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7월 20일 신라호텔. 관훈클럽은 이곳에서 성대한 행사를 개최했다.
소위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 결성식. 당시 관훈클럽은 국내 언론상황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올바른 지향점을 모색한다는 취지아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의욕은 대단했다. 세계적인 언론보고서로 정평이 나 있는 미국의 ‘허치슨 보고서’, 영국의 ‘왕립신문 보고서’ 등과 같은 종합 보고서를 내겠다는 구상이었다.

참여한 면면도 화려했다. 정범모 전 한림대 총장이 위원장이었고 박성용금호그룹 명예회장, 최창봉 전 MBC 사장, 정의숙 전 이화여대 전 총장, 권영성 서울대 교수 등 언론계 외부인사와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담당 대기자, 박권상 당시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최정호 연세대 교수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2000년 위원회는 2년으로 활동시한을 정했고 98년 4월 7일 신문의 날을 기해 외부에 공표키로 했다.

이후 이 위원회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등 현직 언론사 사장을 심층 인터뷰하는 등 보고서 작성에 착수했다. 다수의 언론학 전공 교수들이 실무자로 참여했고 연구 주제도 세분화됐다.

관훈클럽 기관지인 관훈통신에는 수차례에 걸쳐 이 위원회에 대한 관련 인사들의 기고문이 실렸다. 한국언론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변변한 보고서 하나 없는 풍토에서 그만큼 기대감이 높았던 셈이다. 최종 보고서 집필자는 최정호 연세대 교수가 선정됐다.

그리고 2년 5개월. 아직까지 관훈클럽은 이 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다. 2000년 사업에 모두 3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됐지만 회원들과의 약속을 이행치 못하고 있다.

일부회원들은 예산 집행에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관훈클럽측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최종보고서 초안에 대한 독회를 갖고 보고서 보완에 대한 의견이 많아 마지막 마무리 작업에 있다는 설명이다. 예산도 투명하게 집행됐고 조만간 보고서를 완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설혹 보고서가 발간된다해도 과연 당초의 취지대로 한국언론의 좌표를 제시하는 기념비적 보고서가 될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구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97년과 비교한다면 지금의 언론상황은 그때와 너무 다르다. IMF여파로 언론사 경영환경도 달라졌고 언론계 내부 문화도 급변했다.

한마디로 보고서의 효율성 자체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반영하듯 관훈클럽의 한 회원은 “3억원을 허공에 날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화려한 출발에 비해 결말이 너무 싱겁다는 것이다.

날밤을 세워 언론문제를 토론했다는 관훈클럽 초기 회원들의 개척자 정신은 실종된 대신 부유한 언론단체의 ‘과소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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