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사직한 지 16개월 만에 의전비서관으로 ‘승진 복귀’할 것으로 알려져 여성계 비판이 제기됐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은 27일 성명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여성시민들과의 약속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이라는 국정과제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대체 왜 어째서 또 탁현민인가’라는 질문에 청와대는 그를 내정하지 않는 것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세.연은 “2017년 7월 탁현민이 선임행정관으로 내정됐을 때 여.세.연은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또 다시 억압하면서 성평등으로 향하는 여정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으로 보고 이를 강력히 규탄’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경질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더욱이 수많은 언론사가 탁현민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음에도 그는 선임행정관직을 유지한 채 한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젠더의제를 다루는 ‘여성신문’의 특정 기사만 콕 집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했고 일부 승소했다”며 “‘반성했다’는 과거의 말이 과연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반성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언급된 기사는 지난 2017년 7월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기고문이다. 탁 전 행정관이 공동저서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2007)에서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성관계했던 중학생에게 자신도 성관계를 요구했다며 “상대 여학생은 친구들이 섹스 대상으로 공유했던 쿨한 여자”라고 쓴 것과 관련해서다. 기고자는 책에서 묘사한 내용과 비슷한 경험을 고백했는데, 탁 전 행정관은 책 내용은 지어낸 얘기고 기고문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 민사7부(부장판사 김종호)는 기사 자체는 명예훼손이 아니라면서도 기사를 공유한 여성신문 SNS는 탁 위원이 기고자에게 직접적 행위를 한 걸로 비춰질 수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 탁현민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 연합뉴스
▲ 탁현민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 연합뉴스

여.세.연은 “실존하는 강간문화에 거짓말로 일조한 탁현민이 권력의 최고정점인 청와대로부터 지속적으로 ‘러브 콜’을 받는 모습은 한국정치가 강간문화에 얼마나 관대하며 강간문화를 기초로 하는 남성연대가 얼마나 견고한지 지속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서가 문제가 되자 ‘거짓말’이라고 말한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신뢰를 버리지 않고, 이번에는 행정관에서 비서관으로 승진시켜 모셔오려 하고 있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기만 하면 그만인가. 공직자 자질에 있어 왜 성평등은 아직까지도 고려 요소가 아닌가”라며 “탁현민의 청와대 복귀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끝장내자는 여성들의 외침을 무시한 것이며 강간문화에 일조한 사람이라도 남성권력의 지지와 신뢰를 받기만 하면 얼마든 공적 영역에서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에 가담한 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무엇이었나. 술자리 ‘농담’, 단톡방 성희롱,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는 현재에도 공기처럼 존재하며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그 위협 속에서 생존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일상을 살아가겠다는 여성들의 절규에 응답하는 것이 강간문화를 거짓말이라며 옹호한 개인을 공직에 두는 것이라면 이는 성폭력·성착취 문제해결의 의지 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시민이자 시민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밝혔다.

탁 전 행정관은 청와대에 기용된 뒤 과거 저서 등에서 드러난 왜곡된 성의식으로 지탄받았다.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논란에 앞서 같은 해 출간한 ‘남자마음설명서’에서 ‘등과 가슴에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건 남자 입장에서 테러 당하는 기분’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말라’ ‘콘돔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등 기술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상상력에 권력을’(2010)이란 저서에선 서울 성매매 집결지 등을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풍경’이라 표현했다. 잇따른 논란에 여성계와 야당은 물론, 민주당 일부 여성 의원들과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 등 정부·여당 일각에서도 탁 전 행정관 사퇴 요구가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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