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 중심의 위안부 운동을 공개비판하고 나선 지 20일 째가 되자, 언론은 지난 30년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이 할머니의 진의를 언론 입맛대로 해석하며 왜곡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서울신문과 한겨레는 27일 이 할머니의 진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한국 사회와 언론계를 지적했다.

▲27일 한겨레 2면
▲27일 한겨레 2면

 

서울신문은 1면에 “이용수의 진심, 우리는 제대로 보았을까요”(이근아 기자)란 기자 칼럼을 싣고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나. 지난 7일과 25일 격정으로 가득 찬 두 차례 기자회견이 끝난 후 머릿속을 맴돈 질문”이라며 “그의 분노가 가리키는 곳은 윤미향 개인이 아니었다. 이 할머니는 ‘진영 구분 없이 모두가 이 역사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더 나은 방법을 함께 찾자’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고 적었다 . “위안부 문제 해결의 책임을 시민사회에 미뤄 두고 방관한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이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것이다.

한겨레도 2면에 “70년이 지난들 고통 사라질까…‘여성 인권운동가 이용수’의 슬픔”(박윤경 기자) 제목의 기자 칼럼을 싣고 “사회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에 점차 익숙해지는 동안, 할머니의 ‘기억’은 돌부리처럼 비집고 나와 무뎌지지 않는 마음을 괴롭혔던 걸까. 생중계되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우리가 ‘시차’를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27일 서울신문 1면
▲27일 서울신문 1면

 

이 할머니의 ‘이용당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오늘날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피해자의 기억을 넘어, 지구상 또다른 폭력들을 막는 데 집중하자고 말한다. 그 방향성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할머니는 수십년의 시차 속에서 홀로 남은 듯한 외로움을 느껴왔는지 모른다”고 적었다. “수없이 많은 진술과 강연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거듭 ‘증언’하도록 요구받았으나, 이제는 과거를 말하는 이가 없다. ‘동무’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고, 30년 ‘동지’는 더 큰 발판이 필요하다며 자리를 비웠다”며 “그 속에서 이 할머니의 외로움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돼왔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세상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녀’ 또는 ‘할머니’로 납작하게 그려내는 동안, ‘여성인권운동가’로서 김복동·길원옥·이용수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통을 견디고 불의를 꾸짖어왔다”며 “그의 고백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섣불리 배후를 제기하기보다는, 그가 더 이상 ‘이용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의 운동에 든든한 배후가 돼야 한다”고도 했다.

▲27일 경향 5면
▲27일 경향 5면

 

언론·정치권 진영논리 선동 “‘배후’ 음모론 그만”

실제 이 할머니의 발언은 진영논리에 선 언론 보도, 정치권 발언 등을 통해 곡해돼왔다. 지난 25일 2차 기자회견 후엔 여권의 배후설·기획설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버 등에선 이 할머니를 향한 혐오 공격도 거세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모금한 돈으로 개인이 ‘밥을 먹자’고 해도 시민단체는 지출할 수 없다”며 이 할머니의 발언을 직접 반박했다. ‘모금 뒤 배가 고파 윤 당선인에게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했지만 돈이 없다며 거절당했다’는 발언이다. 김어준씨는 TBS 라디오 ‘뉴스공장’에서 “누군가가 왜곡된 정보를 할머니께 드린 것”이라며 “(기자회견문은) 할머니가 직접 쓴 게 아닌 게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유튜브를 보면 극우 성향의 채널에선 ‘위안부=거짓말쟁이’란 극단적인 주장을 쏟아내고 진보 성향의 채널도 ‘노욕’, ‘치매’ 등을 언급하며 이 할머니를 폄훼하고 조롱한다. 국민일보는 “구독자가 42만명에 이르는 한 극우 성향 운영자는 지난 11일 영상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내부고발자인 동시에 위안부 국제 사기단의 일원이라고 본다’거나 ‘이 할머니는 가짜 피해자인데 정의연에서 용도폐기되니 폭로한 것’이라 했다”며 심각성을 전했다.

▲27일 국민일보 1면
▲27일 국민일보 1면

 

보수진영에선 정의연과 윤 당선인을 둘러싼 증거없는 의혹을 무차별 제기한다.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은 25일 당내 ‘위안부 할머니 진상규명 TF’ 회의에서 “윤 당선인이 1995년 수원시 송죽동 빌라를 매수했는데 정신대할머니돕기국민운동본부가 모금을 시작한 시점이 1992년”이라고 의혹 제기했다. 윤 당선인이 부정하게 재산을 축적했다는 취지로 연관성 없는 두 사건을 엮었다.

