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용균이는 공공기관인 석탄화력 서부발전소 하청에서 일하다가 부당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당시 정신없이 달려간 태안의료원 병원 로비에서 우리를 맞이한 하청사 이사가 죄송하다 한 마디 한 뒤 했던 말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들은 착하고 성실했지만 고집이 있어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자기 맘대로 갔다. 가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사고가 났다. 보험 들어놓은 것 있으니 해결해주겠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아들의 평소에 성품으로 보아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할 아이가 아닐 거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측 몰래 아들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사측이 진실을 감추고 아들의 잘못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밝혀서 아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부모로서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됐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해 12월17일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아들은 ‘대통령과 만나자’던 바람을 이루지 못했지만, 부모인 우리라도 만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난해 12월17일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아들은 ‘대통령과 만나자’던 바람을 이루지 못했지만, 부모인 우리라도 만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아들은 10호기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최신 시설이라고 했습니다. 1.2km나 되는 긴 거리를 홀로 담당했고, 밤낮으로 혼자 다니며 이상 점검과 낙탄 처리를 했습니다. 어두컴컴한 현장을 헤드랜턴도 지급받지 못한 채 개인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며 일했습니다. 2인1조가 규정이었지만 오래 근무한 동료들은 한번도 지켜진 적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알고 싶었고, 사고 사흘째 되던 날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파트 15층 높이의 건물이 한 대의 기계라고 했습니다. 1층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내부 전체에 탄가루 분진이 눈처럼 쌓여있었고, 어두컴컴해서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거대한 철체 안에 있는 컨베이어벨트는 중간쯤에 놓여있었고, 수많은 회전체가 안전 커버도 없이 위태롭게 노출된 채 벨트를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위력도 세고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빨려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는 무엇이든 집어삼킬 것 같은 무시무시한 살인병기 같았습니다. 70년대 산업현장에서나 있을법한 곳, 전쟁터 같고 아수라장 같은 곳이 바로 제 아들이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있어야할 화장실도 없었고, 물 한 모금 먹을 식수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져있는 철체, 수십 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개구부라는 곳을 밤낮으로 점검하며 낙탄을 처리했을 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여 옵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사고은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맨 꼭대기 사고 난 현장을 갔을 때, 벌써 사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도록 물청소가 돼 있었습니다. 안전 줄이라고 불리는 풀 코드는 평소에는 축 늘어져 있어 당겨도 잘 작동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날은 타이트하게 당겨져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싶었던 저는 처참하게 죽어간 아들이 생각나고 분해서 그 자리에서 악을 쓰며 짐승처럼 울었습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의 도움으로 62일 투쟁 끝에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진상조사에 우리 측 사람들도 포함돼 특조위가 꾸려졌습니다. 아들은 업무수칙을 다 지켜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조사 내용을 듣는 내내 기가 막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자신의 책임이 없다했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라 기계에 대한 권한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지만 법적으로 기업에 대한 아무런 제재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아들처럼 억울하게 죽어갔지만, 대부분 사고 당사자의 실수로 치부돼 왔다는 점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특조위가 지적한 내용들이 현장에서 이행되기를 기대하며 지금까지 지켜봐왔습니다. 하지만,정부는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저는 분노합니다. 기업을 재재하려 하면 ‘기업하기 힘들다’ ‘이러다 나라 망한다’ 등 말로 국민을 현혹시키기 급급합니다.

거의 모든 산재사고는 기업이 안전을 방치하고 책임지지 않는 구조적 모순 때문에 일어납니다. 기업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배려하고 조금만 투자를 하면 많은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 망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생명만큼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기업 스스로가 안전을 책임지도록 법적 안전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고 김용균씨 생전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고 김용균씨 생전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그리고 얼마 전 우리 측이 고소·고발한 서부발전과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경찰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고위 관리자들이 처벌 받기를 바랐지만 하청 말단 직원만 처벌한다고 했고, 검찰로 송치됐다고 합니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기업은 늘 법망에서 빠져나가며 법을 비웃고 있습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법과 정치는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기업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보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십 년째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1위 국가입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게 참혹한 지금의 현실입니다. 2007년 영국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재정한 바 있습니다. 기업이 안전을 방치해서 사망에 이르게 할 때는 매출액의 10%까지 벌금을 물게 함으로서 산업재해를 현저하게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우리나라에도 이런 법이 필요합니다. 노동자를 죽게 한 기업이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서 더 이상 억울한 죽음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국민들께 호소합니다. 함께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그래서 내 가족 내 이웃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나서주길 간절하게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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