 수 있는 정규직 조합원이 아니었고, 집회에 부르는 이도 없었다. 속으로 응원하며 파업 승리를 기다렸다.

대구MBC 노동자들은 파업에서 승리했다. 이들도 함께 기뻐했다. 2017년 파업을 기점으로 회사는 오히려 편성국 자막CG 노동자 급여를 월급제에서 주급제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이들은 2018년 대구MBC 사장이 바뀐 뒤 직접 처우 개선을 바란다는 요구안을 전달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는 일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서비스 제공이에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구MBC 사옥. ⓒ구글 지도 검색 화면 갈무리.
▲대구MBC 사옥. ⓒ구글 지도 검색 화면 갈무리.
▲강서윤 다온분회 조직부장이 이재학 PD 추모 온라인 집중행동에 임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강서윤 다온분회 조직부장이 이재학 PD 추모 온라인 집중행동에 임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이 일을 겪은 뒤 대구MBC 프리랜서들끼리 노조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강서윤 조직부장은 “정규직의 경우 노조가 있으니 자체 행사도 하고 뜻도 모았다. 하지만 흩어져 일하는 우리 프리랜서들은 노조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진 얼굴 볼 일이 없었다”고 했다. “노조 계기로 처음으로 모여 이야기하는데, 힘들단 이야기만 하는데도 그게 너무 좋은 거죠.”

다온분회가 놓인 여건은 녹록지 않다. 회사는 노조를 꾸린 직후인 지난 2월 되레 몇몇 조합원에게 ‘업무 건당 바우처’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다온분회는 이를 회사가 프리랜서 노동자성을 지우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한혜원 부분회장은 “노동자임을 부정하려 주급을 바우처로 돌리고, 사실상 근무시간을 바꾸기 어려운데도 말로는 ‘자유롭게 일하라’고 한다”고 전했다.

바우처 제도는 다온분회가 수차례 성명을 통해 반대 뜻을 밝힌 끝에 폐기됐다. 하지만 이들의 급여통장에 찍히는 기존의 ‘대구MBC’라는 이름은 그 뒤 ‘자막료’로 바뀌었다. “MBC 파업을 보면서 ‘이렇게 힘이 모이면 승리할 수 있구나’ 느껴 노조를 만들었는데 막상 저희가 노조를 만들고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죠.(웃음)”

▲지난 8일 동대구역 인근에서 다온분회 집행부를 만났다. (왼쪽부터)강서윤 조직부장, 한혜원 부분회장, 윤미영 분회장. 사진=김예리 기자
▲지난 8일 동대구역 인근에서 다온분회 집행부를 만났다. (왼쪽부터)강서윤 조직부장, 한혜원 부분회장, 윤미영 분회장. 사진=김예리 기자
▲언론노조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조합원들은 3월24일부터 매일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에 대구MBC 사옥 로비에서 대구MBC와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다온분회 조합원들은 3월24일부터 매일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에 대구MBC 사옥 로비에서 대구MBC와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다온분회

다온분회 요구는 소박하다. “더 이상 우리 조합원들을 외면하지 말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함께 논의하기 위해 교섭 요구에 응하라는 거예요.” 이들은 3월 말부터 매일 대구MBC 앞에서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윤 분회장은 마무리를 코앞에 둔 이재학 PD 부당해고와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과 다온분회의 직접교섭 요구 이유가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했다. “당사자가 빠진 교섭 자리는 의미가 없어요. 우리가 노조를 만든 것도, 회사에 직접 요구하게 된 것도, 위에서 우리 처우에 대해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며 내려오는 말들이 부당해서였습니다. 청주방송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부를 덮고 작은 개선안을 꺼내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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