경향신문은 “여야 대립에 양측 지지층까지 가세해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편 가르기식 싸움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라며 “이 할머니가 제기한 위안부 운동 방식과 한·일 과거사 해결방안 등 사태의 본질이 실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용수 할머니의 외침 곡해하는 이, 누구냐” 기사)

김어준씨가 ‘배후론’을 제기해 이 할머니와 그의 가족은 직접 해명까지 나서야했다. 이 할머니의 수양딸 A씨는 26일 페이스북에 “25일 기자회견문은 어머니 말씀을 먼저 듣고 정리하고 확인해 어머니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정리한 것”이라 밝혔다. “부당한 추측과 억측, 자신만의 기준에 따른 판단으로 어머니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27일 중앙 6면
▲27일 중앙 6면

 

언론 뒤늦게 “지엽적 논쟁말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봐야”

경향과 한겨레는 이 할머니의 회견에서 시작된 정의연 논란을 두고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지난 30년의 위안부 운동을 평가할 때라고 강조했다.

경향은 “약 30년이 흘렀지만,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시민운동’ 위주”라며 “‘시민운동·역사자료 발굴·외교전략 모색’ 등이 삼박자를 맞춰야 했지만,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 위안부 역사 연구만 하는 학자가 손 꼽을 정도인데다, 한·미·일 역학관계를 먼저 고려하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위안부 운동에 끌려왔다고 평가했다. 피해자 증언은 피해자 상당수가 80대 고령에 접어들면서 2010년대 이후 급감했지만 운동 방식은 계속 피해자에 의존했다고도 비판했다.

▲27일 경향 4면
▲27일 경향 4면

 

한겨레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관계와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선 ‘피해자 중심주의와 어긋났던 운동의 문제’라고 비판하지만, 여성·역사·외교 등 다양한 층위에서 민족주의, 한-일 관계 등 다양한 팩터들이 교차했던 30년 역사를 무 자르듯 쉽게 평가할 순 없다는 지적이 많다”고 평가했다. “국가가 풀어야 할 한-일 간 위안부 문제가 미뤄져온 것이 오로지 정대협 탓이라는 식의 일부 전직 외교 관계자들의 주장은 과도하고 사실과 어긋난다는 비판도 거세다”고 덧붙였다.(“30년 ‘위안부 인권운동’, 기로에 서다” 기사)

한겨레는 이와 관련 다양한 위안부 문제 연구가와 활동가의 평가를 전했다. 먼저 ‘피해자 중심주의’를 둘러싼 논란에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은 “피해자는 명예회복과 보상이 제일 중요하고, 시민단체는 이를 비롯해 교육이나 제도화 등도 포괄해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본이 책임을 지지 않은 것과 함께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과도하게 민간에 역할이 맡겨지며 ‘노노갈등’처럼 갈등이 민간으로 전이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27일 한겨레 1면
▲27일 한겨레 1면

 

이은선 세종대 명예교수는 한겨레에 “정의와 진실을 위한 시민단체와 운동이 너무 많은 과제와 일들로 세밀함과 따뜻함을 잃어갔으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한두 사람의 어깨에 짐과 과제를 얹어두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도 경직되고 관료화되면서 할머니들의 존재와 과거는 한 곁으로 치워지기도 했을 것”이라고 쓴소리 했다.

정의연의 방향성이 지나치게 반일감정에 의존했다는 지적도 있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소녀상 운동 등의 방식에 대해 “한국 사회가 과거 비극들을 기억하는 관습에 대해서 역사가들이 제대로 논쟁해 만들어지거나 축적된 게 없고 지나치게 친일-반일 프레임화됐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동아일보와 세계일보 비판은 정의연의 단체 운영방식에 집중됐다. 정의연이 “입장이 다른 피해자들을 배제해왔다”는 것이다. 1995년 고(故) 심미자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7명이 1993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수령할 때와 2004년 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33명이 ‘세계평화무궁화회’ 명의로 낸 성명이 주요 사례로 거론됐다.

▲27일 동아일보 1면
▲27일 동아일보 1면
▲27일 세계일보 4면
▲27일 세계일보 4면

 

세계일보는 “당시 정대협(정의연 전신)은 이 기금이 일본 정부의 공식 배상금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령을 거부했고, 심 할머니 등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세계평화무궁화회 성명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고 정대협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정대협 초기 활동가들 인터뷰를 중심으로 “소수 활동가의 전횡을 견제할 장치가 없었다”거나 위안부 문제를 정부가 방관하면서 정의연이 ”과잉 대표성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한 익명의 정대협 초기 멤버는 동아일보에 “소수 활동가가 이 운동의 주체가 되면서 의사결정 과정에 민주적 절차가 소홀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금은 여러 곁가지를 뻗으면서 무리가 왔다”거나 정대협이 매입한 경기 안성시 피해자 쉼터에 대해 “과연 필요했을까. (정대협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까. 지금 (사업에서) 곁가지를 쳐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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